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위기가 장기화, 구조화될 것 같다. 몰락한 일본 정유업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국내 정유업계가 저유가로 인한 정제마진 감소, 글로벌 경기 침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겹악재를 맞아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전통적으로 정유·석유화학·화학 업종은 국제유가, 글로벌 경기와 연동돼 업황이 교차해온 사이클 비즈니스다. 불황을 맞아도 다음 호황기를 기대하고 투자하는 게 정유업계의 경영 패턴이지만, 이번엔 재기할 체력을 유지할지 위기감에 둘러싸여 있다.
24일 정유 및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정유 4사는 2조원대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맏형 격인 SK이노베이션은 영업손실액이 1조원을 넘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KB증권(-8302억원), 삼성증권(-8200억원) 등 증권사 영업이익 전망치도 확대일로다. 이 같은 손실은 역대 최악이다. 유가가 폭락한 2018년 4분기(-2789억원), 미국 셰일을 겨냥한 가격전쟁이 벌어진 2014년 4분기(-4565억원) 등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위기 때보다도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는 “장치산업 특성상 유지, 보수만 해도 대형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이 때문에 다른 성장동력을 준비하지 못한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 가운데 SK의 대형 전지사업(자동차용 배터리) 사업 외엔 두드러진 것이 없다. 이마저도 SK가 LG화학과의 영업기밀 유출 소송전에서 ‘실격패’를 당해 상당한 합의금이 손실로 추가될 전망이다.
악재는 상정 가능한 모든 경우가 겹쳤다. 정제마진 악화, 재고평가손실, 환차손 등 주변 지표가 최악이다. 정제마진의 경우 한때 배럴당 8, 9달러를 오르내리던 것이 지난주엔 -1.9달러(주간 기준)까지 떨어졌다. 국내 정유사들은 배럴당 4달러선을 손익분기점(0원)으로 본다. 돌릴수록 손해인데 자동차 공장처럼 셧다운(가동중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설비를 한 번 껐다 켜는 데 1∼2주가 소요되고, 공장 규모에 따라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지역 코로나19 확산세로 수송용 유류 소비 급감 등 글로벌 수요 위축(공급 과잉)도 현실화하는 중이다. 국내 설비 가동률이 이달에만 10∼15% 하락한 배경이다.
장기적으로는 자국 셰일과 원유를 무기로 에너지 패권 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동, 세계 최대 내수시장을 보유한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기술력 하나로 써온 수출신화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역차별적 요소 제거, 불합리한 세제와 규제 재검토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원유 무관세와 석유수입부과금 형평성 개선이 대표적이다. 통상 관세는 자국 산업 보호가 목적이지만 한국에선 세수로 활용됐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국에 비해 원가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만큼 관세를 폐지하거나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게 정책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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