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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상처를 덧나지 않게 치유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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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17 22:48:28 수정 : 2020-02-17 22: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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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에는 이런저런 상처 / 여기저기 ‘사회적 상처’도 깊어 / 외면·덮으려던 관행서 벗어나 / 전문가 처방 따라 제때 치료를

지난해 5월 14일, 교정에서 급히 회의 장소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야트막한 돌 턱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오른손을 짚은 탓에 오른편 가운뎃손가락과 손등 사이의 인대를 다치고 말았다. 넘어지는 순간은 주위 사람들 보기 창피해서 벌떡 일어나 툴툴 털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갔지만, 다친 부위가 부으면서 욱신욱신 아프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오른편 손등이 한껏 부풀어 올랐고 통증 또한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갔다.

함인희 이화여대교수 사회학

다음 날 아침 일찍 정형외과를 찾았다. 부풀어 오른 손등을 보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던 의사가 내린 진단은 ‘뼈를 다친 것 같지는 않고 인대를 다친 듯한데, 한 6개월은 고생하실 것 같다’였다. 그래도 엑스레이는 찍어보자 해서 찍고 보니 다행히 뼈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내 얼굴을 흘끗 보고는 ‘깁스를 하면 가장 빨리 나을 테지만 오른 손가락을 전혀 못 쓰면 생업에 지장을 받을 것 같으니, 손등 보호대 차고 최대한 조심하라’는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기도 가라앉고 통증도 참을 만큼 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6개월 정도 고생해야 할 것 같다’던 의사의 말이 ‘과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름 방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부기가 말끔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편 가운뎃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힘도 전혀 쓰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됐다. 슬슬 걱정이 밀려와 다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다. 이번엔 ‘이대로 두면 손가락이 굳을 수도 있으니 꾸준히 물리치료 받고 집에서도 찜질을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들었다. 겁이 덜컥 나 이런저런 치료를 병행한 덕분인가, 다친 지 6개월이 되어가자 부기가 가라앉고 가운뎃손가락을 펼칠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

아홉 달가량 지난 지금도 말끔히 나은 건 아니지만, 고작 오른 손가락 인대 하나 다치고도 이리 고생을 했나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6개월 정도 고생할 것이라 했던 정형외과 의사의 예언(?)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를 실감케 해주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약이겠거니 게으름 부리다 찾아간 의사의 협박성(?) 처방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인대는 한 번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으니 병원이든 집에서든 꾸준히 치료를 계속하라던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면 손가락이 굳어버렸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삶 속에는 이런저런 상처가 배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는 상처도 있고 그로 인해 몸에 남은 흉터도 있고, 눈에 보이진 않지만 마음 깊숙이 남겨진 상처도 있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우리를 고통과 괴로움 속으로 몰아넣는 상처도 있을 게다. 뿐이랴, ‘사회적 애도(哀悼)의 짐’(burden of the social mourning)이란 개념이 담고자 하는 사회적 상처도 여기저기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이 확실한 것 같다.

크든 작든, 개인의 상처든 사회적 상처든,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처는 필히 치유함이 마땅할 것이요, 기왕이면 덧나지 않게 가능한 한 원상회복 수준까지 치유를 시도함이 순리일 것이다. 그동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보다는 ‘세월이 약이겠거니’ 속설을 앞세워 상처를 외면하거나 ‘상처는 잘못 건드리면 덧난다’ 하여 그저 덮는 데 익숙해진 우리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려면 원인을 탐색하고 치유 방법을 모색하는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감염환자의 발생과 함께 사회적 공포 또한 함께 확산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과정에서 코로나19의 전파경로를 설명해주고 생활 속에서 실천가능한 예방법을 전달해주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불필요한 공포심을 떨쳐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각종 SNS를 통해 괴담 수준의 가짜뉴스들이 확산되면서 우리의 불안 증폭에 한몫했음을 기억해야 하리라.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 확산의 공포는 잦아들 테지만, 이 과정에서 상처 입은 개인의 삶은 그대로 남을 것이요, 예기치 않았던 경기침체로 인한 사회적 상처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물론 우리 자신의 몫이다. 방심은 모두에게 금물이듯, 끊임없이 발생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도 키우고, 감염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도 힘쓸 일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노력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을 터. 가짜뉴스의 선정성보다 전문가의 정확성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일도 시급하고, 무엇보다 침체된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실질적 활동도 필수일 것 같다.

누군들 상처 있는 삶을 선택하랴만, 일단 받은 상처는 굳이 외면하거나 무작정 덮으려던 관행에서 벗어나, 적절한 방법을 찾아 제때 치료하고 적극 치유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래야 별것 아닌 상처가 더욱 깊어지고 때를 놓쳐 치유가 불가능해지는 불운과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것 아닌가.

 

함인희 이화여대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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