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이 된 ‘100% 시청자 투표’
프듀X는 종영과 동시에 시청자 투표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101명의 연습생 중에서 11명을 아이돌 그룹으로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은 시즌1부터 100% 현장·문자·인터넷 투표 방식을 고수했다. 그동안 심사위원의 평점 위주였던 오디션 방식을 시청자 참여형으로 만든 셈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육성한 아이돌’이라는 점은 프로그램의 매력이 됐고 시즌 2에서는 최고 시청률이 5%를 넘었다.
진상규명위원회가 프듀X 제작진을 사기로 고소한 것도 이 대목이다. 100% 시청자 투표를 믿고 참여했는데 “사전에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면 유료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다.
팬들이 조작을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위와 2위의 표차인 2만9978표가 3위와 4위, 6위와 7위 등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사실과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 숫자가 모두 ‘7494.442’라는 특정 숫자의 배수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팬들의 법적 대응 예고에 부랴부랴 ‘오류를 일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작설은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 정치권과 법조계까지 나서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채용 비리’ 쓰나미로 몰아닥쳤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시청자 투표로 뽑겠다고 해서 이를 믿었는데, 구체적 수치로 조작 가능성이 나오자 공정이라는 가치에 민감한 세대가 강력한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미… 맹목적 오빠사랑과 다르다
방송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불거진 배경으로 전문화, 조직화되어가는 팬덤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각 연습생 팬 사이트에서는 ‘○○앰(애미)으로서 한마디 한다’, ‘니 새끼 걱정이나 해’ 등의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시대가 변하면서 내가 직접 뽑아 육성한 아이돌을 ‘옵(오빠)’ 대신 ‘내 새끼’로 부르는, 소위 ‘애미’팬들이 늘어난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아이돌 문화가 생겨난 이후 팬들의 애정과 열정은 늘 있었다”면서 “팬들이 적극적으로 방송사와 기획사에 요구 사항을 이메일로 보내는데, 내용을 보면 어느 분야 전문가로 여겨질 만큼 글이 명확하다”고 전했다.
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송사와 기획사에 ‘요구사항’을 밝히는 것은 20년간 변화한 팬덤을 보여준다. 억울한 탈락을 주장하며 프듀X 최종 탈락자 9명으로 구성된 ‘바이나인’을 만들라는 팬들의 강요도 ‘권력화한 팬덤’의 단면이다. 이미 지난 시즌 아이오아이(IOI), 워너원이라는 공식 데뷔조 외에 아이비아이(IBI), 제이비제이(JBJ) 등 탈락 연습생이 데뷔한 전례가 있다.
‘내 새끼’를 데뷔시키겠다는 마음은 지갑도 활짝 열게 했다. 프듀 시즌 2에서부터는 투표 외에 지하철 광고, 길거리 전광판 광고, 래핑버스, 인터넷 배너 광고 등이 당연한 응원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번 시즌에서는 지하철 광고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응원하는 문화까지 덧붙여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번 사건을 “소비자 주도의 자율적 움직임”으로 규정했다. 그는 “프듀는 팬이 직접 스타를 육성해 가는 과정에서 기량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연습생이 팬과 함께 성장하는 구조”라며 “팬들은 이제 스타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스타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에 무조건 추종을 하지 않는다. 상호 교환적 추종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팬들의 과도한 입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팬들 사이에서 사생팬은 팬으로 취급하지 않는 등 내부 견제를 통한 자정 작용도 있기 때문에 ‘팬덤의 진화’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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