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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출신 유순호 작가, 논픽션 다큐 평전 ‘김일성 1912~1945’ 펴내

입력 : 2020-10-22 03:00:00 수정 : 2020-10-21 2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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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항일투쟁 업적 과장되고 부풀리고 왜곡하고 날조됐다”
북한 출신 아버지와 남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중국 연변에서 태어난 유순호 작가는 숙명적으로 1930~40년대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 연구를 시작, 한민족독립운동사를 복원하고 있다. 2002년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 거주 중이다.

“어려서부터 숭배해왔던 김일성이 ‘가짜’라는 경찰 출신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19살 때부터 만주항일운동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80∼90세의 항일운동 연고자 130여 명을 어렵게 만나 증언을 기록한 제 책을 보고 한국 청년들이 북한과 김일성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기 바랍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역사 공부와 함께 중국 동북3성을 도보 답사한 뒤 일제강점기 동북아 항일운동사를 복원하고 있는 유 작가가 북한에서 출간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왜곡투성이라는 실증적 자료와 증언을 담은 방대한 논픽션 전기 ‘김일성 1912~1945’(전3권, 서울셀렉션)를 펴냈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중국연변지역위원회를 창립하려다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활동이 정지되자 2002년 미국으로 망명,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인 유 작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소상히 밝혔다.

 

"김성주(김일성)가 태어난 1912년부터 1945년까지 33년의 기간에 김일성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김일성 본인이 아닌 북한의 당 중앙역사연구소가 국가적인 역량으로 만들어낸 회고록은 한두 가지 거짓말쯤은 눈 감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너무도 많은 거짓말들이 얽히고설켜서,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에 직접 참여했거나 또는 개입되어 있는 수많은 인물들의 역사가 모조리 뒤바뀌거나 또는 아주 거꾸로 뒤집어져서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악순환적인 총체적 난국을 초래하게 됐습니다.”

 

“남의 업적을 자기 업적으로 만드는 건 스펙 도둑질”

 

유 작가는 이에 대해 ‘도둑질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린 남의 업적’, 즉 도둑 업적이란 논리를 편다.

 

“김일성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던 중국인 생존자들이 김일성을 가리켜 ‘도둑놈’이라고 하는 것은 김일성이 자기가 하지도 않았던 일들을 다 자기가 조직하고 지휘했던 것으로 거짓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남의 업적을 자기의 업적으로 도둑질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물건을 훔친 도둑보다도 더 나쁩니다.”

 

남북은 물론, 한국 내에서도 김일성에 대해 가짜-진짜설이 난무한 것이 대해 유 작가는 “해외동포들까지 포함하여 우리 한민족에게 있어서 김일성에 대한 평가 역시 한쪽은 신화, 다른 한쪽은 가짜,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다”면서 “한국 국민뿐만 아니라 북한 인민들도 제 책을 읽고 나서, ‘그래, 이것이 진짜구나,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원래는 이러했구나’ 하며, 제대로 알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말한다.

 

유 작가는 “총 여덟 권이 나온 김일성 회고록 중 책 한 권에서 최소한 열 개 이상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모두 합치면 자그마치 100여 개나 된다”며 “이와 같은 거짓말들을 밝혀내고 위장을 벗겨냄으로써 가장 진실하고 순수했던 모습의 김일성을 독자들한테, 나아가 북한 인민들과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환원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나아가 “‘세기와 더불어’는 오로지 반쪽의 이야기 및 반쪽의 주장인데 반해서 저의 이 책은 나머지 다른 반쪽에 대해서도 모조리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기 때문에, 정작 회고록에서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대방, 즉 적측의 인물정보에 대해서도 상당하게 많은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올바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 이해하려면 김일성 정체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다음은 유순호 작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자료수집 과정에서 잊지 못할 사연이 있나요.

 

▲16살 때부터 김일성과 관계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냥 ‘나의 꿈은 장차 김일성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다’는 막연한 목표와 이상 하나로 무작정 찾아가서는 김일성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습니다. 1981년 겨울 취재 중 교하우전국 보일러실에서 일하는 보일러공을 만났는데, 그가 바로 김일성 부대로 알려졌던 항일연군 제2군 6사 산하의 제9연대 연대장 마덕전이었습니다. 김일성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는 생존자였으며, 그는 자기가 일본군에 귀순하게 된 원인도 김일성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혼자만 살겠다고 소련으로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책을 출간한 가장 큰 의의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3대에 걸쳐 통치하고 있는 현재의 통치자 김정은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면, 여전히 그의 조상이 되고 시조가 되는 김일성에 대하여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남북대치 국면에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김일성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북한은 건국시조나 다를 바 없는 김일성이 그의 아들과 손자를 통하여 권력을 세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과거에는 김일성이라는 ‘신화’가 통치했다면 오늘날은 여전히 김일성의 ‘영혼’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오류-왜곡 100곳 넘어…“김일성, 보천보전투 참여 안 해”

 

-김일성에 대해 잘못 알려져 있거나 기록된 대표적인 예는.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오류 100여 개 중 10개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첫째, 아직 김성주로 불리던 18, 19세 때 김일성은 세금징수를 다니면서 장춘 인근 조선인 농민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소문이 안도에 살고 있던 어머니와 삼촌 김형권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삼촌 김형권은 조카 김일성이 길림 육문중학교를 중퇴하고 농촌에서 건달 깡패 노릇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 때문에 혼삿말이 오가던 집으로부터 퇴혼당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김성주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당시 조선인 속에 전설처럼 널리 알려져 왔던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

 

둘째,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사령장 이종락 등 김일성과 소년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열성분자들이 부대를 결성하고, 독립군 군자금을 모금한다는 명분으로 장춘·하얼빈 지역의 조선인 상가에 뛰어들어 강도질하다가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면서 이 부대는 무너집니다. 이때 탈취한 총 10여 자루를 가지고 차광수 등과 함께 안도로 도주한 김일성은 여기서 중국공산당으로 전향하여 주요 직책을 담임하고 있었던 채수항·오빈·김명균·마천목·안정룡·김일룡 등과 ‘안도반일적위대’ 조직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안도반일적위대를 김일성이 창건한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거짓주장 합니다.

 

셋째, 안도반일적위대가 조직된 후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 부대를 인솔하고 남만으로 양세봉의 조선혁명군과 합작해 항일투쟁을 벌이기 위해 떠났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180도 다릅니다. 회고록은 김일성 도우미로 중국인 우사령을 등장시키는데, 이 책은 반공주의자였던 우사령의 탄압에 의해 안도반일적위대가 안도지방에서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김일성은 안도반일적위대라는 간판까지 버리고 우사령의 부대 산하 별동대로 참가하게 된 내막을 파헤쳤습니다.

 

넷째, 김일성은 왕청유격대 정치위원으로 있던 기간에 ‘민생단사건’이 발생하게 되며, 당시 동만지방의 수많은 조선인 혁명가들이 여기에 걸려들어 억울하게 처형당했습니다. 김일성도 민생단으로 몰려 정치위원 직에서 해임 당했고, 1933년 9월 동녕현성 전투 때에는 평대원이 되어 목에 작탄을 걸고 현성 서문 밖의 일본군 포태로 돌격하기도 했던 항일전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전투를 김일성이 조선혁명군 사령관 신분으로 총지휘하였노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北선전 ‘북만원정’은 총살 위기 처한 김일성이 북만주로 도망친 사건

 

다섯째, 북한에서 만들어낸 김일성의 항일 역사 속에는 바로 이 시절(1934~1935) 진행되었던 ‘제1, 2차 북만원정’이 존재하는데, 이 또한 모조리 왜곡되었습니다. 우선 제1차 북만원정은 민생단으로 몰려 체포 및 처형 직전까지 갔던 김일성을 살려주기 위하여 중국인 동료 왕윤성과 동만지방에 순시하러 내려와 있던 중공당 만주성위원회 공청단 순시원 종자운이 김일성을 영안 쪽으로 피신하게 했음을 밝혔습니다. 북한에서는 제2차 북만원정도 김일성이 총지휘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원정부대의 총지휘관은 해방 후 중국 정부 초대 공안부 부부장과 정치보위국 국장을 담임했던 진룡이었으며, 중국에서는 이 사람이 김일성에게 군사 지식을 가르쳤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섯째, 1936년 이후 항일부대 고위 지휘관에 오른 김일성이 직접 참가한 전투를 꼽자면 첫 번째가 1936년 8월의 무송현성 전투이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자기가 이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내부 자료에 의하면 이 전투는 중국공산당 동, 남만성위원회에서 조직하고 시행하였으며, 이 결정을 시달하기 위하여 항일연군 2군에 파견돼 있던 오성륜이 총지휘를 맡았던 전투였습니다. 그의 밑에서 공성부대 총지휘를 맡았던 사람은 중국인 2군 군장 왕덕태였고, 김일성은 산하 부대를 인솔하고 무송현성 남문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일곱째, 압록강을 넘어 조선 국내로 들어가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을 습격한 사건은 전투 규모나 적 인원 사상자 등 상황으로 볼 때는 전투라고까지 붙이기 어려운 정도로 작고 미미합니다. 더욱이 습격을 주도한 인물은 중국인 왕작주(王作舟)입니다. 1912년 생으로 만주국 길림군관학교를 나온 왕작주는 6사 참모장의 신분으로 사장 김일성과 부대를 갈라서 보천보를 습격했습니다. 이 습격에 참가했던 대원들도 대부분 중국인이라는 자료가 발굴되었습니다.

 

김일성은 한때 일제 투항 고민…“한국 청년들, 김일성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길”

 

여덟째, 간삼봉전투도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조직하고 지휘했다고 왜곡하고 있으나 최근 공개된 항일연군 2군 군사작전 회의 자료에 의하면, 이 전투를 조직하고 지휘한 사람은 2군 총 책임자였던 전광이었습니다. 또한 이 전투에는 김일성 부대였던 6사만 참가하였던 것이 아니고 4사와 함께 1군 2사도 참가하였고, 실제로 전투 임무를 수행한 부대는 박득범과 최현의 4사 1연대였습니다. 이 전투 중에 김일성이 도주하려고 했던 사실도 밟혀졌습니다.

 

아홉째, 김일성의 조선혁명군 길강지휘부 시절 상사였던 이종락이 체포되어 귀순한 뒤인 1939년 김일성과의 인연을 믿고 귀순할 것을 권고하러 옵니다. 이때 만주항일연군은 만주국 정부의 대대적인 토벌숙정계획에 따라 관동군 정규부대가 투입되면서 위기로 몰리게 됩니다. 항일연군 중국인 수령급 지휘관 대부분이 전투 중에 사망하거나 일본군에 귀순하게 됩니다. 북한에서는 이때 이종락이 김일성에게 처형되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 김일성은 이종락을 통하여 만주국 치안부 조선인 경찰 고위간부 김창영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비밀리에 귀순문제를 의논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이 당시 김일성의 상사였던 중국인 총사령관 양정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이종락은 양정우에게 붙잡혀 처형되고 김일성은 나머지 부대를 이끌고 동만으로 이동하였다가 종당에는 10여명만 대동하고 소련으로 탈출합니다.

 

열 번째, 북한에서 만들어낸 김일성의 만주시절 항일 역사는 시작에서 마감까지 모조리 왜곡과 날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특히 1940년 가을, 김일성이 더는 만주에서 배겨내지 못하고 소련으로 도주하였던 역사에 대하여 북한에서는 별의별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면서 그 정당성과 위대한 의의를 구가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정작 중국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당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내부문건 자료집을 보면, 김일성은 상관이었던 위증민의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혼자만 살겠다고 도주한 사실 때문에 소련에 들어간 뒤에도 새롭게 편성 중이었던 항일연군 잔존부대 내 당위원회에서 기율처분까지 받았음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김일성을 재조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 책은 김일성이 마적단 출신에 가짜다라며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는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을 제대로 알게 돼서 김일성을 인정하게 되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김일성에 대하여 북한의 선전을 대부분 인정하고 믿고 있는 쪽의 한국인들에게는 역시 김일성의 과대 포장된 허울을 벗김으로써, 그들이 북한의 선전에 속아 넘어가 있음을 알려드리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북한이라는 나라가 바로 김일성의 영혼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로 보는 데는 바로 이와 같은 행태들이 어제와 오늘에 이어 내일에도 계속 재연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때문에 김일성을 재조명하고, 김일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북한이 억지로 만들어낸 김일성 신화의 위선을 벗겨내는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닌, 얼마만큼 부풀려지고 거짓말이냐의 차이

 

- 책을 집필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는.

 

▲저의 친 할아버지는 유재후는 만주국 경찰 간부(경좌)였고, 반면 할아버지의 여동생 유신순과 유신옥은 항일열사였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나한테 “김일성은 가짜”라면서, 당신이 진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할아버지가 김일성을 도와 일을 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열여섯 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 ‘김일성 가짜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진짜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김일성은 따로 존재하는 인물인 줄로 착각하였지만, 김일성과 함께 일본군과 전투를 하였던 중국인 생존자 이형박이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사람이 여럿 있었던 것은 알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김일성은 항일연군의 김일성이다”는 말에 나의 사고는 한순간에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즉, 김일성의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닙니다. 오로지 얼마만큼 부풀려지고 거짓말하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그것을 세상에 밝혀서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나의 또 다른 동기입니다.

 

-전기작가로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의 의미는.

 

▲김일성이란 인물은 벌써 사망한 지 26년이나 되었지만 북한 정권은 오늘날 망자를 보내지 않고 그 영혼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중입니다. 김일성의 역사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며, 또 앞으로 계속 이 나라를 지탱하고 나아가게 만드는 정신적인 역량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런 인물의 인생에서 가장 주요한 전반기 33년의 역사를 기록할 때, 이 역사는 이 책의 저술자인 저에게 있어서 과거의 인물이 아닌 현재의 인물, 그리고 나아가 미래의 북한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북의 공존과 평화, 나아가 통일을 원한다면 먼저 교제하고 협력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전제가 바로 지피지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 대하여 알아야 하고 김정은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고 김정은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고 하면, 먼저 그 뿌리가 되고 시조가 되는 김일성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남북의 화합과 통일에 관심이 있고 북한에 대하여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김일성에 대하여 알아야 하며, 이 김일성이 청년 시절을 보냈던 1945년 이전의 경력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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