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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최후의 증인’은 친애하는 한국영화” [한국영화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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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29 11:33:55 수정 : 2019-10-29 1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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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와 함께 큰 영향 줘…영화감독 돼야겠다 결심” / “근원적인 한국성 탐구하는 영화” / 이두용 감독 “내 생각대로 만든 유일한 영화”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 특별 상영 프로그램 ‘나의 친애하는 한국영화’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박 감독은 친애하는 한국영화로 이두용 감독의 1980년 작 ‘최후의 증인’을 꼽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최후의 증인’은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결심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입니다. 감독과 촬영감독, 조명감독이 만들어 낸 시네마스코프의 압도적인 화면 구성, 카메라 움직임과 활력, 미술과 조명의 과감한 선택, 종합적인 미장센이 저로선 한국영화에선 처음 보는 수준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뛰어난 영화가 만들어졌구나’ 깨닫고, 노력하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거죠.”(박찬욱 감독)

 

지난 27일 영화의 날,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박찬욱(56) 감독이 친애하는 한국영화로 꼽은 이두용(78)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을 상영하고, 박 감독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행사에는 좌석 300여석이 거의 들어찼고, 이 감독도 참석했다.

 

‘최후의 증인’은 6·25전쟁 전후 살인 사건의 진실을 좇는 오병호 형사(하명중)의 여정을 그린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봐도 울림을 주는 명작이다. 이 영화 재조명에 기여한 박 감독은 “‘하녀’와 함께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한국영화”라면서 영화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이두용 감독의 영화 ‘최후의 증인’(1980)의 한 장면. 주인공 오병호 형사(하명중)가 살인 사건의 진실을 찾아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제 또래 해외 감독들처럼 어린 시절 자국 선배 감독의 강한 영향 아래 영화 세계를 형성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죠. 다른 나라 감독들이 부러워요. 가져 본 적 없어 잃어버린 것도 아니지만 상실감 같은 걸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영화 전범의 세계를 접한 건 대학에 들어간 다음이었어요. 그 시기 좋은 한국영화가 없었던 건 아닐 텐데 얼마 안 되는 훌륭한 영화들이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게 그때 현실이었어요. 미국, 이탈리아 영화만 좋아하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한국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놀랍고 감동을 받았을지 상상하시기 힘들 겁니다.

 

‘최후의 증인’을 본 건 우연이었어요. (1982년) ‘화녀 82’를 극장에서 보고 충격적인 경험을 한 번 한 이후에 다른 작품을 찾아 헤매다가 남산의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 전신) 시사실을 찾아갔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이 감독님의 ‘피막’과 ‘최후의 증인’을 연달아 상영했습니다. 김기영 감독님 세계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의 역사와 전통, 한국인의 심성이 뭔지, 좀 더 근원적인 한국성을 탐구하는 영화들입니다.”

 

이두용 감독. 연합뉴스

 

이두용 감독은 “잘 만들었는진 모르겠는데 박 감독의 과찬에 마음이 착잡하다”면서 “우리 민족만이 갖고 있는 아픔을 주제로, 내 생각대로 만든 유일한 영화”라고 화답했다.

 

박 감독은 “완벽한 상영본은 158분짜리인데 지금 4분이 없어진 거고, 개봉 당시엔 120분, 비디오는 90분이었다”며 “90분짜리로밖에 볼 수 없어 사람들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설적이게도 (개봉 당시) 흥행이 안돼 원본 필름 상태가 좋아 복원판을 우수한 상태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 특별 상영 프로그램 ‘나의 친애하는 한국영화’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박 감독은 친애하는 한국영화로 이두용 감독의 1980년 작 ‘최후의 증인’을 꼽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최후의 증인’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 영향을 미쳤다. 박 감독은 “‘최후의 증인’ 원작 소설을 쓴 김성종 작가의 여러 소설에 오병호 형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오 형사는 한국 추리소설이 별로 없던 시절 장르 소설의 영웅이었다”며 “오 형사의 비극적 죽음이 깊은 인상을 줘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은 ‘최후의 증인’을 생각하며 구상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국 고전 영화에 관심을 당부했다.

 

“‘최후의 증인’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영향, 아픈 이야기들이 어떻게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와 만나 형상화되는지에 대한 가장 뛰어난 예입니다. 이 감독님, 정일성 촬영감독님을 비롯한 당대 충무로 최고 실력자들이 어떤 간섭도 없이 자기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을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왔는지 그 감동을 나눌 수 있어 기뻤습니다. 세상에 알리고 싶은 영화를 만나면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려 합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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