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데스크의눈] 체벌, 부모의 권리가 아니다

관련이슈 데스크의 눈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0-07-07 22:56:29 수정 : 2020-07-07 22:56: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랑의 매는 괜찮다’ 인식 많아 / 맞아도 되는 나이·사람은 없어 / 62년 만에 민법 조항 손질 나서 / 부모, 올바른 훈육 방법 찾아야

최근 국민적 공분을 안긴 아동학대 사건을 보면서 지난해 접했던 영화 ‘미쓰백’이 떠올랐다. 끔찍한 아동학대를 주요 소재로 다룬 이 영화 속 장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니 참담하다. 영화에서 아홉 살 여아 ‘지은’이는 아빠와 아빠의 동거녀(계모)에겐 귀찮은 짐이자 화풀이 대상에 불과하다. 지은이가 헐벗고 굶주린 채 방치되거나 폭행 등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당하는 동안 이웃과 사회는 안전한 보호막을 펼쳐주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아리고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에선가 지은이처럼 매순간 공포를 맞닥뜨리며 신음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서다.

그 아이들 중 하나가 지난달 사망한 충남 천안의 A(9)군과 목숨을 걸고 집을 탈출한 경남 창녕의 B(〃)양이다. 공교롭게 둘 다 지은이와 동갑내기다. 친부와 계모의 방치와 폭력에 노출됐던 A군은 숨지기 전에도 계모에 의해 여행용 가방에 갇히고 밟히다 의식을 잃었다. B양도 지옥에서 살았다. 친모와 계부의 고문을 방불케 하는 가혹행위에 고통스러워하다 4층 높이의 빌라 베란다를 넘어 탈출했다. 친부모든 계부모든 ‘어떻게 부모라는 이름으로 저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강은 사회2부장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신고 접수 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만 해도 2015년 1만1715건에서 지난해 3만70건으로 급증했다. 가해자 대부분은 부모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학대로 숨진 아동도 16명에서 43명으로 확 늘었다. 아동학대가 가정 등 은밀한 공간에서 자행되고 피해자가 어려 직접 신고하기 힘든 점을 감안하면 실제 건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부모 등 친권자의 자녀 체벌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물론 체벌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2015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지 못하게 했다. 실상은 다르다. 우리 사회가 ‘훈육을 위한 체벌’에 관대해서다. 1958년 제정된 민법 915조도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징계권 조항은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려고 불가피하게 징계할 경우라도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징계와 체벌의 구분이 불분명한 데다 부모에게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오인되게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무부도 A군과 B양 사건을 계기로 62년 만에 민법의 징계권 조항 삭제와 체벌 금지 명문화에 나섰다.

논란이 클 것이다. 도저히 말로는 훈육하기 어려운 자녀의 버릇이 더 나빠지기 전에 ‘사랑의 매’ 좀 들었다고 범죄 취급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이 만만찮을 수 있다. 복지부의 ‘2018년 체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결과를 봐도,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68.3%) 등 체벌 필요성에 대한 긍정적 의견이 76.8%로 ‘필요 없다’(18.2%) 등 부정적 의견 23.2%를 크게 앞섰다. ‘학대는 용납할 수 없지만 사랑의 매는 괜찮다’는 인식이 상당함을 엿볼 수 있다.

이 때문에라도 민법 915조가 반드시 손질됐으면 한다. 체벌한 부모를 무조건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아동 체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다. 대부분 아이에게 체벌 효과는 그때뿐이라고 한다. 체벌 당하는 순간의 공포심이 옅어지면 십중팔구 도루묵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급기야 체벌이 잦아지고 강도가 세지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악화하거나 학대로 변질되는 등 회복하기 어려운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게 아동보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1월 13일 세이브더칠드런 등 아동단체가 마련한 ‘징계권 조항 삭제’ 촉구 기자회견에 아동 대표로 참석한 임한울(9)양은 “주위 친구들은 다양한 이유(잘못으)로 체벌을 받는데 어른들은 똑같은 행동(잘못)을 해도 체벌을 받지 않는다”며 “이 세상에 맞아도 되는 나이,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부모들이 어떻게든 감정을 자제하고 인내하면서 올바로 훈육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호소로 들린다.

 

이강은 사회2부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