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42년 추억과 감동 남기고… 막 내린 종로 ‘시네마 천국’ [이슈 속으로]

입력 : 2021-09-05 09:00:00 수정 : 2021-09-05 09:21: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서울극장 42년 만에 폐관

종로3가 ‘영화관의 메카’
1979년 개관… 영화 제작·배급 선도
대형관·OTT에 밀리고 코로나 악재
일대 전통 극장들 모두 역사 속으로

팬데믹에 극장가 ‘한계’ 봉착
전국 영화관 매출액 전년비 80% 감소
영화계 “단순 피해 지원만으론 안돼
영화발전기금 국고 출연 등 대책 절실”

42년간 종로를 지켜온 서울극장이 문 닫는 날, 서울에는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8월31일 오후 4시50분, 마지막 상영작인 ‘홀리모터스’(2012, 레오스 카락스 감독)가 스크린에 걸렸다. 관객들은 1시간56분 후 상영관을 빠져나왔지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박물관에라도 온 듯 이곳저곳 낡고 손때 묻은 로비와 매표소, 극장 앞 간판을 카메라로 연신 찍어댔다. 그 사진들은 왜인지 흑백사진인 것만 같았다.

영업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1일 서울극장 내부 모습. 찾아온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 많이 포착됐다. 연합뉴스

이날 서울극장의 모습은 기자의 기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10여년 전 영화가 끝나고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다음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과 수차례 어깨를 부딪쳤다. 극장 앞 거리로 나서면 쥐포와 문어, 군밤 등을 팔던 노점들이 오징어잡이 배들처럼 줄줄이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환하게 비췄다. 하지만 서울극장 매표소에는 이날 이른 저녁부터 불이 꺼졌고, 앞으로도 다시 켜지지 않게 됐다.

서울극장은 지난 7월3일 홈페이지를 통해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시대를 선도할 변화와 도전을 준비 중”이라며 “오랜 시간 동안 추억과 감동으로 함께해 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리며 합동영화사의 새로운 도약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고 덧붙였다.

합동영화사가 밝힌 공식적인 폐업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영난 악화다.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OTT서비스 등에 밀려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에 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관을 향후 어떤 용도로 활용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합동영화사 관계자는 전했다.

영업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1일 서울극장 외부 모습. 찾아온 한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종로 시대’ 극장들 역사 속으로

한때 종로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 가운데 종로3가에 자리 잡은 서울극장은 종로와 충무로 일대 영화의 역사를 대변하는 곳이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서울극장은 1964년 문을 연 재개봉관 세기극장을 1978년 합동영화주식회사가 인수, 1979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관했다.

선성원 ‘가십으로 읽는 한국대중문화 101 장면’(2005)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에 극장은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였다. 서대문 로터리에 ‘서대문극장’, 광화문에 ‘동양극장’, ‘국제극장’, ‘아카데미극장’이 있었고, 인사동에 ‘낙원극장’이 있었다. 그리고 종로3가 중심 사거리에 일본강점기에 지어진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이 마주보고 있었으며, 청계천 방향으로 ‘세기극장(지금의 서울극장)’, 인현동 사거리에 ‘명보극장’과 ‘스카라극장’이, 퇴계로3가에 ‘대한극장’과 ‘초동극장’ 등이 있었다. 을지로에는 ‘국도극장’, ‘초동극장’, ‘계림극장’ 등이, 미아리, 청량리, 신설동, 신촌 등에도 극장이 있었다. 서울에 개봉관은 10여개였다.

영업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1일 서울극장 내부 모습. 연합뉴스
8월31일 오후 코로나19 여파로 42년만에 영업을 종료하는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을 찾은 한 시민이 사진을 찍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첫 극장도 종로에 있었다. 1907년 개관해 역사가 100년이 넘은 ‘단성사’다. 처음에는 영화관이 아닌 일반 극장으로 창이나 무용 등 자선공연을 했다. 최초의 한국 영화 ‘의리적 구토’ 역시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처음 개봉했다. 입장료는 특등석 1원 50전, 1등석 1원, 2등석 60전, 3등석 40전으로(당시 연극 관람료는 40전 정도) 비싼 가격이었음에도 10만 관객이 들 정도로 크게 흥행했다. 이날을 기념해 매년 10월27일은 ‘영화의 날’로 제정됐다.

서울극장은 그 역사가 단성사의 반절도 안 되지만, 1980∼1990년대 영화계를 선도한 곳이다. 1980년대 서울극장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애마부인’ 등 성인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했고 1990년대 초 멀티플렉스를 시도, 심야상영을 시작해 연인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했다. 또 선진 영화기법을 주도, 영화산업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서울극장 폐업으로 종로3가 일대 전통 극장들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단성사는 2008년 문을 닫고 2019년 한국 영화 탄생 100돌을 맞아 ‘단성사 영화역사관’으로 재탄생했고, 피카디리극장은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를 거쳐 지금은 CGV 직영점으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영화계 “한계 임박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피해는 서울극장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영화관은 오후 10시 이후 상영할 수 없고, 좌석도 현재 60∼70%만 활용할 수 있다. 롯데시네마 관계자에 따르면 오후 10시 이후 상영 금지만으로 입는 매출 타격은 약 15%에 달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코로나19 영향이 직접적으로 시작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전국영화관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80.6% 감소했다.

 

영화계는 국고지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0일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영화마케팅사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회 등 영화계 10개 단체는 영화발전기금에 국고 출연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2년째 이어지는 팬데믹은 한국 영화의 모든 것을 붕괴시켰다. 영화계의 큰 희생으로 모아온 영화발전기금마저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발전기금 징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면서 “코로나 상황은 단순히 피해지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부의 과감한 국고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스크린 쿼터로 인한 위기 때는 영화계의 자체적인 노력과 정부의 지원이 더해졌었다”면서 “과거 경험에서 극복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화발전기금은 2007년 스크린쿼터 축소 대책의 일환으로 조성됐으며, 이때 국고 출연금 2000억원이 투입됐다.

현재 영화발전기금은 영화관으로부터 티켓값 3%를 걷는 부과금으로 채워지지만, 매년 500억원대이던 규모가 코로나19로 급감하는 등 고갈 위기가 거론된다. 게다가 영화계 일부에서는 영화발전기금 역시 자신들의 수입에서 거두는 돈이기에 사실상 정부 지원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있다. 또 일각에서는 영화관 사업이 롯데, CJ 등 대기업 산하에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영업 마지막 날이던 지난달 31일 서울극장 내부 모습. 연합뉴스
8월31일 오후 코로나19 여파로 42년만에 영업을 종료하는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시민들이 극장을 이용하고 있다. 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1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정부 역시 영화계가 내놓은 성명에 공감하고 국고지원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며 “다만 기재부 등 다른 부처 역할이 필요한 사안이기에 재정 당국에 계속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발전기금이 100억원대까지 떨어져 고갈 위기라는 주장에 대해서 문체부 관계자는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다. 곧 내년도 예산을 이제 채워 넣을 예정이라 현재 얼마가 남았다고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하다”고 답했다.

영화산업은 사실상 티켓이 팔리지 않으면 이익을 거두기 힘든 구조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시스템은 크게 제작, 배급, 상영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출은 대부분 영화 티켓에서 정산된다. 영화산업 관계자에 따르면 티켓 가격 중 부가가치세 10%, 영화발전기금 3%를 먼저 떼고 나머지 87% 가운데 영화관이 약 45%, 배급사가 약 55% 정도로 나눠 갖는다. 이후 배급사는 수수료와 제작비를 제외한 이익을 투자사, 제작사와 나눈다. 영화는 거대 자본과 노력이 모여 몇 주 또는 몇 개월이라는 짧은 상영 기간 내 수익이 성패를 가르는 산업인 셈이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