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21년 전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청부 배후는 누구?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0-06-28 18:00:00 수정 : 2020-06-28 16:58:1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경찰, 재수사 검토/조직폭력배 살인교사 주장 논란/1998년 도지사 선거 관련 의혹 제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21년 전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의 교사범임을 주장하는 조직폭력배가 나타났다. 청부 배후가 누구인 지를 둘러싸고 의문이 증폭하고 있다.

 

사건 1년 여 전에 치러진 1998년 제주지사 선거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조폭의 선거 개입설까지 불거져 지역사회가 술렁거리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7일 ‘나는 살인교사범이다-제주 이 변호사 살인사건’ 방송을 통해 영구미제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이 변호사는 1999년 11월5일 오전 6시48분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옆 모 아파트 입구 사거리에 세워진 자신의 쏘나타 차량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이 변호사는 44세였다.

 

제주 출신인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지검과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했다. 

 

검사 출신인 피해자는 몇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검사 시절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한없이 마음이 약했지만 옳고 그른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 변호사.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과 동기인 44살 검사 출신 변호사의 죽음은 당시 큰 충격을 안겼다.

 

날카로운 흉기에 배와 가슴 등을 공격당한 이 변호사. 발견 당시 차 문이 잠겨있었고 금품은 그대로였다.  부검 결과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에 6곳을 찔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하나는 흉골을 관통하고 이 변호사의 심장을 직접 겨냥했다. 당시 수사 관계자는 “전문가처럼 정확하게 심장을 찔렀다”며 킬러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부검의였던 강현욱 제주대 교수는 “흉골을 뚫고 들어가 심장까지 이르렀다. 자입 방향이 거의 수직이었다. 당시 형사분들과 흉기에 대해 논의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수한 흉기라 추측될 뿐 흉기를 찾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흉골을 뚫을만한 물체를 쉽게 떠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기관에서는 피해자가 순식간에 제압된 것으로 보고, 우발적인 살인보다는 치밀하게 계획된 청부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지역 형사 인력이 총동원돼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애초 치정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주변 인물들의 사건 당일 행적 등을 조사했으나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은 2014년 11월 4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처벌도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9년 11월 이 변호사의 살인을 교사했다는 ‘유탁파’ 전 조직원이 등장했다. 스스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 연락해 21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해외에 체류 중인 김모(54)씨는 이 사건은 자신이 속했던 제주도 폭력조직 유탁파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당시 유탁파 두목의 명령으로 ‘갈매기’라 불리는 조직 내 동갑내기 손모씨가 이 변호사를 살해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탁파 두목 백모씨에게 호출을 받았다는 그는 ‘문제가 있어서 손을 좀 봐야 하는데 동생 하나 시켜서 혼만 좀 내줘라. 다리에 두 방. 그 누구도 몰라야 하고 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한 사람한테 일을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갈매기’와 상의를 했다는 그는 “갈매기가 ‘대상이 위험하고 제주 바닥이 다 뒤집힐 사건이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두목은 다리를 찔러 겁을 주라고 했지만 자신의 말을 듣고 직접 행동에 나선 갈매기가 피해자가 저항하는 과정에서 살해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제작진이 유탁파 두목의 범행 동기를 수소문하던 중 느닷없이 1998년 치러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신구범·우근민 후보가 출마한 제주지사선거를 부각시켰다.

 

이 변호사는 당시 우근민 후보 측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제주시 애월읍 청년의 양심선언을 돕고 있었다. 기자회견까지 한 청년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제작진은 이 변호사가 부정선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년을 찾아 나선 행적을 추적했다. 당시 유탁파가 도지사 선거 등 지역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을 의혹까지 제기했다.

 

신구범 전 지사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 변호사가 양심선언 사건을 추적하지 않았더라면 저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청부살인과 지방선거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반면 우근민 전 지사는 인터뷰에서 22년 전 부정선거 관련 양심선언을 한 청년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탁파의 캠프 지원설도 그런 일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제작진은 프로파일러 등의 심리분석 결과를 토대로 제보자인 김씨가 두목의 지시에 의해 손씨에게 범행을 교사한 것이 아니라 직접 이 변호사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씨 주장과 달리 범행 지시가 이뤄진 1999년 10월 두목은 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살인을 했다던 손씨는 1998년 8월 연동에서 강도사건으로 입건돼 형사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실체를 밝혀줄 손씨는 공소시효를 두달 앞둔 2014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두목 백씨 역시 이미 고인이 된 상황이어서 김씨 주장의 신빙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폭 전담 베테랑 형사 출신인 강모씨는 “살인 지시하는 건 제주도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 가서 협박하라는 건 있다. 조폭이 민간인을 그렇게 살인하는 걸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 유탁파 두목 역시 김씨가 마약과 카지노 등으로 문제를 일으켜 해외 카지노를 전전하고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봤다.

유탁파 현 두목은 김씨의 주장에 대해 “그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백씨 형님도 잔혹하지 못하다. 20년 밑에 애들 데려다가 범행을 했겠냐. 제보자가 뭔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는데 잘못 짚은 거다. 우리 세계에도 룰이 있다”고 말했다.   갈매기 손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투자를 잘못해서 괴로워서 죽인거다. 죽은 사람만 이야기했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갈매기는 당시 경찰 수배 상태였다고 한다. 수배 상태에서 친구와의 우정 때문에 범행에 나선다는 것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김씨가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친구 갈매기를 살인사건 범인으로 각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수정 교수는 “이 사람이 주장하는대로 동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런다고 이미 사망한 친구의 명예가 회복될리 없고 결국 그 친구가 죽였다는거다. 자기는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망인에게 불명예를 안겨야 할 이유가 뭐냐”고 분석했다.

 

표창원 교수는 “순수하게만 볼 수 없다. 공소시효가 완료됐고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인한 뒤 나오는 제보다”라고 말했다.

표 교수는 “갈매기가 했다는 상황이 갈매기를 빼고 제보자를 넣으면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수정 교수 역시 “21년 전에 갈매기로부터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경험한 것이 아니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두목 백씨는 사건 당시 5년 전 교도소에 들어가 이 변호사 사망 후 10일 뒤에 출소했다. 그러나 제보자 김씨는 “형님이 오라고 했다. 만나서 장소를 옮기고 이야기 했다. 지금 얘기는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유탁파 현 두목은 제보자에 대해 “못된 짓을 해서 마약하고 해서 쫓아냈다. 노름하고 카지노 다녔다”고 말했다. 마약과 도박에 빠져있다는 그에게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신에게 살인교사를 지시한 사람에게 경고를 보내고 지원하게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보를 택했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방송이 나간다면 청부한 사람은 위기를 느낄 것이라는 것.

 

제작진은 이 변호사의 옛 사무실 직원을 통해 당시 고인이 사용하던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확보하고 복원 중이다. 관련 내용은 경찰과도 공유하기로 했다.

 

제주경찰청 미제사건전담팀은 제보자의 등장에 따라 관련 자료를 수합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보자의 신빙성을 우선 확인하고 사실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변호사 피살 사건은 수사기록이 6000쪽에 달할 만큼 복잡했으나 미제로 남았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