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겸 화가로 활동하는 조영남의 대작 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5년 동안 지속된 법정 공방의 종지부는 찍었지만, 이 사건은 현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변화와 작가적 양심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의미를 남긴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은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처럼 예술적 재현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뛰어넘은 사고, 보편적 기준에 도전하는 ‘발견’으로서의 예술관은 예술의 근본 개념까지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적 양심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다.
에이미 애덤스에게 72회 골든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빅 아이즈”(감독 팀 버턴)는 남편의 압박에 의해 대작화가로 남을 뻔한 미국의 화가 마가릿 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복사본과 엽서로도 만들어져 어릴 적부터 친밀하게 느껴졌던 ‘빅 아이즈’의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된 팀 버턴은 망설임 없이 시놉시스를 준비했고, 영화는 마가릿 킨의 전시회를 보러 간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그녀의 그림을 가깝게 다가오게 만들어졌다.
초상화를 그려주며 딸과 함께 살아가는 싱글 맘 마가릿은 남의 그림에 자신의 사인을 덧새기며 팔아온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의 유혹에 빠지게 돼, 그와 재혼하게 되면서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에 갇히게 된다. 월터가 마가릿의 그림에 이름은 빼고 킨이라는 성만 넣을 것을 요구하자 그녀는 여성 작가로 작품을 팔기가 어려우니 마지못해 동의한다. 마가릿의 작품이 최고의 인기를 얻게 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게 되자, 마가릿은 더더욱 남편의 요구를 거스를 수가 없게 된다. 진짜 화가가 자신임을 딸에게까지 숨기고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점차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는 남편에게서 탈출하여 결국 그를 법정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빅 아이즈’는 법정에서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지만, 조영남 사건은 법정 공방 외에 많은 과제를 남긴다. 창작이냐 대작이냐의 경계를 가르기 어려워진 만큼, 작가적 양심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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