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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공간으로 살아나니 홍등가 불 꺼지다

입력 : 2021-03-18 03:00:00 수정 : 2021-03-17 20: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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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집창 ‘선미촌’을 ‘서노송예술촌’으로 탈바꿈 시켜
한옥마을 등과 가까워 이미지 먹칠
市, 2016년 문화재생사업 카드 꺼내
女 인권 침해 장소 점진적 매입 나서

쉼터·책방·전시장으로 화려한 변신
오명 씻고 도시 재생 성공모델 각광
지자체·시민단체, 앞다퉈 벤치마킹
전주시가 성매매집결지 폐공가를 처음 매입해 여성 인권과 기억의 공간으로 새로 단장한 ‘시티가든’에서 문화예술인과 여성인권 활동가, 주민 등이 모여 2018년 9월 ‘여성인권 비엔날레’ 오프닝 행사를 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전북 전주시 ‘서노송예술촌’이 최근 인권 보호와 도시재생 성공모델로 꼽히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서노송예술촌은 서노송동 전주시청 인근에 자리한 성매매집결지였던 ‘선미촌’의 새 이름이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늘어나고 도로 등 일대 환경을 말끔히 정비하면서 그늘진 환경이 밝고 화사하게 탈바꿈했다. 오랫동안 발길이 끊겼던 시민이 다시 찾아 문화를 즐기고 여성 인권을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

비결은 기능 전환 방식에 있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전국 지자체와 여성 인권에 앞장서는 시민사회단체가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벤치마킹을 앞다투는가 하면 정치권, 대학은 물론 아시아 각국도 선행 사례 연구의 생생한 현장학습 모델로 꼽고 있다. 전주시는 그동안 조성한 문화예술·인권단체 공간과 주민생활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해 새 바람을 불어넣을 방침이다.

◆‘난공불락’ 성매매집결지 ‘문화재생’ 카드로 공략

17일 전주시에 따르면 선미촌은 전라선 옛 전주역이 관통했던 도심 서노송동에 1950년대 형성된 성매매집결지이다. 한때 200여 업소에 3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종사했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으로 대거 줄었으나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홍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곳은 전주시청에서 기린로를 사이에 두고 불과 100여m 떨어진 데다 주변에 학교와 대형마트, 금융기관, 업무용 빌딩, 주택가로 둘러싸인 중심에 자리해 여성 인권 침해의 대표적 공간이자 시민 정서를 해치는 곳으로 지목되면서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연간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전주한옥마을과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불과해 도시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에 전주시는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부터 선미촌 ‘홍등’을 끄기 위한 정비계획을 논의했으나 진전 없이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성매매업소들의 반발과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 업소 매입을 위한 재원 부족 등이 난공불락의 산처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선미촌에 햇볕이 들기 시작한 것은 2016년이다. 전주시는 선미촌 정비방안으로 ‘문화재생사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권력과 재정력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강제방식 대신 지자체가 여성 인권을 침해한 폭력적인 공간을 점진적으로 매입한 뒤 지역 예술가, 주민 등과 힘을 모아 문화재생과 치유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주변 업소의 자연스러운 폐쇄를 유도하는 프로젝트다.

전주시가 다양한 여성·시민·사회단체와 학계, 의회와 ‘전주의제’(현 지속가능발전협의회)를 결정하고 90여 차례에 걸쳐 머리를 맞대며 해법을 강구한 지 3년 만이다. 전주시는 이듬해 이곳 성매매업소 4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도시재생과 서노송예술촌팀이 상주하는 ‘현장시청’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시의회는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와 자립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조례를 제정했고 주민, 시민단체도 이들의 자활을 위한 주거생활과 직업훈련 등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공권력 대신 ‘점진적 기능전환’ 60여년 만에 ‘화려한 변신’

전주시는 2022년까지 135억원을 들여 선미촌(2만2276㎡)에 분포한 성매매업소 노후건물을 점진적으로 사들여 녹지·인권·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1단계로 선미촌 내 최대 면적의 성매매업소 건물과 폐공가 등 13곳을 매입해 기능전환을 위한 거점공간(1970㎡)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쪽방 형태의 여인숙 건물을 ‘기억의 공간’으로 보존해 어두운 여성 인권과 선미촌을 기억하며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쉼터를 제공하는 시티가든(녹지공간)을 조성했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전시·공연장인 복합공간과 창작 활동장인 예술협업창작지원센터를 만들고 여성문제 등을 찾아 해결하는 리빙랩과 선미촌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여성인권 목소리를 담은 공간인 ‘성평등 전주’도 행안부 지원사업으로 마련했다. 시인과 화가, 사진작가, 성악가 등 다양한 지역 청년 예술가들은 책방(물결서사)을 꾸미고 북토크와 전시회, 공연, 워크숍을 하고 있다.

전주시가 성매매집결지 폐공가를 처음 매입해 여성 인권과 기억의 공간으로 새로 단장한 ‘시티가든’ 전경. 전주시 제공

◆도시재생 새 이정표 제시에 전국 125개 기관 벤치마킹

문화재생 사업 전 85곳에 달했던 선미촌 성매매업소는 현재 7곳으로 급감했고 범죄 발생도 30% 이상 줄었다. 정부는 2014년 도시재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 민관협의회에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대한민국 범죄예방 대상에서 전주시를 우수기관으로 표창했다.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원회는 2019년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을 인증했다.

서노송예술촌은 성매매집결지 정비와 여성인권 향상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주시에 따르면 문화재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최근 3년간 현장시청을 찾은 지자체와 관계 기관, 여성·시민·사회·인권단체는 125곳(1245명)이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 정치권, 지방의회, 경찰청, 대학 등에서도 사례학습 등을 위해 방문했다. 개별 방문하는 외부단체까지 포함하면 실제 방문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시청 측 귀띔이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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