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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뒤 숨어 ‘아는 사람’에 욕설 … 문제의식 없는게 문제 ['악플 테러' 추방하자]

입력 : 2019-10-21 06:00:00 수정 : 2019-10-21 09: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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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도 ‘악플 경계령’ / 가해학생 절반 “평소 알던 사람 공격” / 유명인보다 지인 등 일반인 타깃 많아 / 女 피해자 41.5% “불안·우울감 느껴” / 10명 중 1명꼴 “자살·자해까지 생각” / 전문가 “자정적 반성·토론 기회 삼아 / 악성·혐오 표현 사회적 기준 세워야”

#1. 직장인 A(26)씨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악성 댓글을 다는 ‘악플러’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악플러는 악(惡)과 댓글을 뜻하는 리플(reply)에 사람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가 붙은 합성어로, ‘인터넷 게시글에 악성 댓글(악플)을 다는 사람’을 의미한다. 악플러는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도록 가짜 계정을 이용해 A씨의 게시글들에 갖은 욕설과 “정신 차려라” 등 조롱 섞인 댓글을 달았다. A씨는 “평소 신념에 따라 써놓았던 (SNS상의) 글 내용을 토대로 악플러가 지속적으로 비난을 가했다”며 “정신적 고통이 커서 지금은 SNS 계정을 비활성화해 놓은 상태”라고 토로했다.

 

#2. 30대 주부 B씨도 올해 초 누군지조차 모르는 사람의 악플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악플러는 B씨가 SNS에 올린 남편과 아들의 사진에까지 무차별적인 모욕을 가했다. B씨는 자신의 계정에 악플러가 댓글을 남길 수 없도록 차단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정을 새로 만들어가며 지속해서 B씨를 괴롭혔다. B씨는 “(악플러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악플을 남기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혹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나를 이토록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싶어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고 호소했다.

 

악플에 시달렸던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지난 1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사실이 전해진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악플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악플로 인한 피해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예외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악플을 다는 행위를 바로 적발해 차단할 수 있도록 ‘인터넷 실명제’ 도입 등 강력한 사전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실명제가 이미 위헌 결정이 난 만큼 악성·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기준 마련 및 이를 통한 자율규제 유도, 처벌 강화 등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악플 규제’ 청원 봇물…“일반인도 악플의 표적”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악플 문제와 관련된 청원이 11건(20일 오후 3시 기준) 게시됐다.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서 방송프로그램 등을 통해 악플로 인한 고통을 수차례 호소해온 만큼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원의 골자다. 한 청원자는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은 뒤 마녀사냥으로 인권을 훼손하거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이러한 댓글 시스템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악플 피해는 연예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악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플러들은 ‘익명성’에 기대는 게 특징이다. 평소 싫어하던 지인의 SNS에 모욕성 댓글을 남기거나,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자기 생각과 다른 내용을 게시했다는 이유 등으로 무차별적인 비난을 가한다.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이 학생·성인 61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폭력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 2017년보다 5.7%포인트 증가한 24.7%가 온라인상에서 언어폭력과 명예훼손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이버상에서 악플 등을 통해 명예훼손·모욕을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한 경우도 2017년 1만3348건에서 지난해 1만5926건으로 19.3% 늘었다.

사이버 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명인보다는 지인 등 일반인을 공격했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사이버 폭력을 가한 경험이 있는 학생 970명에게 가해 대상이 누구였는지 물어보니 절반 가까이(47.1%, 복수응답)가 ‘평소 알던 사람’이라고 답했다. 성인 가해자(362명)에게 같은 질문을 한 결과도 ‘친구 또는 선후배 등 주변 지인’이라는 응답이 36.2%(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악성·혐오 댓글은 피해자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온라인상에서 댓글이나 메시지 등을 통해 성폭력 및 여성혐오 표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20∼40대 여성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41.5%)은 ‘불안 및 우울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워졌다(15.7%)’, ‘자살·자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9.2%)’는 응답도 상당수였다.

◆‘표현의 자유’ 문제로 위헌 판정…실효성 논란도

 

무차별적인 악플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재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란 포털 등 웹사이트 이용자가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는 절차를 의무화하고, 이를 거치지 않으면 댓글이나 게시물을 올릴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성인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댓글 실명제 도입’에 대한 찬반 입장을 물은 결과 69.5%가 도입에 찬성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2000년대 초부터 악플과 무분별한 신상털기로 인한 폐해가 지적되면서, 2007년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표현할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의 본인확인 정보 보관 의무로 인해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문제점 등이 제기됐다. 결국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렸다.

 

앞서 서울대 행정대학원 우지숙 교수는 2010년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를 통해 실명제의 악플 방지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게시판 이용자 수는 대폭 줄어드는 등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위축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악성·혐오표현 기준 필요…징벌적 손해배상 도입도 대안”

 

전문가들은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쟁보다는 사회적으로 악성·혐오표현의 기준을 세우고 자율규제 방법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악플을 막기 위한 출발점은 어떤 것이 혐오표현이고 우리 사회가 금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포털 등에서 자율적인 규제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도 “악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자정능력이 있어야 하므로 (시민들에게) 혐오·차별적인 발언들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터넷 시민운동 단체인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시민들의 자정적 반성이나 토론을 통해 성숙해지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데, (인터넷 실명제 등) 공적 제재가 강제로 들어오면 이러한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며 “(공적 제재보다는) 민사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을 도입해 (악플러에게)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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