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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 보복” 日 “안보 관련 수출 시스템 점검”

입력 : 2019-07-11 06:00:00 수정 : 2019-07-10 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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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이사회서 정면 충돌 / 韓 “정치적 목적 보복” 부당성 강조 日 “안보 관련 수출 점검조치” 맞서 / NHK “WTO 제소여부 최대 관심” / 北 “아베 일당 간악한 흉심” 맹비난 / 후지TV “韓, 불화수소 밀수출” 보도 / 적발 실적 자료 내세워 ‘억지 주장’ / 정부 “수출 관리 잘 된단 방증” 반박

한국과 일본이 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백지아 주(駐)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이번 조치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경제 보복이라는 점을 회원국에 설명하고 일본 측에도 강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조속한 철회를 촉구했다. 특히 이번 조치가 한국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도 부정적 효과를 줄 수 있고, 자유무역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는 점을 회원국에 설명했다.

 

8∼9일 이틀 동안 개최된 이번 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는 당초 안건에 없었으나 우리 정부가 8일 추가 의제로 긴급 상정할 필요성을 의장에게 설명하고 의장이 수용하면서 마지막 날 최종 의제로 채택됐다. 상품무역이사회는 보통 실무를 담당하는 참사관급이 참석하는데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우리 측에서 백 대사가 직접 참석하자, 일본 측도 이하라 준이치(伊原 純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 대사가 참석했다.

 

NHK에 따르면 이하라 대사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수출규제가 아니며, 안보와 관련된 일본 수출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WTO 규범상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일본 정부의 기본 주장을 반복했다. NHK는 국제기관의 장에서 양국이 격렬하게 대립했다고 전한 뒤 “향후 (한국이) 제소 절차에 나설 것인지가 초점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극우 성향 산케이신문 계열인 후지TV는 10일 한국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실적’을 근거로 들며 “2017년 김정남이 암살됐을 때 사용된 신경제 VX의 원료가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되고,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 대상인 불화수소가 아랍에미리트(UAE) 등에 밀수출된 것을 비롯해 모두 156건의 불법 사례가 한국 정부에 적발됐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수출보복 정당화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는 지난 5월 조원진 대한애국당(현 우리공화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전략물자 위법 수출 사례를 적발해 행정처분한 내용으로, 오히려 우리 정부가 수출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및 조치 현황은 매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으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상세 내역을 수시로 국회에 제출한다”고 일축했다.

 

이에 맞서 정부는 WTO를 비롯해 다른 국제기구에서도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알려나갈 방침이다. 동시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WTO 제소에 앞서 정부는 상대국인 일본에 ‘양자협의 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양자협의 요청서가 제소장 역할을 한다.

양자협의 요청서가 제출되면 당사국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양자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피소국이 양자협의에서 계속 불성실하게 나올 경우 재판부에 해당하는 패널설치 요청서를 WTO에 내게 된다. 이후 WTO 사무국이 개입해 재판관 3인을 선출하고 1심 절차를 진행한다.

 

1심 판결 이후 패소국이 상소를 안 하면 169개 WTO 회원국 동의로 판결이 자동 채택된다. 하지만 불복할 경우 상소기구로 사건이 넘어간다. WTO 규정상 상소 후 90일 내 판정이 원칙이지만, 최근 상소 사건 증가 등 이유로 절차가 지연돼 왔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상소심 최종 결과까지는 통상 3∼4년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WTO 제소는 필요하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의 불공정한 무역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WTO 제소 등의 노력은 해야 할 일”이라며 “하지만 승소하더라도 일본이 버티면 실효성을 거두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적 대응보다는 다시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친일매국행위가 초래한 사태’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남조선당국을 저(일본인)들의 손아귀에 틀어쥐고 군국주의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아베 일당의 간악한 흉심이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정부, 국장급 협의 모색… 성사 불투명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외교부 국장급 실무자를 일본에 파견해 국장급 협의 개최를 추진한다.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해 오는 12일 통상 분야의 양자협의가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외교·통상 투트랙의 접근이 시도되는 것이다.

 

10일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 담당인 김정한 아시아·태평양 국장이 12일 일본을 방문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김 국장의 일본 방문은 일본 니가타(新潟)에서 열리는 일본지역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관장 회의지만 김 국장이 방일을 통해 현재 여론을 파악하고, 일본 정부와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통상 해외에서 지역 공관장 회의가 열리면 본부에서 담당 국장이나 심의관이 회의에 배석하며, 이를 계기로 해당국의 카운터파트와도 만난다. 지난 1월31일에도 일본지역 공관장 회의 참석차 외교부 김용길 당시 동북아국장이 일본을 방문한 계기에 한·일 국장급 협의가 이뤄졌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왼쪽)이 지난달 5일 도쿄 외무성 청사 현관에서 맞이하러 나온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양국 국장급 만남이 이뤄진다면 지난 1일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첫 만남이 된다. 국장급 협의를 통해 일본 보복 조치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해법 모색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국장급 협의 성사 여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외교 소식통은 “양국의 국장급 협의는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며 “양국의 입장차가 여전한만큼 협의 개최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12일 예정된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간 과장급 실무협의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가미 고타로 일본 관방부 부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 측의)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이라는 지적은 전혀 맞지 않으며 철회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韓 반도체 끊길라… 日 기업들도 ‘전전긍긍’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로 반도체 조달에 영향이 우려됨에 따라 일본 기업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0일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기업이 대응을 서두르는 가운데 “일본의 반도체 제조사 사이에서도 한국으로부터의 반도체 조달에 영향이 생기지 않겠느냐며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소니의 컴퓨터 사업 부문인 VAIO(바이오)의 하야시 가오루(林薰) 이사는 “부품 조달에 영향이 나오는 것은 틀림없다”고 밝혔다. 하야시 이사는 구체적 조달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국 이외에서 반도체 조달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50~7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 샤프(SHARP)의 자회사인 다이나북 측은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을지 아직 전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도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신문은 “삼성전자는 수뇌(핵심인물)·간부가 일본과 대만을 방문해 당분간 생산에 필요한 재고 확보에 분주하다”며 “삼성은 조달 담당 간부를 대만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다루는 소재 제조사 공장이 대만에 있어 한국으로의 공급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계약별 심사에 90일 안팎이 걸리면서 일본의 소재 회사 실무에도 영향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신문이 전했다. 감광제인 포토리지스트(PR)를 취급하는 JSR는 “개별 신청이 되면서 서류 수가 늘었다”며 “규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신문에 말했다.

 

한편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SCMP)는 이날 중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한국 반도체에 대한 일본의 공격이 세계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한국 반도체의 공백을 대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상규·조병욱·정선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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