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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우종일, 200년 감추어진 조선 여인의 美 포착

입력 : 2020-10-19 03:00:00 수정 : 2020-10-19 14: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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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까지 종로 마리갤러리서 ‘경희궁 현재시대’전
우종일의 ‘women of the joseon dynasty nude series #50, 2020’. 한복 속에 감추어진 조선 여인의 몸이 아련하게 드러난다.

사진작가 우종일이 11월 15일까지 서울 종로 마리갤러리에서 조선 여인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사진전 ‘경희궁 현재시대’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 여인의 미(美)에 집중해 접근한 ‘조선 여인 옥돌 시리즈’와 ‘누드 시리즈’ 18점을 선보인다. 200여 년 전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여자의 몸을 통해서 다양한 풍경을 설계하고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우종일 작가의 이름 앞엔 ‘그림에서 사진으로 전업한 작가’, ‘미국에서 30년 활동한 누드 사진작가’, ‘세계적인 미 패션잡지 보그(Vogue) 출품 작가’부터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작가’, ‘적외선 필름을 사용하는 작가’, ‘배우 이승연의 누드사진을 찍은 작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에겐 ‘여성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찍는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가장 어울린다.

 

우종일 작가는 이처럼 초기 미국에서부터 오롯이 여성 몸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삶 속에서 빚어진 여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특히 조선후기 여인들의 삶과 감추어진 몸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조선 여인 시리즈’는 오랜 외국 생활과 다양한 인물을 촬영해 온 스펙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한국 여인의 미를 깨닫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우리 사회의 미에 대한 잘못된 열망을 바라보며 한국 특유의 미를 환기시키기 위해 시리즈 작업을 시작했다”는 고백처럼 한국에 돌아와 보니 여성들이 멋진 외모를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서구화된 미를 지향하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이다.

 

우종일은 조선 여인 고유의 미를 재현하기 위해 20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작품 속 주인공은 고풍스러운 조선의 여인들이다. 왕비부터 상류층 여인과 기생, 주점의 여인까지 이들의 내밀한 일상과 사회적 위치를 작품을 통해 세밀하게 재현한다. 치마저고리에 갇힌 조선 여인의 미를 에로티즘이 녹아들어 몽환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우종일의 ‘women of the Joseon dynasty nude series #40, 2020’. 한복 속에 감추어진 조선 여인의 몸이 아련하게 드러난다.

둥글둥글한 얼굴형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기본이고, 특히 위로 올라간 외꺼풀 눈매가 매우 인상적이다. 복식, 올림머리의 모양, 장신구 등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도 조선 여인의 미를 담아내는데 치중했다.

 

우종일의 옥돌 작품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다. 역사 속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을 현대적인 인물로 재촬영하며 옥돌을 사용했다. 수많은 옥돌을 수집하고 그 돌들을 하나하나 촬영하고, 여인의 모습을 촬영하여 그 위에 덧입히는 작업은 결코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단순히 모자이크처럼 덧입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색상과 명암, 음영은 물론 한복의 디테일까지 모두 표현해 낸 작품이다.

 

그는 6만여 개의 원석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옥돌 이미지 재료를 가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색을 가진 돌로, 밝은 부분은 비색·분홍색·노란색 등 밝은 색을 가진 돌을 배치한다. 배치된 돌의 음영으로 의도된 형체가 완성된다. 멀리서 얼핏 보면 그림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돌 하나하나의 색과 각기 다른 모양을 촬영한 사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우종일은 이에 대해 “작은 원석 하나가 수천 년, 혹은 수만 년의 시간을 흘러 온 경이로운 소재임을 생각하면 이 소재는 분명 작품 속 여인에게 아름다움과 생기를 더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특히 그 중 옥돌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여성들이 즐겼던 우아한 보석이어서 더 끌렸다”며 소재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우종일 작품의 특징은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릴 정도로 회화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들은 한국 여인의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아닌 감추어진 미를 최소한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작업한 작품들이다.

 

우종일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다. 2011년엔 ‘조선 여인들(Women of the Joseon Dynasty)’ 작품으로 홍콩 소버린예술재단이 수여하는 ‘영예로운 아시아 작가상(2011 Sovereign Asian Art Prize)'을 수상했다. 이는 아시아 각국의 전시 관람객들이 전시 기간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직접 선정한 것으로 작가 1인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이 수상 작품은 2012년 홍콩 소버린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상 낙찰가의 3배 이상인 2만5000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사진이 회화적 언어의 세례를 입은 것이다”, "정밀한 촬영을 통해 무생물인 돌이 여인의 아름다움이란 생명을 불어넣었다”, "사진과 그림의 혼성, 과거와 현재의 결합으로, 전통적 사진의 특성이 소멸된다. 이것이 사진인가?” 같은 찬사를 쏟아냈다. 우종일이 K-Art 대표 작가로 미국과 한국, 홍콩 등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 등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우종일의 작품 세계를 옥돌 시리즈와 누드 작품으로 대별해 스스로의 설명에 기대 소개해본다.

 

우종일 사진 작품의 주요 소재인 옥돌. 그는 6만여 개의 다양한 원석을 다각도에서 촬영한 옥돌 이미지 재료를 가지고 있다.

◆옥돌작품=매번 그의 작품은 논의의 중심에 있었기에 이번 신작에 대한 기대 역시 크다. 출품 작품은 역사 속에 널리 알려진 인물을 현대적인 인물로 재촬영을 통하여 미술과 한국 근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엿볼 수 있다. 투명한 피부 질감 대신 반짝거리는 작은 돌들이 몸속에 박혀있다. 사진이 회화적 언어의 세례를 입은 것이다. 이러한 헷갈림은 매체 간의 순수성을 해체 시키는 오늘날의 시각의 길속에 그가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사진의 전면을 촘촘하게 수놓은 듯 화려한 많은 작은 돌들이 때로는 배경으로, 때로는 이미지 주체로서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모두 그의 정밀한 촬영을 통하여 무생물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 받은 것들이다. 사진과 그림의 혼성, 과거와 현재의 결합으로, 전통적 사진의 특성인 ‘지금, 여기’는 소멸된다. 이것이 사진인가? 이러한 헷갈림은 매체 간의 순수성을 해체 시키는 포스트모던 시각 예술 속에 작가가 서 있음을 이해할 때 자연 풀어진다. 보는 자는 무생물들이 생기를 받고, 살아있는 것과 하나로 융합을 꿈꾸는 둥근 일원적 세계의 메시지에 일단 안심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들에서 맛깔스럽고 재미있는 요소는 마치 밑그림처럼 쓰이고 있는 수많은 작은 돌들이다. 그것들은 발광 다이오드처럼 이들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작가 우종일이 오랜 고심한 정교한 스투디움(studium)이다. 작은 돌들 속에서 예기치 않은 풍크툼을 만날지도 모른다.

 

2011년 Sovereign Asian Art Prize 수상작이자 크리스티 경매에서 2만5000달러에 낙찰된 우종일의 ‘Women of the Joseon Dynasty -#2 `120x177cm’.

◆누드 작품(여자라는 풍경)=세상은 각 나라와 민족마다 상이한 풍속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진 풍속은 그 민족의 문화로 견고하게 자리 잡는다. 오늘 날처럼 세계가 통하고 개방된 사회라 하더라도 이러한 문화는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아니, 도리어 그동안 미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거나 지나쳤던 것들이 소중한 가치로서 재발견되는 일이 많아졌다. 단지 이러한 지역성에 기반을 둔 문화적 정체성이 어떻게 보편적 가치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요즘의 화두다.

 

우종일의 관심사는 오래도록 여인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초기 미국에서 작업한 사진부터 최근에 작업한 사진까지 여자가 빚어낸 풍경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삶에서 빚어진 여인들의 다양한 모습이 초기 작업을 관류하는 모습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의 여인들, 특히 조선후기 여인들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나라의 왕비와 같은 최상류층의 여인부터, 당대의 지식인들인 사대부를 상대하는 주점의 여인까지 그는 두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러한 조선의 여인들을 기생이란 이름으로 불리었으나, 이들은 당대 여인네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여인계층을 이룬다. 즉, 문학과 음악, 그림 같은 교양이 기생이 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습득 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 당시에 이들을 지칭해서 쓰인 해어화(解語花)란, 지식인들의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이다. 남성들도 이들을 문화적 소양이 있는 교양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대부분의 여인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은둔의 삶을 살았던 것에 비교하면, 이들은 자유롭게 세상과 소통하며 남성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신세대 여인들이다.

 

우종일은 이들의 내밀한 일상을 호출해 내고 있다. 작업을 통해서 특별한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한국 여인들의 삶이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통적 의상과, 아직 어린티를 벗어나지 못한 여인들이 빚어낸 신비스러운 에로티즘이 함께 녹아있다.

 

이러한 한국 여인들의 미는 서구적인 미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미를 과학적 평가의 잣대로 분석하려는 방법이 아니 것이다. 한국 여인의 미는 드러내는 미가 아니라 보는 자로 하여금 상상케 하는 미이다. 그 미는 의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번 작가의 신작은 감추어진 미를 최소한도로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적 에로티즘의 또 다른 성감대를 건들을 수 있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다.

 

여자 그리고, 에로티즘이라는 주제의 축이, 한국의 옛 왕조에서 볼 수 있는 문화와 결합하여 한 나라의 시대적 정체성으로 새롭게 드러남으로, 오늘날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흥미를 줄 수 있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그의 또 다른 작업은, 변화된 한국 여인의 모습인데, 특히 거울을 많이 쓰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서구적인 가구를 배치하고, 뒷모습과 앞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히는데, 역시 드러내는 몸이 아니라 최대한 의상으로 감추려 한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여자의 몸을 통해서 다양한 풍경을 설계하고 해석하는 작가에게 ‘여자’는 그대로 영원한 의문인 셈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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