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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둘째아이 위해 시작한 요리… ‘미식 전도사’ 되다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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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7-04 18:00:00 수정 : 2020-07-04 11: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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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푸드스타일리스트 홍신애씨 / 희귀병 앓아… 유기농 음식에 관심 / 미국 유학시절 뉴욕 요리투어에 ‘푹’ / 국내 전문잡지 칼럼 기고하며 인연 / 수요미식회 등 1000개 넘는 방송출연 / 제주 재래 흑돼지 등 새 식재료 소개 / 치악산 버섯·토종 무화과도 선보여 / 사과·비트·당근 넣은 ‘ABC주스’ 열풍 / 3주 만에 뱃살 11㎝ 다이어트 효과

요즘 포털사이트에 요리연구가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 ‘홍신애’를 검색하면 연관 단어로 ‘홍신애 ABC주스’가 뜬다. 지난 5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tvN 프로그램 ‘건강함의 시작, 몸의 대화’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인 홍신애(44)씨가 애플·비트·캐럿으로 만든 주스를 먹은 뒤 3주 만에 뱃살이 11cm가 줄고 내장지방이 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ABC주스가 열풍이다. “사실 방송에서 ‘생체실험’으로 시작했는데 그렇게 안 팔리던 애플, 비트, 캐럿이 쇼핑몰에서 거의 품절이 됐다고 하네요. 농가들이 주는 표창장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호호”. 인플루언서는 말 그대로 영향력이 대단하다. 맛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먹방시대’를 이끈 수요미식회 등 그가 출연한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은 1000개가 넘는다. ‘미식과 식재료의 전도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홍신애씨가 찾아낸 진정한 미식은 무엇일까.

수요미식회 등 요리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맛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는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서울 학동로의 홍신애솔트2호점에서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로운 식재료 발굴하는 ‘맛의 얼리어답터’

지난달 29일 서울 학동로 홍신애솔트 2호점을 찾았다. 그가 운영하는 소문난 강남맛집이다. 다행히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구름 사이로 햇살도 쏟아진다. 날이 좋기에 사진촬영부터 청했다. 하얀 벽과 옅은 산수유빛 파스텔톤의 유리창문틀, 그곳에 놓인 분홍과 노랑 야생꽃 화분이 예쁘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유럽의 골목에서 흔히 만나는 카페 같다. 여기에 주인장이 흰티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서니 보정 하나 없이 완벽한 화보가 된다. 다양한 얼굴 표정이 모델처럼 자연스럽다. ABC주스 덕분에 피부도 좋아졌는지 화장이 아주 잘 받은 것 같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몸이 아주 좋아져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ABC주스를 짜 먹는 게 요즘 일상이에요. 좋은 습관 탓인지 피부톤이 밝아졌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답니다.”

방송 덕분에 ABC 주스를 알게 됐지만 사실 그는 새로운 식재료를 찾아서 소개하는 일이 주업인 ‘맛의 얼리어답터’다. 천연기념물 550호로 지정된 제주 재래 흑돼지가 대표적. 우리가 먹는 제주 흑돼지와 완전히 다르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외국에서 도입된 개량종과의 교잡으로 순수 재래 흑돼지 개체수가 급감했는데 정부가 순수혈통을 찾아낸 뒤 사육해 관리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요. 250∼300마리 정도는 보존하고 잉여분은 도축이 가능하답니다. 우리나라 돼지들은 외래종이 많이 섞여 비릿 맛과 누린내가 나는데 재래 흑돼지는 상큼한 기름맛이 나요. 이를 알려주고 싶어서 팝업 행사를 통해 재래 흑돼지 돈가스, 제육볶음을 선보였답니다.”

재래 흑돼지는 양이 많지 않아 YBD 얼룩돼지로 ‘삼겹살 통구이’를 내놓고 있다. 흑돼지(버크셔), 백돼지(요크셔), 갈색털을 지닌 황금돼지(듀록)를 교배한 얼룩돼지는 좋은 품종의 장점이 고루 섞여 껍질이 탱글탱글하고 맛이 달며 보드랍다. 얼룩돼지 오겹살을 레드와인에 재우고 향신채소를 넣어 24시간 삶은 뒤 다시 구워내는 과정을 거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든다. 기름을 빼고 무화과소스와 애플처트니를 곁들이고 달콤한 과일소스와 인도산 통후추로 마무리하는데 프랑스 부르고뉴를 대표하는 미식 뵈프부르기뇽이 울고 갈 정도로 오묘한 맛이다.

치악산 포르타벨라 버섯도 그의 작품. 보통 버섯은 부재료로 많이 쓰는데 미국에서 커다란 모자버섯 같은 포르타벨라를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는 것을 보고 이를 국내에 소개했다. 국내 치악산의 버섯 농가와 시험재배에 성공해 지금은 여러 파인다이닝에서 이 버섯으로 메인 디시를 선보인다. 토종 무화과도 있다. 제철인 10월 맛이 절정에 달하지만 주로 외래종 무화과를 6∼9월에 많이 먹기에 정작 10월에 맛있는 토종 무화과를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이에 10월에 1년치 무화과를 냉동해 소스로 만들어 선보인다.

◆아픈 아이를 위해 시작한 건강한 요리

요리책을 쓰고 잡지에 레스토랑 칼럼을 기고하던 그는 2006년 tvN 개국 때 우연하게 옥주현이 진행하는 토크쇼 ‘라이크 어 버진’의 요리를 맡으면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보통 출연자들은 소품 음식을 먹으면 3년 재수 없다는 속설 때문에 잘 먹지 않아요. 하지만 제 요리들이 너무 맛있다면서 싹 먹어 치우더라고요.”

31살 때 업계 최연소 요리선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를 계기로 박수홍, 김현철, 성시경 등이 진행한 요리 프로그램을 거의 도맡았다. “굿모닝 FM에서 전현무씨와 말로 하는 요리를 3년 진행한 것을 계기로 그와 함께 2015년 수요미식회 첫 방송 때부터 패널로 출연했어요. 시즌1 마지막 방송까지 4년 동안 활동했는데 딱 한 차례 펑크냈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무단결근하고 무작정 미국으로 갔죠.”

그의 가족 사랑은 대단하다. 사실 요리도 둘째아이 때문에 시작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둘째아이가 ‘성장 호르몬 결핍 증후군’ 판정을 받았다. 의사들은 머리에 계속 물이 차 1년도 못 살 것이라며 포기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마 그때 평생 울 거 다 울었을 거예요. 샴쌍둥이 등 기형아들이 있는 특수병동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보험처리가 안 되더군요. 한국에서 와서 수소문 끝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인요한 교수를 알게 됐죠.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하고 아이가 15개월쯤 됐을 때 기적적으로 호르몬이 정상수치로 돌아오더군요. 36개월 때쯤에는 말을 시작했어요. 얼마나 기뻤던지 드디어 아이를 살려냈다면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이는 먹는 음식마다 다 토하고 몸에 두드러기도 올라왔다. “막상 아이는 살아났지만 먹일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식재료를 뒤지기 시작했고 유기농이 뭔지도 파고들었죠.”

그렇게 아이에게 먹이던 건강한 음식을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일기처럼 하나씩 올렸는데 주부들이 이를 따라하면서 요즘 말로 파워 블로거가 됐다. 마침 고등학생이 된 둘째가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를 돕고 있다. 그런 희귀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우람하다. 그때 연구한 식재료가 큰 도움이 돼 지금 모든 요리에 쓰고 있단다.

◆작곡을 꿈꾸던 소녀 미식 전도사 되다

아픈 아이를 위해 요리를 시작했지만 사실 그의 몸속에는 ‘요리 DNA’가 늘 꿈틀대고 있었나 보다.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할 정도로 대학시절 때만 해도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졸업 후 음대 입시학원에서 ‘새끼 선생님’으로 일하다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4개 대학교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모두 떨어졌다. 집에는 “음대에 합격했다”는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무작정 뉴욕에 눌러앉았다. 그곳의 미식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뉴욕은 핫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묶어서 둘러보는 미식 투어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더군요. 요리학원에서 하루짜리 강의를 들으며 계속 먹으러 다녔죠. 집에 와서는 그 요리를 그대로 만들어 봤어요. 그런 경험을 국내 요리전문 매거진 쿠켄에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와 인연을 맺었답니다.”

미국 뉴스쿨 유니버시티에서 쿨리너리 과정을 공부한 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호텔외식급식경영과에서 요리공부를 이어갔다. 뉴욕 요리투어 체험을 살려 이태원에서 아프리카, 벨기에 음식 투어를 시작했는데 신청자들이 미어터질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자신을 얻어 2006년 압구정 로데오에 유기농 카페를 차렸지만 쫄딱 망했다.

“둘째아이 일을 겪으면서 유기농 음식만이 살길이라고 보고 시작했어요. 시중 요구르트가 300원이던 시절에 8000원짜리 유자청 요구르트를 내놓았고 글루텐프리 빵도 선보였죠. 그런데 유기농이 뭔지 전혀 모르던 시절이라 왜 비싼 돈을 주고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손님들이 전혀 이해를 못하더군요.”

다행히 요리학원, 샌드위치 전문점을 거쳐 2011년 ‘쌀가게 by 홍신애’로 대박을 터뜨렸다. 국내 최초로 즉석에서 쌀을 도정하고 밥을 지어 식판에 내놓는 9900원짜리 무한리필 식사였는데 밥맛에 반한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쌀도 사과처럼 껍질을 까면 갈변하기 시작하고 맛도 변해요. 하루에 100인분만 팔았는데 식판에 내놓으니 처음에는 얌통머리 없다는 소리를 들었죠. 하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밥맛에 향미유 대신 참기름만 쓰고 고기도 250g씩 나오니 손님들이 줄을 섰죠. 손님의 20%는 암환자일 정도로 건강식으로 소문이 났답니다.” 쌀가게 덕분에 미리 만든 밥을 온장고에 보관하다 내놓던 많은 밥집들이 그때그때 밥을 짓는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모든 식당의 밥 온장고는 없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홍신애에게 진정한 미식이란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겨우 재료값만 받는 수준이라 한 달이면 손에 남는 것은 50만원 정도였다. 어쩔 수 없어 4년 만에 문을 닫고 2013년 신사동에 홍신애솔트 1호점을, 2018년 학동로에 홍신애솔트 2호점을 냈다. 식품기업들의 메뉴 컨설팅도 그의 몫이다. 롯데리아의 많은 신메뉴 버거들이 그의 작품이고 롯데리아가 론칭하는 칼국수집 ‘오색면전’의 메뉴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수요미식회에 출연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전남 무안 제일회식당의 기절낙지, 서울 당산오돌본점의 꼬들살을 꼽았다. 커피 리브레는 커피 원두를 다양한 맛으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 이제 그의 레스토랑에서도 내놓는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미식은 ‘건강과 정성’이란다. 실제 당근 요리 하나만 해도 3일이나 걸린다. 유기농 당근을 디종 머스터드에 24시간 마리네이드한 뒤 진공팩에 넣어 끓는 물에 삶고 올리브와 후추로 숙성하는 정성이 가득 담긴다.

“화려한 기교는 없어도 괜찮아요. 사랑하는 식구나 집에 초대한 손님을 위해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을 담아 만든 음식이 진정한 미식 아닐까요.”

 

글·사진=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1976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호텔외식급식경영과 졸업 ●미국 뉴스쿨 유니버시티 쿨리너리 과정 수료 ●이탈리아 식당 홍신애솔트 대표 ●홍신애 요리연구소 대표 ●쌀가게 by 홍신애 대표 ●농림부 찾아가는양조장 홍보대사 ●저서 요리책 30분 요리가된다, 제대로 집밥 등  ●최고의 요리비결, 올리브 쇼, 홈메이드 쿡, 수요미식회 등 TV 요리 프로그램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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