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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록은 어떻게 ‘미국의 권총’이 되었나

입력 : 2021-09-25 02:00:00 수정 : 2021-09-24 19: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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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록의 어두운 성공 신화 추적
美 총기 반대여론 커질 때마다
NRA·총기 옹호자들 방패삼아
실속 차리며 총기 규제 무력화
총기·범죄·로비·부패로 얼룩진
미국의 부끄러운 민낯 보여줘
책 ‘글록-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은 ‘미국의 권총’이 된 글록의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 숨겨진 뒷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책은 글록이 전미총기협회 등을 방패 삼아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흑막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시위 참가자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글록-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폴 배럿/오세영 옮김/강준환 감수/레드리버/1만9800원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한복판에서 무장 강도 2명과 FBI 요원 8명의 대치가 이어졌다. 4분 동안 총 140발의 총탄을 주고받은 끝에 용의자들이 모두 사살됐다. 긴박했던 총격전은 끝이 났지만 FBI 요원 2명도 목숨을 잃었고, 5명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 중 3명은 불구의 몸이 됐다. ‘마이애미 총격 사건’이 벌어진 1986년 4월11일은, FBI 역사상 가장 끔찍한 날이었다.

이날은 오스트리아제 권총 ‘글록(Glock)’이 미국의 총기 역사를 바꾸는 시초가 된 날이기도 하다. 참사 원인을 ‘경찰의 화력 부족’으로 결론 내린 미국 주요 법 집행기관들은 재장전이 필요없으면서도 가볍고, 빠르고, 안전한 ‘글록17’로 총기를 교체했다. 검은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이뤄진 구조는 모더니즘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총기 규제 진영은 ‘하이재커(여객기 납치범)의 전용 무기’ ‘공항 보안대에 걸리지 않는 플라스틱 총기’라며 글록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수차례 청문회를 진행하며 글록의 도입을 막으려 애썼다. 하지만 총기 규제 진영의 반감이 오히려 최고의 홍보 수단이라는 총기 산업의 불문율이 글록의 성공에도 그대로 들어맞았다. “500만달러짜리 홍보를 공짜로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글록은 현재 어느 권총보다도 많이 미국 경찰의 허리춤에 달려 있다.

폴 배럿/오세영 옮김/강준환 감수/레드리버/1만9800원

오스트리아 총기 회사 글록은 어떻게 ‘미국의 권총’이 되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의 베테랑 저널리스트 폴 배럿은 ‘글록-미국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제국’에서 글록의 탄생 배경과 확산 과정, 숨겨진 뒷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이 책은 글록을 추적하지만 미국 총기 산업의 역사서이기도 하다. 글록의 발전은 법 집행, 안전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조명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글록을 창립한 가스통 글록의 개인사는 매우 흥미롭다. 집 차고에서 러시아제 중고 금속 프레스로 황동 장식 등을 만들던 글록은 불과 1년 만에 ‘글록17’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군에 납품한다. 여기에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지만 미국에 총기를 팔아 시장을 장악하는 일화는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글록은 1995년 미국 최대의 광고 산업 잡지인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에서 ‘마케팅 100인’으로 선정됐다. 이 잡지는 “10년 전만 해도 미국에는 글록이 단 1정도 없었다. 현재 이 회사는 민수용 소매가격 기준으로 한 정당 평균 600달러의 가격으로 매월 2만정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이 자동권총은 경량 프레임, 안정성과 유지 및 보수의 편의성이 좋아 곧바로 경찰의 사랑을 받았다”고 썼다.

글록은 곧 미국의 문화가 됐다. 투팍과 닥터 드레, 스눕독 등은 가사에 글록을 넣어 랩을 했고, ‘다이하드2’(1990)를 시작으로 글록은 영화 속 단골 무기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을 지키려던 글록은 미국의 아픈 역사에도 이름을 올린다. “미국에선 범죄자도, 피해자도, 경찰도 글록을 소지한다.” 경찰이 선택한 권총이지만 미치광이 살인자가 선호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글록은 2003년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기 전까지 땅굴에서 그를 지켰고, 미국 최악의 총기난사로 기록된 2007년 버지니아공대 참사에서 32명을 희생시킨 조승희의 손에는 글록이 들려 있었다. 2008년 노던일리노이대학에서 5명이 사망했을 때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상영하던 영화관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한 2012년 오로라 총기 난사 사건 때도 범인들은 글록을 소지하고 있었다. 2011년 애리조나(6명 사망), 2018년 사우전드오크스(13명 사망) 등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총기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총기 반대 여론은 격화한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때 글록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언론은 글록을 겨냥하며 부정적 보도를 내보냈지만 그럴 때마다 글록의 재고는 남아나지 않았고, 가격은 50% 이상 오르기도 했다.

글록은 이 같은 총기 규제 논란을 어떻게 돌파했을까. 총기 반대론자들은 총기를 규제하고, 총기 회사에 책임을 묻고자 했으나 총기 산업계와 전미총기협회(NRA) 같은 이익단체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제조사인 글록도 당연히 NRA처럼 총기 규제에 강경히 반대할 것 같았으나 실상은 달랐다. 총기 규제 진영의 허점을 가장 아프게 파고든 건 글록이었다. 글록은 중도적 입장에서 교묘하게 총기 규제 운동을 억눌렀고, 연방 정부는 총기 회사를 상대로 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소송을 금지했다.

폴 배럿은 글록을 NRA와 총기 옹호론자를 방패막이 삼아 실속을 차리며 총기 규제를 무력화한 흑막이라고 묘사한다. 저자는 “기업으로서 글록사는 고고한 경영 철학보다는 이익을 좇아 움직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라며 “미국에서 정치적 반대파와 절충안을 찾기 위해 총기 산업계를 대표할 기회를 잡았을 때, 글록사는 중도를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런 척만 했을 뿐이고 철저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고 평가한다. 이어 ”기업의 잘잘못을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와 데이터를 축적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밝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그것이 미국 사회가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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