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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눌러앉은 콤콤한 누룩내음… 夏∼ 정겨움에 취하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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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10 09:00:00 수정 : 2019-08-08 15: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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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화백·홍신애 요리연구가와 떠난 우리술탐방 / 햇살 좋고 물 맑은 양촌면 / 3대째 명맥 100년 양조장 / 금이 간 항아리 꿰어 담근 / 우렁이쌀 손 막걸리 일품 / 미술관인듯… 양조장인듯… / 예술가 가족이 직접 빚은 / 평택 특산주 ‘호랑이배꼽’ / 밴댕이 김치와 환상 궁합
각시탈 초파본, 출판사 만화주의.
일제 강제점령기. 말도 어눌하고 표정도 어수룩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이강토. 하지만 사실 그는 본모습을 숨기고 있다. 정체는 애국지사 ‘각시탈’. 엄청난 내공을 지닌 태껸의 고수로 탈을 쓰고 담장을 날아다니며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철저하게 응징한다. 어린 시절 기자가 푹 빠졌던 만화 속 영웅이다. 몇해 전 드라마로 방영된 각시탈을 보니 그때 추억의 떠오른다. 일제의 만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즈음, 어디선가 나타나 민족의 울분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각시탈 주먹의 통괘함. 보복무역 조치로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린 요즘 일본에 한방 날리고 싶은 주먹이다.

 

100년된 양촌양조장에서 사용하던 막걸리와 소주 발효 옹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식객’ 허영만 화백(오른쪽)과 홍신애 요리연구가.

사실 어릴 때는 각시탈을 만든 작가에 관심은 크지 않았고 이름도 잊어버렸다. 그가 각시탈의 작가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바로 ‘식객’이 히트를 치면서다. 허명만 화백. 그를 실제 만나니 마치 어린 시절 나의 슈퍼 히어로 이강토를 만난 듯하다. 이제 ‘먹방계의 이강토’로 활발하게 ‘맛 주먹’을 펑펑 날리는 허 화백, 그리고 수요미식회에서 맛깔 나는 입담을 자랑한 요리연구가 홍신애씨와 함께 일제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우리 술과 우리 먹거리 탐방에 나선다.

 

양촌양조장 이동중 대표와 아내 한덕희씨.

#해 잘드는 물 맑은 양촌, 100년 양조장을 가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인천리. 맑고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이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에 쏟아진다. 365일 햇빛이 잘 드는 물 맑고 공기 좋은 동네여서 햇빛촌(양촌)으로 불린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니 세월의 묵은 때가 켜켜이 내려앉은 양촌양조장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다. 1920년 창업자 이종진씨가 가내주조를 시작하여 1930년 현재의 주조장을 설립한 이래 현재 이동중(67) 대표가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는 곳으로 내년이면 100년을 맞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된 양조장이다.

 

 

 

양촌양조의 주조장은 처음 지을 때부터 막걸리 주조를 위해 설계된 목조건물이다. 재래식 자연통풍 구조를 갖춰 막걸리 주조 시 발생되는 상승 온도와 습도 등을 자연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보통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양조장은 일본식 목조건물을 본떠 지었다. 하지만 양촌양조 주조장은 서까래와 대들보가 있는 한옥구조를 기본으로 지어졌으니 서슬퍼런 일제 치하에 대단한 배포다. 상량문에 ‘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소화 6년 신미 6월 초9일·소화 6년은 1931년)이라고 적혀있어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마주하게 된다.  

 

양촌양조장 상량문

양촌양조장의 얼굴은 막걸리 마니아라면 한번쯤 마셨봤을 우렁이쌀 손 막걸리로 장기 저온숙성으로 맛의 일관성을 잘 유지한다. 30일 동안 저온숙성 방식과 자연발효로 만드는 양촌 생동동주, 쌀을 튀겼을 때 나는 고소한 향이 특징인 양촌 생막걸리도 생산한다. 양조 한쪽에 마련된 양촌막걸리 카페에 들어서니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커다란 번철에 주인장의 아내 한덕희(64)씨가 부침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역시 전과 막걸리의 마리아주(궁합)는 만고의 진리. 막걸리도 잘 어울리지만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논산 찹쌀로 빚은 프리미엄 청주 우렁이쌀 청주와 함께하니 꿀맛이다.

 

주조장 바깥 마당으로 나서면 진풍경과 마주한다. 항아리 발효조들과 소주를 숙성시키거나 유통시킬 때 사용했던 옹기로 만든 주둥이가 좁은 술춘이 마당에 가득하다. 금이 간 곳을 꿰어 쓴 항아리는 양조장의 100년 역사를 느끼게 한다.

 

허영만 화백과 홍신애 요리연구가는 글자가 떨어져 나간 양촌양조의 간판 아래 나무 의자에 앉아 즉석에서 방금 마신 양조양조 막걸리와 전을 놓고 품평회를 벌인다. 허 화백은 “논산에 숨은 양조장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도 곳곳에 이 집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서 과거를 느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많은 막걸리들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어갈 때 고집스레 버텨온 노고가 보였다. 달거나 누룩 냄새를 강조한 막거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집 막걸리 내 입맛에 딱이다”라고 엄치를 치켜세웠다. 허 화백은 며칠 뒤 기자에게 카카오톡 문자로 “다음 날 친구들을 모아서 술판을 벌였더니만 이런 술이 논산에 남아 있었냐고 감탄했다”고 전했다.

 

양촌양조장 우렁이쌀 막걸리와 청주.

홍 요리연구가는 “오랜 양조기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좋았다. 우렁이쌀 막걸리가 달지 않고 묵직한 맛이어서 좋았고, 3대째 내려오는 번철에 부쳐낸 반대떡에 막걸리는 정말 환상의 궁합”이라며 “잘 보존된 옛 양조장을 앞으로도 잘 발전시켰으면 좋겠다”고 높은 점수를 줬다. 

 

평택 쌀로 호랑이배꼽 막걸리를 빚는 밝은세상녹색영농조합의 오래된 한옥.

#응답하라 1988, 서양화가 그리고 평택 쌀

 

허 화백, 홍 요리연구가와 두번째 탐방에 나선 곳은 요즘 젊은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생막걸리 ‘호랑이 배꼽’을 생산하는 밝은세상녹색영농조합. 양조장이 아니라 미술관에 온듯하다. 밝은 색감이 생동감 넘치는 그림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어서다. 알고보니 양조장 주인장은 원로 서양화가 이계송(78)씨. 이 대표는 허 화백을 보자 “업계 사람을 만났다”며 손을 잡고 반가워 한다.

 

평택 방앗간집 둘째아들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인 아내 이인자씨, 15년 경력의 패션 디자이너 큰딸 혜범, 포토그래퍼 출신의 작은딸 혜인과 함께 가족이 직접 술을 빚는다. 왜 호랑이 배꼽일까. 이 대표는 “한반도를 웅비하는 호랑이 형상으로 그리면 그 중심인 배꼽자리 평택이 있다”고 설명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포부란다. 

 

순수 자연농법으로 거둔 기름진 평택 쌀, 양조장 앞뜰 지하 40m에서 끌어올린 깨끗한 천연 암반수를 바탕으로 생막걸리 호랑이배꼽과 프리미엄 증류주 소호(Soho), 자연 발효초 ‘바람소리’를 빚어낸다. 큰딸 혜인씨는 생막걸리에 얼을 동동 띄우고 얇게 썬 오이를 담근 막걸리 얼음 칵테일로 일행을 맞는다. 무더위에 목이 마르던 차에 한잔 마시니 갈증이 달아난다.

 

이 화백의 가문은 평택에 600년 넘게 평택에 터를 잡고 살아온 토박이 집안이다. 가족들이 살던 옛집은 양조장 왼쪽에 잘 보존돼 있는데 어디선가 본듯하다. 바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부자집으로 나오는 정봉이네가 로또에 당첨되기 전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살던 집으로 나온 곳이다.

 

아내 이씨는 국제슬로우푸드협회 맛의 방주에 등재된 ‘준치김치’ 명인이. 준치가 다 떨어져 밴댕이 김치를 막걸리에 곁들였는데 깊은맛에 일행이 모두 감탄한다. 

 

밝은세상녹색영농조합 호랑이배꼽 막걸리와 증류주 소호.

홍 요리연구가는 “호랑이배꼽은 생쌀발효라서 정말 가볍고 톡 쏘는맛이 일품이다. 항상 막걸리는 뭔가 묵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살살녹는 솜사탕같은 느낌”이라며 “양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밴댕이김치, 채소찜, 청국장 등 별미요리가 진짜 맛있다”고 극찬을 했다.

 

허영만 화백은 “평택의 호랑이 배꼽은 두번째 방문이다. ㅁ 자 한옥이 좋고 작은 양조장이지만 좋은술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안주인의 음식솜씨는 너무 잘 다듬어져 빈곳 하나 없어 호랑이 배꼽술을 가려버릴 정도였다”고 감탄했다. 허 화백은 이 양조장에 올해가 가기전에 꼭 다시가겠다고 한다. 한옥의 구둘을 고치고 겨울에 군불을 때면서 술잔을 기울이자고 동갑인 주인장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허 화백은 마지막 촌평은 참 그답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낯선곳에 가더라도 고개빳빳이 세우고 다니지마라. 겸손해라.곳곳에 고수들이 숨어 있지 않느냐”. 

 

논산·평택=글 ·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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