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채권자는 채무자인 회사만을 상대로 채무 이행을 구할 수 있고, 그 회사의 재산만 대상으로 강제집행을 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채무만 남긴 채 다른 자산을 제3의 회사로 이전해버리면 채권자로서는 회수하기 곤란해집니다. 이럴 때 채권자가 자산을 이전받은 제3의 회사에 채무 이행을 구하고 그 재산을 강제집행할 방법이 있을까요? 채무자 회사로부터 자산을 이전받은 제3의 회사가 채무자 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법인격을 남용했다면 가능합니다.
기존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의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하였다면, 신설회사의 설립은 기존회사의 채무 면탈이라는 위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입니다. 기존 회사의 채권자에 대하여 이들 두 회사가 별개의 법인격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는 만큼 기존 회사의 채권자는 두 회사 어느 쪽에 대하여서도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리는 이미 설립되어 있는 다른 회사 가운데 기업의 형태,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를 채무 면탈 의도로 이용하더라도 적용됩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94472 판결).
그렇다면 위 사례와 같이 A사의 자산이 기업의 형태,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C사로 바로 이전되지 않고, 기존 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인 B사에 이전되었다가 다시 C사로 이전됐더라도 공사업자 갑이 회사제도의 남용을 주장하면서 C사에 대금 지급을 구할 수 있을까요?
최근 대법원은 이런 때에도 채권자가 두 회사 모두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기존 회사로부터 공사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하도급업자가 기존 회사의 유일한 자산인 건축주 지위가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기존 회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에 이전되자, 회사제도의 남용을 주장하며 기존 회사가 아닌 그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에 공사대금을 청구해 대법원의 판결을 구했습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기존 회사의 자산이 기업의 형태,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로 바로 이전되지 않고 기존 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되었다가 다시 다른 회사로 이전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 회사의 다른 자산을 이용하고도 기존 회사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기존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되거나 정당한 대가 없이 자산이 이전된 경우와 다르지 않다”며 ”이러한 경우에도 기존 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의도나 목적, 기존 회사의 경영상태, 자산 상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회사제도를 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기존 회사의 채권자는 다른 회사에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아울러 기존 회사로부터 자산을 이전받은 제3자가 기존 회사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가 아니고, 자산을 이전받은 원인도 적법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배척한 원심에는 제3자로부터 기존 회사와 사실상 동일한 다른 회사에 건축주 지위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기존 회사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 없이 이전되었거나 유용되었는지 여부 등을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는 이유로, 이를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하였습니다.
이처럼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회사의 자산이 다른 회사로 이전되어 그 채권의 회수가 어려워 보이더라도, 자산을 이전받은 회사가 채무자 회사와 사실상 동일한 회사라는 등의 사정이 있다면 회사제도의 남용을 주장하여 두 회사 모두에 채무의 이행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유용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hyunjee.chung@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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