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로 인한 문제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백인 경찰에 목이 짓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 시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뉴욕에서 비무장 흑인이 경찰에 사살되고, 경찰이 시위하는 사람들을 거세게 밀쳐 부상을 입히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어제오늘 일이 아닌 인종차별에 대한 대책은 없는 것일까. 2006년 아카데미 작품상, 편집상, 각본상을 수상한 ‘크래쉬’(감독 폴 해기스)는 여덟 개의 이야기 축으로 이틀간의 인종갈등 사건을 거미줄처럼 엮어놓고 이를 극복하며 마무리하는 놀라운 구성으로 편집돼 있다. 서로 부딪치며 상처를 준다는 ‘크래쉬’라는 의미의 영화는 LA를 배경으로 동양인,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 간의 문제가 오해에 근거한 것임을 드러낸다.
백인 경찰인 라이언(맷 딜런)과 핸슨(라이언 필립)은 순찰을 돌다 지방검사 릭(브랜든 프레이저)과 그의 아내 진(산드라 블록)이 두 흑인 청년에게 강탈당한 차와 같은 차종을 발견한다. 그 차 안에는 흑인 방송국 PD인 카메론(테렌스 하워드)과 아내 크리스틴(탠디 뉴튼)이 타고 있었다. 부부를 차에서 내리게 한 후, 라이언은 무기소지 여부를 검사한다는 핑계로 크리스틴의 몸을 더듬는다. 크리스틴은 성추행에 가까운 라이언의 손길에 분노를 터뜨린다. 지식인이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게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카메론은 아내에게 조용히 하라고 타이른다. 집으로 돌아온 크리스틴은 남편에게 화를 낸다. 그러나 흑인으로 자라면서 카메론은 백인 경찰에게 대들다가는 이유도 없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을 터였다.
인종갈등으로 인한 오해는 크리스틴 차에 불이 나자 경찰 라이언이 구하는 에피소드와 다음 날 역시 도난 차량 소지자로 오해받은 카메론을 핸슨이 동료 경찰에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서 풀린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친한 사람이었다면 풀릴 오해라고 해결점을 찾는 이 영화가 판타지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타자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 외에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운 듯하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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