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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종착역이 없는 여정이며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70세 때인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면서 한 말이다. 한국 대기업사에서 전례가 없던 ‘무고(無故·아무 사고나 이유가 없음)’ 승계로 당시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룹의 미래를 위해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혁신의 대미는 자신의 퇴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 회장을 맡아 한국기업 럭키금성을 글로벌 기업 LG로 키웠다. 고도성장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혁신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신념으로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재임 기간 세운 연구소는 무려 70여개에 이른다. 구 명예회장은 “기업활동에서 최대의 무기는 기술이고 기술은 곧 사람의 것이다”,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일등의 사람이 일등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혁신은 투명경영·정도경영으로 나아갔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 2월 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현 LG화학)을 민간기업으로는 처음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계열사 10곳도 기업 공개를 했다. 권력에 대해 ‘할 말은 하는’ 그룹 총수였다. 1990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10대 그룹 회장들과의 청와대 만찬 때 재벌개혁 차원에서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종용하자 구 명예회장은 “독재정권이나 하는 식”이라고 발끈했다. 화가 난 노 대통령은 “내가 독재자란 말이오”라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대기업의 부침이 심했던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에 LG는 특혜나 이권 의혹에 휩쓸리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소탈한 자연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충남 천안 연암대학교 인근 농장에 머무르며 버섯연구, 분재와 난 가꾸기 등에 열성을 다했다. 그는 “내가 가업을 잇지 않았다면 교직에서 정년을 맞은 후 지금쯤 반듯한 농장주가 돼 있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구 명예회장이 그제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연에서 혁신의 지혜를 배워 큰 족적을 남긴 게 아닐까.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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