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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와 내세를 잇는 통로 ‘피라미드의 門’

입력 : 2021-10-04 19:56:36 수정 : 2021-10-04 19:56:35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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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 신간 ‘피라미드의 문’

이집트 고대 건축물 ‘문 중심으로 설계’
미로·탑문·가짜문 등 공간 구분 다채
피라미드 문 ‘매장·공간·분산’ 기능 수행
창의적인 문 구성, 현대 건축서도 변주
고대 이집트 고관 메후의 마스타바에 있는 가짜문. 전면을 문의 형상을 흉내 낸 기하학적 구성으로 처리하고 정중앙에 사람 한 명이 옆으로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폭을 갖는 기다란 수직문을 냈다. 그 속은 막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이집트는 가히 문의 문명이라 할 만했다. 문으로 탄생했고 문으로 성(盛)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이 발전한 문명이었다. 이집트에서 문은 단순히 일부분이 아닌, 문명의 기본 개념이 구체화하는 통로였다.”

거대한 사각뿔 형태의 돌덩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피라미드는 이렇다.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이집트 왕조 무덤이라는 것까지는 들어본 적 있다. 그런데 문이라니. 피라미드의 거대한 외형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그 내부에 문이 있다는 사실을 선뜻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집트 문명을 구성하는 주요 공공시설·건물들은 문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피라미드, 신전, 왕궁, 성채는 영역다문, 미로, 탑문, 기둥문, 가짜문 등 다양한 형태의 문을 통해 구역을 나누고 공간을 구분했다. 이 같은 문의 형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의 건축양식과 유사성을 지닌다.

이집트 건축물 가운데서도 피라미드는 문의 천국이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1호 교수인 임석재는 새로 펴낸 책 ‘피라미드의 문: 피라미드 공간을 보는 새로운 눈’을 통해 피라미드에서 문은 내부와 바깥에 있는 신전이라는 두 가지 공간을 관통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를 통치한 절대권력자 파라오는 죽음을 초월한 권세에 대한 욕망으로 영원한 안식과 주거·통치 공간인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피라미드가 ‘내세에 이르는 여정의 공간’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내세를 표방하는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닐 수 있게 된 데는 내부를 구성하는 다양한 여러 개의 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매장 공간은 피라미드 내부 혹은 지하에 뒀는데, 이곳으로 향하는 문은 ‘매장의 문’, ‘공간의 문’, ‘분산의 문’으로 불리는 세 가지 기능을 했다. 피라미드 설계는 묘실로 가는 복도를 일부러 복잡하게 설치하고, 외부와 통하는 문은 가짜 묘실과 직선을 이루는 등 쉽게 접근하기 어렵게 돼 있다.

임 교수는 피라미드의 복잡한 문 구성을 “도굴범이 문을 여러 개 부수면서 통과하다가 도중에 ‘여기가 아닌가 보다’ 하고 도굴을 포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간의 문과 분산의 문은 ‘기다란 복도’라는 뿌리에서 나온 형제와 같다”며 “‘전실-연속 공간-축-여정’으로 이뤄진 공간의 문에 꺾임과 갈림길이 추가되면서 분산의 문이 만들어졌다”고 덧붙였다.

갈림길과 미로, 연속 공간 등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문 구성을 가진 피라미드 구조는 이후 서양 건축, 나아가 현대 건축에 이르러서도 반복·변주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남서부 외곽 기자 고원에 위치한 멘카우레 피라미드 북쪽면 아래쪽의 지상 4m 바깥 출입문 모습.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밖에서 보면 피라미드는 인간이 쌓았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육중한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쿠푸왕 피라미드는 한 변의 길이가 200m, 높이는 146.5m에 달한다. 여기에는 무게 약 2.5t인 돌이 230만∼320만개 사용됐다. 이 돌을 한 줄로 세우면 최소 3450㎞에 도달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압도적 규모와 단순한 형태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은 대개 피라미드 외부에만 머문다. 안쪽에는 비좁고 깜깜한 통로와 매장 공간이 있지만, 두렵고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피라미드 내부 구조에 대해 임 교수는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 기능만 한 것이 아니었으며, 중요한 부속 신전을 거느렸다”며 “신전에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공간 구성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피라미드의 진짜 신비함은 내부에 있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별천지가 펼쳐진다”며 “피라미드는 내세에 이르는 여정의 공간이자 그 자체가 내세라는 또 하나의 세계”라고 강조한다.

피라미드가 지닌 인문·건축학적 가치도 남다르다. 임 교수는 피라미드가 이집트 지구 창조 신화를 구현한 ‘인공 산’이었고, 고대 이집트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체였으며, 종교적 초월성과 상징성으로 사회 통합 기능에 기여한 건축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어 정사각뿔과 정삼각형이라는 기하학적 완결성, 조화의 미학, 삼차원적 균형, 규모의 미학을 피라미드가 지닌 건축학적 의미라고 평가한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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