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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정치와 만났을 때… “웃어도 되나” 씁쓸한 뒷맛

입력 : 2020-02-23 09:05:33 수정 : 2020-02-23 09: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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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짜파구리 오찬’ 참석했던 ‘기생충’ 팀에도 반응 싸늘 / 트럼프 美대통령 “한국과 무역 문제 있는데 왜 기생충에 상 주나” / 정치권, 기생충에 ‘숟가락 하나 얹기’ 시도도 비판
봉준호 감독(왼쪽)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제작진, 배우 초청 오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광의 그림자일까.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의 쾌거를 달성하며 한국영화사에 획을 그었다. 나아가 세계 영화팬을 놀라게 한 ‘일대 사건’으로, 그 영광의 순간은 여러 번 곱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황홀한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하지만 영광 이후 정치권과 엮인 후 마뜩잖은 구설과 비판을 마주하게 된 현 상황은 유쾌할 리 없어 보인다.

 

◆하필 코로나 비상시국에… 빛 바랜 ‘기생충’ 靑오찬  

 

우선 ‘타이밍’이 문제였다. 지난 20일 봉준호 감독 등 기생충 제작진과 배우들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짜파구리 오찬’을 함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찬이 진행됐는데,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환자가 104명으로 대거 늘고, 첫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비판 여론이 제기됐다. “지금이 웃고 떠들 때냐” “국민은 불안한데 청와대는 딴 나라 같다” 등 비판이 쏟아졌다. 예정된 행사였다고 해도, 코로나19 급속히 확산하는 비상시국에 초청 시기가 부적절했다는 뒷말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에 참석해 봉준호 감독의 발언을 들으며 웃고 있다. 뉴시스

국위를 선양한 이들에 대한 격려 오찬이야 의례적인 행사지만, 코로나19로 불안한 국민정서를 헤아려 행사를 미루는 조치를 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기생충 수상을 축하·격려한다는 초청의 의미는 빛이 바랬다. 일부 네티즌은 초청된 기생충 팀에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특유의 유머로 해외팬을 쥐락펴락해온 봉 감독은 이날 김정숙 여사에게 배우의 극중 이름을 묻는 ‘깜짝퀴즈’를 내 현장을 웃게 했지만, 온라인 분위기는 달랐다. “이 마당에 농담이 나오나” “거슬린다” 등 코로나19로 화난 민심이 애꿎은 봉 감독을 향하기도 했다.

 

◆ 트럼프 “설상가상 韓영화가 상 받아…잘한 거냐?”

 

22일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기생충’의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을 공개 비판해 논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를 방문해 가진 선거유세 연설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이 얼마나 나빴는지 여러분도 봤을 것”이라며 “한국 영화가 상을 받았다”고 기생충을 저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러면서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우리는 한국과 무역에 관해 충분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설상가상 그들(아카데미)은 (‘기생충’에) 작품상을 줬다. 그게 잘한 거냐?”(What the hell was all that about? We got enough problems with South Korea, on trade, and on top of it they give it the best movie of the year. Was it good)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자.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라며 “그 영화는 80년 전인 1940년에 작품상을 받았다. ‘선셋대로’ 등 위대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며 ‘기생충’을 깎아내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한국 간 무역 문제를 ‘기생충’의 수상과 연관 지은 것을 두고 국내 영화팬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일본 영화라도 저렇게 말했을까” “영화를 왜 작품으로 안보고, 나라의 이득과 연결시키나” 등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의도적 ‘깎아내리기’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영화 ‘기생충’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앞서 정치권에서는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가 등장한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직후 숟가락 얹으려는 정치인의 언사가 비판 대상이 됐다. 총선 출마를 밝힌 예비 후보들이 ‘봉준호 공원’, ‘봉준호 동상’, ‘봉준호 생가터 복원’ 공약까지 내놨지만 반응은 싸늘했고, 당사자인 봉 감독이 “그건 제가 죽은 후에 해 달라”는 농담으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최근 기생충을 두고 정치적인 관점으로 엮이다보니 정작 작품성에 대한 재평가는 뒷전으로 밀려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이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인사였던 봉 감독의 반격이라거나, 영화 내용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풍자했다는 분석 등 정치적 시선으로 기생충 수상의 의미가 해석됐다. 그 시선의 온도는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공교로운 상황들과 껄끄러운 정치 이슈로 오르내리는 현 상황까지. 영광 뒤에 감내해야 할 유명세라기엔 그 뒷맛이 아리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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