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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와토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폭염이 한풀 꺾이는 듯싶더니 다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그래서 가을 정취가 물씬 나는 그림 한 장에 눈길이 갔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앙투안 와토의 그림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누가 봐도 완연한 가을 풍경이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미술사적으로 로코코 양식은 바로크 양식이 수정되고 약화된 것 또는 여성화된 바로크로 불린다.

그만큼 조형적 차이점도 있다. 바로크 양식은 시대라는 보다 큰 분위기를 강조하고, 궁정이나 대저택, 거리 등과 같은 큰 규모의 환경을 장식하기 위한 대작을 위주로 했다. 이에 비해 로코코 양식은 개인의 감성적 체험에 주목하고, 지방 귀족이나 중산층의 주거 장식을 위한 소품 위주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바로크 미술이 기념비적인 것, 장엄하고 권위적인 것, 격정적인 것을 강조했다면, 로코코 미술은 우아하고 친근한 것이나 당시 부르주아의 주관적 경향에 맞는 작품을 쏟아냈다. 바로크 미술이 강하면서 명확한 선을 구사하고 격렬한 역동적 스타일을 나타냈다면, 로코코 미술은 색채와 음영을 강조하고 아늑하고 감미로운 분위기를 전하려 했다.

그런 분위기 아래 와토는 자신의 작품에 18세기 귀족의 삶의 흔적을 담았다. 이 그림은 당시 귀족이 비너스에게 바친 섬인 시테라에서 황홀한 하루를 보내고, 사랑의 신인 큐피드의 안내를 받으며 배를 타려는 장면이다. 젊은 남녀의 곱게 차려입은 옷과 세련된 색채가 조화를 이루면서 지상낙원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작품 곳곳의 우아하고 섬세한 장식적 요소가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취미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러나 전체적 분위기는 쾌활하지 않고 우울해 보인다. 사람도 활기찬 모습이기보다 일시적 쾌락에 빠진 몽환적 세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와토 그림의 특징인 가라앉은 색조와 명료하지 않은 형태 묘사 때문인데, 평생 결핵을 앓았고 항상 그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 와토의 정서가 그림 속의 우울함으로 표현된 것 같다. 우리의 가을은 우울하지 않겠지.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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