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선 실무협상, 후 정상회담’에 의견을 모으는 모양새다. 북·미가 실무협상을 통해 비핵화 및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뒤 양측이 정상회담을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실무협상 미흡으로 결렬된 ‘하노이 담판’의 전례를 밟지 않고 구체적인 실무협상 결과를 토대로 ‘굿딜’을 만들겠다는 한·미 양국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살트셰바덴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스테판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미 간의 구체적인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북·미 정상회담) 사전에 실무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정상은 여전히 상대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면서 대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면서 “실무협상을 토대로 (북·미) 양 정상 간 회담이 이뤄져야 하노이 2차 정상회담처럼 합의하지 못한 채 헤어지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양국이 실무 협상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해야만 ‘노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편지를 공개한 이후 ‘대북 화해 제스처’를 이어갔다. 북·미 대화 재개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 ‘폭스 앤드 프렌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이 불법 환적에 관여한 북한 선박을 압류한 것과 관련해 “모두가 제재를 위반하려고 한다”며 “그러나 제재는 그들(북한)에게 심각하게 타격을 입히고 있으며 우리는 결코 제재를 해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의 불법 환적을 감싼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그들(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 어떠한 것도 실험하지 않는다”면서 “단거리 미사일들을 발사했다. (단거리 미사일은) 어느 나라나 발사한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미를 축소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정말이지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며 “나는 서두를 게 없다. 우리는 여유를 갖고 잘 해갈 것”이라며 북·미 대화 속도조절론을 재확인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북측의 고(故) 이희호 여사 조의문 전달에 대해 “북한이 대화를 위해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것 같다”며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시사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2020년 미 대선 이전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전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 주최로 열린 행사에서 “답은 북한에 있다”면서 북한이 먼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문 특보는 “지금은 상당히 결정적인 시기”라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현명한 결단을 내려 한동안 침체한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 구조를 되살리는 게 미국의 정책도 바꾸고 남쪽과도 협력해 나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그 다음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만약 운이 좋고 우리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잘해 남북·미 정상회담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스톡홀름=정재영 특파원·김달중 기자, 홍주형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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