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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생 고향서” 바람에도… ‘3대째 독립운동’ 오희옥 지사 집 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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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04 11:27:27 수정 : 2021-11-04 14: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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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독립애국지사 20명 중 유일한 여성 독립가
고향 집,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으로 철거 위기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 벽에 걸린 대형 태극기 앞에서 기념촬영한 오희옥 지사. 여성 애국지사로는 유일한 생존자다. 뉴시스

유일한 생존 여성 애국지사이자 3대째 독립운동을 이어온 오희옥(95) 지사의 경기 용인시 집이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사업으로 철거된다. 이 집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는 오 지사의 바람에 따라 용인 시민들이 3년 전 합심해 건립했지만, 오 지사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비어 있는 상태다.

 

4일 용인시 등에 따르면 오 지사의 거주지인 ‘독립유공자의 집’이 있는 처인구 원삼면 일대는 SK반도체 클러스터 사업 부지로 확정되면서 최근 토지조사와 감정평가를 마쳤다. 이달 중순쯤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면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다. 

 

이에 따라 오 지사를 위해 원삼면 죽능리 527-5번지에 지은 독립유공자의 집도 내년 안에 사업부지의 다른 건축물과 함께 철거될 예정이다. 이 집은 해주 오씨 종중의 집터 기부, 용인 시민과 공무원의 모금, 관내 기업들의 기부가 합해져 2018년 3월1일 준공됐다. 방 2개와 거실, 주방을 갖춘 1층 단독주택 형태다.

 

수원의 보훈아파트에서 살던 오 지사는 2017년 2월 언론인터뷰를 통해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고 밝혔고, 이 사실이 전해지면서 용인시 전체가 나서 소원을 이뤄줬다. 하지만, 입주 보름여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오 지사는 거주지가 철거된다는 사실도 모른 채 병원에서 4년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오 지사는 지금도 “고향 집은 잘 있느냐, 꽃들이 한창 예쁘게 피었겠지?”라고 물으며 향수에 젖는다고 자녀들은 전했다. 오 지사의 아들은 “재활치료를 받는 어머님이 주말에는 병원에서 나와 시민들이 지어준 고향 집에서 쉬었다 가시길 원하는데 차마 철거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6월 서울 강동구 서울중앙보훈병원을 방문해 입원 중인 ‘3대 독립운동가’ 오희옥 애국지사를 위문하고 있다. 오 지사는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채 4년째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 지사의 자녀들과 용인시는 대체 가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마저도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녀들은 지난해 SK하이닉스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 뒤 지난 3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독립유공자의 집 철거 사실을 알리고, 오 지사가 마지막 삶을 보내면서 독립운동 유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렇다 할 답을 받지 못했다. 

 

사업시행자 측은 “지사님의 건강이 회복돼 돌아오실 경우 거처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는 임시 숙박시설을 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용인시도 사업부지 내 시유지를 놓고 대체 주택 건립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관련 법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주 오씨 종중에서도 다시 종중 소유의 땅을 제공하기는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대체 부지를 누군가 제공하면 물꼬를 틀 수 있지만 지금은 사실상 방법이 없다”면서 “오 지사가 소유한 독립운동 관련 자료 등을 따로 전시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18년 3월 오희옥 지사의 경기 용인시 고향집 준공식 모습. 연합뉴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은 해주 오씨 550년 집성촌이자 오 지사 집안의 생가터가 있던 곳이다. 오 지사 집안은 ‘독립운동 명문가’로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광복군 장군, 비밀 연락 임무를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 지사와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 지사, 광복군 총사령부 참령을 지낸 형부 신송식 지사 등이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27년 만주에서 태어난 오 지사는 오희영 지사와 함께 1934년 중국 류저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첩보 수집을 하고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을 탈출시키는 등 광복군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의 당원으로 일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국내외에 생존한 독립애국지사 20명(국내 17명·해외 3명, 5월 기준) 가운데 유일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용인=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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