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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권력구조 개편 합의 어려워… 개헌 쉽지 않을 듯” [황용호의 一筆揮之]

, 황용호의 일필휘지

입력 : 2020-07-14 20:27:55 수정 : 2020-07-14 21: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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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前서울대 총장 개헌 진단 /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 개정 필요성 / 여야 상임위장 배분은 오랜 관습법 / 與 다수석 얻었다고 싹쓸이는 곤란 / 野 법사위장 차지 못했다고 거부 안돼 / 상생·협치 위해 ‘나눔의 정치’ 중요 /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워낙 심각 / 법원조차도 대통령 눈치만 봐서야 / 고위직 ‘1가구1주택’ 권고는 바람직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1987년 이뤄진 9차 개헌은 체계정합적이지 않고, 위헌적인 요소(헌법 29조2,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의 이중 배상 금지)가 있다”며 “특히 제헌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 관련 조항이 그대로 있고, 정보화 사회 등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고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역대 정권이 개헌을 추진했고, 2017년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 활동하는 등 헌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과 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하는 등 철저히 준비된 상태”라며 “그러나 여야가 권력 구조 개편을 놓고 합의할 가능성이 작아 개헌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여야가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합의조차 못 하며 형성된 대결국면에서 어떻게 개헌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원장을 둘러싼 여야 이견으로 21대 원 구성이 파행을 겪는 데 대해 “1988년 13대 국회부터 32년간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장을 의석수에 따라 배분한 것은 국회법에 없으나 오랫동안 해 온 관습법”이라며 “다수 의석을 얻었다고 해서 싹쓸이하는 것은 아니다”며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민주당의 행태를 나무랐다. 이어 “그동안 야당이 맡았던 국회 법사위원장을 차지하지 못해 자기 당에 배분된 국회 부의장과 7개 상임위원장을 추천하지 않은 미래통합당의 처사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성 전 총장은 “많이 가지면 베풀어야 하는데, 많을수록 더 갖겠다는 게 권력의 속성이고 인간의 심성인가. 정치에도 나눔의 미학이 필요하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고 상생의 정치와 협치를 여야에 주문했다.

헌법학자로 서울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그를 72주년 제헌절에 앞서 지난 13일 서울대 인근 연구실에서 만났다.

―개헌은 왜 필요한가.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은 대통령제이면서 국무총리제를 도입하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가 상당히 많았다. 1952년 발췌 개헌, 54년 사사오입 개헌에 이어 1960년 4·19혁명으로 3차 개헌을 하며 순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1962년 제3공화국 헌법이 비교적 대통령제에 가까웠는데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대통령이 총리 임명 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의원내각제 요소도 가미했다. 그때부터 부통령제 대신 총리제가 계속되고 있다.

1969년 3선 개헌이 있었고, 1972년 유신헌법과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간선제였다. 대통령 권력이 대통령제보다 더 강하면서 간선제를 하는 것은 국민적 정당성이 없다. 그래서 1987년 현재의 헌법이 나왔다. 1948년 헌법을 만들어 1987년까지 9차 개정을 했고, 제헌헌법까지 합치면 현행 헌법은 열 번째다. 39년 동안 헌법이 열 개 있었으니 평균 수명은 3.9년이다. ‘헌법이 춤추는 국가’ ‘헌법의 왈츠 시대’였다. 이처럼 헌법이 자주 개정된 것은 헌정 중단과 혁명, 쿠데타의 반복을 뜻하며 헌법은 존재하되 장식품에 불과했다. 1987년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으로 당시 여야 8인 정치회담을 통해 개헌이 이뤄졌으나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를 제외하곤 제대로 다듬지 못했다. 1971년 대법원이 위헌판결한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에 대한 이중 배상 금지조항을 72년 유신헌법에서 헌법 조항(29조2)으로 채택했는데 87년 개헌 때 그대로 두었다. 9차 개정된 헌법이 33년째 지속되고 있는데 그동안 혁명과 쿠데타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헌법학 이론에서 그 나라가 민주주의가 됐느냐는 기준은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되면 외형적 민주주의는 일단 이뤄진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권교체를 합치면 세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독재국가 시대는 지났고, 외형적으론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그러면 내실을 다져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고 늘 시끄럽다. 원인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어서다. 특히 대통령 권한은 헌법에 규정된 것보다 훨씬 세고, 총리 등 나머지 권한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모두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 또 현직 대통령의 탄핵,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거나 자진(自盡)하는 등 폐해도 적지 않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은 지난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인근 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현행 헌법은 체계정합적이지 않고, 위헌적인 요소와 제헌헌법에 규정된 지방자치 관련 조항이 그대로 있고, 정보화 사회 등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내용이 많다”면서도 “여야가 권력 구조 개편을 놓고 합의할 가능성이 작아 개헌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어떤 형태로 헌법을 바꾸어야 하나.

“제도를 변경해보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려면 권력을 분점해야 한다. 순수 의원내각제가 방안일 수도 있겠지만 1960년 의원내각제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그때 말이 민주당 내 신파, 구파였지 사실상 민주당의 신파, 구파 양당제였다. 신파가 구파보다 의석이 조금 더 많았는데 신파의 장면 총리와 구파의 윤보선 대통령은 맨날 싸웠다. 의원내각제가 채택되면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나라의 큰 어른으로서 외교, 통일, 국방 등 외치를 맡고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며 권력을 나눠야 한다. 이원정부제가 꼭 좋다는 게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에 따른 폐해가 워낙 심각하니 과도기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모양새를 헌법에 갖춰 놓자는 것이다.”

―국회 의석이 진보진영 190석, 보수진영 110석이다. 개헌을 추진할 적기가 아닌가.

“어렵다. 연구가 안 돼 개헌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권력 구조를 놓고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 대선 때 개헌을 공약해도 어느 정당이든 정권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개헌을 제안했는데 대선을 앞두고 제대로 진행될 리가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초인 2018년 3월,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야당이 본회의 의결에 불참해 무산됐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전임 대통령에 비해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개헌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야당에 협조를 안 구하고 개헌안을 내봐야 안 될 것이 뻔한 이치를 아는 문 대통령이 굳이 제출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차원에서 헌법에 규정된 의원의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의원의 불체포 특권, 면책특권은 각국 헌법에 다 규정돼 있다.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왕이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것을 방지하고, 민주화 이후엔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의해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다. 면책특권과 관련해선 의회에서 의원의 직무상 발언과 표결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까지도 보호해줄 필요가 있느냐가 논의된 정도다. 의원의 불체포, 면책특권 존재 자체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우리나라에 3권 분립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안 되고 있다. 그러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 않나. 대통령 한 사람이 다하고 있다. 전부 대통령 눈치만 본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십 년간 대법원장은 대법관 중에서 임명됐다. 대법관이 아니면 하다못해 고등법원장 중 고참 법관을 대법원장에 임명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초임 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에 앉혔다. 박근혜정부 때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감사원장에 임명했다고 난리를 치지 않았나. 대법관, 헌법재판관 임명도 여야 의석비율대로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전 의원이 단적인 예다. 국회의원은 지역민의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국민의 대표자로,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발언, 표결한다. 민주당이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헌법상 큰 원칙인 자유 위임의 법리에 어긋난다. 그런 예는 한두 개가 아니다.”

―정부의 다주택 고위공직자에 대한 ‘1가구 1주택’ 권고는 어떤가.

“정부가 민간인에게 그렇게 하라면 문제지만 국가적인 과제를 추진하며 고위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다주택 여당 의원들이 ‘실거주용 1주택 서약’을 했으면 이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위공직자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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