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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량 수입 ‘구제역 백신’ 국산화 눈앞… 5년 뒤엔 수출 기대

입력 : 2019-08-21 06:00:00 수정 : 2019-08-20 20: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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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4년 맞은 백신 연구센터 / 3조 피해 2010∼2011년 사태 계기 / 방역 정책 살처분서 백신접종 전환 / 매년 700억으로 발병 최소화 성과 / 전문가 “외국산 백신 의존은 위험” / 백신주 6개월 내 제조 기반 절실 / 세계 첫 유전자 치환 시스템 개발 / 대량 생산용 국산 백신 14종 연구 / 2024년 이후 5톤 규모 생산 가능

#1. 경기 안성과 충북 충주에서 잇따라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난 1월 말. 경북 김천의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에도 비상이 걸렸다. 구제역진단과의 혈청형(O형) 분석 결과를 토대로 보유 백신의 유효성(매칭) 여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구센터 백신주분석연구실 박성한 수의연구사는 “예전엔 영국 구제역 표준연구소에 시료를 보내 2∼3개월 뒤에나 백신 효능 평가 결과를 받았다”며 “센터 백신평가연구실은 발병 2∼3일 이내에 간이 매칭 확인을, 2∼3주 뒤엔 정밀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전했다.

 

#2. 올해 설 연휴(2월 2∼6일) 직전 젖소·한우 농가 3곳에서 발병한 구제역은 우려했던 만큼 피해가 크진 않았다. 소·돼지 2200여마리 살처분 및 보상 등에 86억원이 소요됐다. 2010∼2011년 전국을 강타한 안동 구제역 사태 당시 직접적인 피해액은 3조원에 달했다.

 

초동방역 성공 요인으로는 전국 일시이동중지 발령과 모든 소·돼지에 대한 백신 접종 등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적 총력 대응이 꼽힌다. 살처분 위주에서 백신 접종으로 방역정책을 전환한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구제역 백신은 전량 수입이다. 해마다 700억원가량이 소요된다.

◆구제역 백신 원천기술 없어 해마다 700억원어치 백신 수입  

 

20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백신 국산화를 위해 2015년 12월 설립됐다. 내년까지 구제역 백신 종독주(종자 바이러스) 개발과 백신항원 제조공정 확립, 효능평가 기술 확보 등을 목표로 한다. 박종현 센터장을 비롯해 12명의 연구원과 2명이 사무인력이 백신주분석연구실과 백신주개발연구실, 백신공정연구실, 백신평가연구실서 근무한다.

구제역 방역 주요 대책은 약 6690농가 353만여마리 소·돼지를 살처분해야 했던 2010년 이후 살처분에서 백신 접종으로 바뀌었다. 백신 생산국은 영국과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등 10여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효능과 범용성 등을 인정받아 백신을 해외에 수출하는 나라는 3∼4개국뿐이다. 

 

백신 국산화를 위한 원천기술이 없다 보니 구제역 방역을 위해 해마다 수백억원을 쓴다. 2010∼2011년 우제류(발굽이 두 쪽인 동물) 4600만마리에 대한 백신 접종을 위해 460억원을 썼다. 4700만마리분 백신을 수입한 2016년에는 917억원이 소요됐다.

 

천문학적인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제역을 연간 700억원(백신 수입액) 정도로 막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 구제역은 2010년 이후 거의 매년 발병하지만 건수는 최근 몇 년 새 크게 줄었다. 2014∼2015년 188건에서 2016년 21건, 2017년 9건, 2018년 2건, 올해 3건 발생에 그쳤다. 구제역이 전년도에 비해 9분의 1 수준까지 준 2016년은 연구센터가 우리나라 방역상황에 가장 적합한 백신을 선정하기 시작한 해다.

 

하지만 백신 생산을 전량 외국 기업에 맡기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백신 생산국이 수출을 규제할 수도 있고, 수입 백신이 끊임없이 변종하는 구제역 바이러스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서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1990년대 초 유럽에서 구제역이 사라지면서 백신 선도 기업들은 효능개선 연구를 거의 중단한 상태”라고 전했다. 

◆잇따르는 세계 최초… “5년 뒤엔 외국산 대체, 수출까지 가능”

 

구제역 백신 국산화는 현재 어느 단계일까.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한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구제역 O형과 A형을 중심으로 백신 대량생산용 후보 종독주를 14종 개발했다. 여기에는 중국 등 주변국에서 창궐하는 Asia1형과 아프리카에서 유행한 C형과 SAT1·2·3형도 포함됐다. 

 

연구센터는 또 2017년 세계 최초로 혈청형과 상관없이 원하는 백신주를 쉽고 빠르게 제작할 수 있는 ‘유전자 치환시스템’을 개발했다. 센터장 출신의 김병한 수의연구관은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만 입수하면 DNA 합성을 통해 원하는 구제역 백신주를 3∼6개월 내 제조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2021년까지 개발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구제역 백신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종독주의 대량증식과 불활화, 농축·정제 등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구제역 백신은 부유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한 다음 바이러스를 세포에 접종, 대량 증식한 다음 불활성화하고, 이어 농축·정제한 뒤 희석해 보좌제와 혼합, 생산하는 공정을 거친다. 센터는 실험실 단계(30㎖)부터 시작해 대량생산(5000ℓ) 직전인 100ℓ 수준까지의 생산공정 기법을 확립한 상황이다.

연구센터는 새로운 개념의 구제역 백신 및 관련 기술 개발에도 도전하고 있다. 기존 구제역 백신은 접종 일주일째부터 면역 반응을 보이는 데 이를 보다 앞당기는 보조제를 개발 중이다. 현재 백신의 면역 효과는 접종 후 6개월까지. 연구센터는 면역자극기술 개발을 통해 이를 12개월까지로 늘리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 밖에 일부 돼지 접종 부위에서 발생하는 이상육(숙성시 육색이 변함) 현상을 막기 위한 피내 무침 주사용 백신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역본부는 지난해 7월 녹십자수의약품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 FVC와 구제역 백신 대량생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0년 충북 오송에 3만1300㎡(약 9500평) 규모 백신 제조 공장이 들어서면 백신 종독주와 관련 원천기술은 물론 생산기반·효능평가 기술 등을 민관 공동연구 방식으로 연차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김 연구관은 “2022∼23년 시제품을 생산하고 2024년 이후 본격적으로 5t 규모의 국내산 백신을 대량생산할 예정”이라며 “5년 뒤쯤에는 수입 백신의 3분의 1가량을 대체하고 일부 백신은 아시아에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신기술 선도… 전세계 구제역 근절 앞장 설 것”

 

“구제역백신연구센터는 100%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구제역 백신을 국산화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관련 기술 개발을 선도해 전 세계 구제역 근절을 지원하는 데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최근 경북 김천시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백신연구센터에서 만난 박종현(사진) 센터장은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능력 보유국 가운데 구제역 백신 효능 개선 연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센터장의 이런 자신감은 구제역백신연구센터가 지난 3년 8개월 동안 이룩한 연구 성과에 근거한다. 2017년 9월 바이러스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중 하나인 ‘바이러스학 저널’(Journal of Virology)에 발표된 ‘역유전화 기술을 이용한 유전자 치환 시스템’을 비롯해 21건을 특허 등록했고 11건은 출원한 상태다. 구제역 백신 이상육 저감을 위한 피내접종용 백신주 개발 등 SCI급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만 22편이다. 박 센터장은 지난 17년간 구제역 진단 및 예방 업무를 수행해온 과학자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구제역 전문가이기도 하다. 주변국의 구제역 정밀진단을 지원하고 진단액과 관련 기술을 전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는 “구제역 청정지역인 유럽과 북미 선진국이 백신 개량 연구를 중지한 상황”이라며 “센터가 개발 중인 백신 관련 기술들은 세계 수준을 뛰어넘는 신개념, 최첨단 기술로 호평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무엇보다 연구센터가 ‘구제역 백신 국산화 기반 기술 확립’이라는 설립 목표에 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최근 전 세계적인 신보호주의무역 강화에 대응한 백신주권 확보를 위해 우수한 국산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성과로는 △백신 종독주 14종 개발 완료 △한국형 구제역 백신주 개발 시스템 구축 △바이러스 치료제 및 면역증가제 9종 개발 △중규모(100L) 백신항원 생산을 위한 최적 조건 확립 △제조 중간단계에서 백신 유효성분 확인 기술 등을 꼽았다.

 

연구센터의 존재 이유는 2024년(구제역 백신 국산화 완료 목표 연도) 이전인 지금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월 말 구제역 발생 직후 연구센터는 정밀분석을 통해 당시 사용 중인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고 결과적으로 구제역은 조기 종식됐다.

 

하지만 자신만만하던 박 센터장도 요즘 말 못 할 고민이 생겼다. 연구센터는 2015년 12월30일 한시직제로 출범했는데 이달 말 행정안전부가 조직평가를 통해 정식직제로의 전환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구제역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발병 및 관리 소홀은 곧바로 국가재난으로 이어진다”며 “구제역 발생 시 신속한 초동대응과 2020년 한국형 구제역 백신 생산을 위해 연구센터의 상시 조직화는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천=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세계일보·농림축산검역본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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