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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정치를 능가하는 문화외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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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04 22:32:24 수정 : 2020-09-04 22: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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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영항공사인 ‘엘알’이 최근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아랍에미리트에 처음으로 직항 노선을 운항했다. 미국의 중재에 의한 협약의 후속조치였지만,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의 노력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파울 슈마츠니 감독의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음악이 정치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대인 피아니스트이며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친구인 팔레스타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기획한 오케스트라 워크숍 프로젝트를 영화화한 이 다큐멘터리는 평범한 사고로 굳어진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을 준다. 1999년부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등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함께 구성된 서동시집오케스트라는 전 세계에 평화를 전하고 있다. ‘경계의 음악’이라는 음악비평집을 출간할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깊은 사유가 걸출한 마에스트로와 만나 중동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다.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일이지만, 장애물을 만나는 과정에서 점차 더 단단해져갔다. 이스라엘 국적을 지닌 단원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연주 기획 참여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고, 탱크와 폭탄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을 처음 만난다는 팔레스타인 출신 단원의 변화도 놀라운 것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독일 시인 괴테의 동서양 화합의 정신을 담은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비롯됐다. 영화의 영어 제목 역시 서동시집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아는 것이 시작이다’(Knowledge is the Beginning)로 화해의 첫 단추가 서로 알아가는 데 있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영화는 오케스트라의 연습과정과 연주회 실황 장면을 담아내 품격 있는 음악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함께 연주한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의 모습도 자못 감동적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2011년 한국의 임진각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했고, 요요마는 지난해 비무장지대에서 개최된 ‘DMZ 평화음악회’에서 연주한 바 있다. 정치적 평화는 오래 걸리지만, 문화적 접촉이 평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대를 하게 한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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