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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는 청각장애인의 ‘삶’자체… 소통 장벽 없어야”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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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3 20:52:28 수정 : 2020-09-13 20: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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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수어통역센터 김정봉 센터장
코로나 장기화로 정보 제공 분주
2만4000명 언어·청각장애인 도와
사각지대 없애려 야간 서비스도
“수어 인식 아직 부족… 관심 필요”
김정봉 인천수어통역센터장이 최근 인천 남동구 간석동 사무실에서 “농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재 대면 방식의 통역 제공이 어려워 주로 영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각에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다수 농인(聾人)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방법 등 다양한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는 전문기관이 있다. 인천지역 2만4000여명 언어·청각 장애인의 입과 귀가 되어주는 인천수어통역센터다.

1998년 설립된 센터는 인천시농아인협회 부설 기관으로 총 32명의 수어통역사가 근무 중이다. 미추홀구, 부평구, 서구, 연수구 등 4개 권역별로 사무실을 두고 농인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다. 청인(聽人: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수어 교육 및 보급 활성화에도 앞장선다.

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정봉 센터장은 요즘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다. 농인 개인뿐만 아니라 시청, 교육청 등 여러 공공기관의 긴급 브리핑에 나서 수어통역으로 코로나19 위험성을 알리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부분 서비스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지만 예외도 있다. 경찰서, 응급실, 교통사고, 법률과 같은 긴급상황 땐 부득이하게 직접 현장으로 뛰어간다.

김 센터장은 밤 시간에 농인들과의 의사소통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올해 5월부터 야간 수어통역을 시작했다. 김 센터장은 “응급상황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을 처리해야 할 때 곤란함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시와 협의해 야간에 활동할 수 있는 통역사를 배치했으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급한 사안을 우선 맡는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관내 처음으로 부평지역센터 개소를 앞둔 것에 대해 김 센터장은 해당 지역 농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사회참여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그 의의를 전했다. 평소 ‘농인 권익 보장을 고민해야 하고, 그 중심에는 수어가 있다’고 자주 언급하는 그는 앞으로 지역방송, 교육, 지방자치단체 행사 등 다방면에서 수어통역이 제공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가 생각하는 수어는 ‘삶’ 자체입니다. 청인이 한국어를 사용해 본인을 이야기하고 생활을 표현하듯이 농인은 한국수어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겉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다를 뿐 개인의 삶을 말하고,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언어라고 판단됩니다. 일상 대화부터 시작해 감정 그리고 문화·예술까지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한데 ‘청각장애인이니까 못할 거야’란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김 센터장은 수어에 대한 대중 인식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꼬집는다. 일례로 앞서 의대생들이 ‘덕분에 챌린지’를 풍자하는 취지로 진행한 ‘덕분이라며 챌린지’를 들었다.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하며 당시 ‘존중’을 뜻하는 수어를 뒤집은 손 모양이 대표 이미지로 사용됐다. 청각장애인들은 이 모양이 ‘저주’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주관 단체는 논란이 불거지자 공식적으로 사과 성명을 냈다.

“세 살 무렵 고열로 청력이 소실돼 장애를 갖게 됐고 농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입학해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학업을 이어가는 데 많이 힘들었죠. 대화하거나 수업을 듣지 못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나이에 견디기 벅찼습니다.”

후천적 요인으로 청각장애를 가진 사례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 센터장은 학창 시절에 소통이란 장벽이 너무 높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제화공장, CNC(컴퓨터 이용 가공 일) 선반기계 작업 등 직장도 여러 곳을 다녔다. 하지만 매번 비장애인 동료들과 차별은 물론이고 참기 힘든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지내던 그는 일자리를 찾아 20여년 전 인천에 정착한 뒤 그동안 가슴속으로 품었던 포부를 점차 실천했다. 사회 속에서 평등하게 대우 받지 못하는 농인의 권익 증진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인천농아인협회와 인연을 맺었고 같은 환경에 처해 있는 언어·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청년회장, 이사 등을 거쳐 2017년 협회장으로 당선됐다. 협회 정관에 따라 수어통역센터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김 센터장은 “농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들의 삶이 보이고, 농인의 삶에 공감하다 보면 비장애인 등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것”이라며 “청인과 농인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편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라 수화언어는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이고, 수화가 아닌 수어를 공식용어로 쓴다.

 

인천=글·사진 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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