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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성인’ 군종신부 유해, 70년 만에 찾아

입력 : 2021-03-07 23:00:00 수정 : 2021-03-07 20: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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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포로들 보살피며 살신성인
美 하와이 묘지 안장 유해서 발견
에밀 카폰 신부(오른쪽)가 6·25전쟁 도중인 1950년 10월 전장에서 미군 병사를 위해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미 육군 홈페이지

‘6·25전쟁의 성인’으로 불린 미국 군종 신부의 유해가 사후 70년 만에 발견됐다.

7일 미 육군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미군 제1기병사단 소속 군종장교(대위)로 활약한 에밀 카폰 신부의 유해가 최근 확인됐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하와이 국립태평양묘지에 안장된 신원미상 참전용사 유해 중에서 카폰 신부의 유해를 찾아냈다. 캔자스가 고향인 카폰 신부는 1940년 사제 서품을 받고 육군 군종장교가 됐다.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7월 한국에 파병됐다. 그가 속한 부대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안북도 운산까지 전진했으나 그해 11월 중공군이 개입하며 수세에 몰렸다.

카폰 신부는 부대에 철수령이 내려진 뒤에도 후퇴를 마다하고 부상병들 곁에 남았다.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병사들의 평온한 임종을 위해 기도했다. 중공군에 붙잡힌 그는 평북 벽동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도 카폰 신부는 환자의 옷을 대신 세탁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포로들을 보살피는 등 봉사의 삶을 실천했다. 정작 자신을 돌보는데 소홀했던 그는 이질과 폐렴으로 1951년 5월 23일 35세 나이에 선종했다. 시신은 수용소 부근 어딘가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기만 했다.

나중에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미군들을 통해 카폰 신부의 살신성인이 널리 알려지며 그에겐 ‘6·25전쟁의 성인’, ‘전장의 예수’ 같은 호칭이 붙었다. 미 캔자스주 위치토 가톨릭 교구는 카폰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1993년 로마교황청은 성인으로 추앙하는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 그를 ‘하느님의 종’으로 선언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 4월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을 카폰 신부에게 추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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