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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10대 소녀 3명의 방황과 고민 그렸어요”

입력 : 2021-09-02 19:47:46 수정 : 2021-09-02 19: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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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영화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인터뷰

영화진흥위 독립영화 제작 지원 받아
2019년 가을에 촬영… 첫 장편 데뷔작
배우들 감정 표현 각자에 많이 맡겨
불안정한 심리 변화 섬세하게 포착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 방민아 주연
주인공 모두 마음 아프게 한 캐릭터
“한 명을 선택할 수 없다. 세 명의 주인공 모두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영화 ‘최선의 삶’을 연출한 이우정(사진) 감독은 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이 개봉한 이날 이 감독은 생각보다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 출발해 버린 ‘최선의 삶’이 잘 나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앳된 얼굴이지만, 영화 이야기를 건네자 금세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 영화는 3명의 10대 소녀들이 방황하고, 고민하고, 또 상처받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김기림 시인 ‘바다와 나비’의 흰 나비처럼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 지쳐서 돌아오기도 하고, 겉으로는 강한 척해도 마음은 여리고 초승달처럼 시리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원작 소설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원작을 작가님이 아주 오랫동안 작업했고 본인의 내면, 상처에서 출발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각색하는 과정에서도 ‘내가 정말로 이 인물들을 알고 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 같은 고민이 제일 많았다. 각색과정에서 10대 청소년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그럴수록 ‘내가 최선의 삶의 인물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임솔아 작가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영화가 결정되고 투자에 어려움이 있어 생각보다 촬영 전에 시간이 많았다. 2017년 초 영화화 결정이 되고 2년 뒤에야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받게 돼서 2019년 가을에 촬영했다. 그래서 작가님과 꽤 자주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친해졌다. 작가님은 ‘다 바꿔도 되고 아무 상관 없다 편하게 하라’고 응원해줬고 영화에 어떤 의견도 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쥐고 있던 숙제를 이미 끝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그 단계를 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지를 많이 했다. 무척 고마운 사람이다.”

-평단의 반응이 좋다.

“기쁘다기보다 안도감이 들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이 영화를 알아줄 거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실체나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엄청 불안했다.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들을 보고 있지만, 가끔씩 이 영화가 잘 와 닿았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안도감이 든다. 이미 영화는 완성돼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3명의 배우와 작업은 어땠나.

“배우들의 감정 표현 같은 것들을 내가 다 정해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함께 하기로 한 배우들한테 더 많은 것을 맡기는 게 맞는 영화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그 인물의 감정들을 직접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촬영 전에 각각의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도 이런 조합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느낀다. 대단하고 아름다운 조합이었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배우들이 마음으로 이 영화를 응원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너무 고맙다. 각자의 배우들이 품고 왔던 좋은 욕심들을 보는 게 행복했다. 모니터로 가장 먼저 보고, 같이 웃고 울면서 찍었다.”

-주인공에 아이돌 출신 연기자 방민아를 선택했는데.

“사실 아이돌이라는 것에 선입견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걸스데이가 활동하던 시기에 TV를 잘 안 봤기 때문이다. 강이 역은 가장 마지막에 정해졌는데 2019년 7월 마지막 날 민아 배우와 첫 미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미팅 전에 걸스데이, 민아를 아냐고 물어봤을 때 잘 모른다고 했다. 당시 민아 배우가 ‘최선의 삶’과 강이역에 대한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줘서. 바로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한 명을 뽑을 수 없다. 처음에는 당연히 강이라는 인물에 공감해서 출발했지만, 촬영하면서 소영과 아람을 맡은 성민, 달기 배우를 만나고,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영이와 아람이까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 진짜 한 명을 뽑을 수 없다. 이젠 진짜 나에게는 다 너무 마음 아픈 사람들이 됐다.”

-원작에서 중학생인 주인공들을 18살로 설정했는데.

“감독으로서 중학생으로 캐스팅이 가능한 배우들과는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었다. 소설 속 푸른밤 챕터인 소영과 강이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이나 영화에서 결국은 끄트머리만 남아있지만, 소영과 강이가 싸우는 장면,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 중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과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강이가 원래 동네에서는 잘나가는 아이였다는 내용이 영화에서는 빠졌다.

“실제 대전을 취재하다 보니 엑스포를 계기로 지역별 빈부 격차가 커지는 등 그 지역, 그 시절의 특수성이 담긴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것까지 영화로 가져오긴 버겁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되면 강이라는 인물이 너무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오히려 강이가 그 후에 맞이하게 될 감정들과 그 감정들의 모호함을 안고 가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딱 정확하고 직접적인 배경 같은 것들은 오히려 좀 제거했다.”

-영화로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하면.

“덮어두었던 감정들, 그런데 좀처럼 덮어지지 않는 감정들을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최선의 삶’이라는 영화는 사람들한테 그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권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자신이 도망치려고 했던 감정을 마주 보았다, 마주한다. 그것만 바라보더라도 나는 위로받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될 것 같다.”

‘최선의 삶’ 포스터

-최선은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최선은 뒤돌아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최선이란 걸 내세우면 다른 사람의 최선과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본인은 최선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고 있던 사람이었다. 영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막막하고, 더욱이 상업영화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이를 돌파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컸다. 어느 때는 정말 힘이 다 빠진 것 같고 그래서 그냥 계속 도피하고 도망가고 그랬다. 그런데 최선의 삶을 찍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한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결정해서 한 것이기에 도망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영화 보러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이 영화가 집 앞에서 내가 편하게 시간을 골라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아마 가까운 영화관에서 안 할 확률도 높고, 좋지 않은 시간대에 한 번 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좀 더 품을 들여야 보실 수 있는 영화기 때문에 요즘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읍소하고 다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제작자들이 매우 어려운데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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