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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엔 드론이 볍씨 심어… 농사 인건비 확 줄 것” [차 한잔 나누며]

입력 : 2019-06-17 01:00:00 수정 : 2019-06-16 20: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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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농법 개발 앞장… 한국농수산대 박광호 교수 / 亞 최대 농업연구기관서 유학 / 日 소식재배·中 흑미 등 들여와 / 드론이 직접 논에 뿌릴 수 있게 / 물에 안 쓸리는 철분 볍씨 개발 / “농업 소득률, 제조업 크게 추월 / 스마트기술 업고 유망분야될 것”

한국농수산대학교 박광호(61) 식량작물학과 교수는 ‘현대판 문익점’이다. 박 교수는 볍씨를 관행보다 배게 뿌리고 모를 성글게 심어 노동력·생산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도 수확량은 더 나은 ‘소식재배’ 농법을 2016년 8월 일본에서 들여왔다. 중국 상하이의 흑미 품종인 ‘상해향혈나’를 1989년 국내에 소개한 것도, 한국산 호접란의 원조 ‘팔레놉시스’ 유전자원을 1990년 필리핀에서 들여온 이도 그다.

지난 14일 전북 전주에 있는 한농대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그는 모를 적게 심는데도 생산량이 더 많은 이유에 대해 “공간만 있으면 최대한 가지치기를 많이 하는 벼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소식재배가 아닌 드론직파를 향해 있었다. 그는 “사실 소식재배는 과도기적 농법이다. 10년 뒤엔 드론직파의 시대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드론직파는 드론을 이용해 볍씨를 논바닥에 바로 뿌리는 것이다. 박 교수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협정 즈음 정부가 ‘농산물 원가를 절감하려면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며 직파농법을 시도한 적 있지만 잘 안 됐다”고 했다. 볍씨가 논물에 쓸릴 정도로 가벼운 데다 물이 얕은 곳에 뿌려진 것들은 새들이 쪼아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교수가 개발에 몰두한 게 철분볍씨와 레이저균평 기술이다. 철분볍씨는 볍씨와 철가루·소석고를 1대 0.5 비율로 섞는 것을 말한다. 물보다 7배 정도 무거운 철가루를 섞으니 볍씨가 논바닥에 콕콕 박혔다. 트랙터에 매단 레이저를 이용해 논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금속이온인 철가루가 병해충 방제 역할을 하는 데다 3㎝ 정도의 균일한 논물이 천연제초제 역할을 하다 보니 생산비도 크게 절감된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혹여 벼에 스며들고 논에 남아 있는 철 성분이 인체에 해롭지는 않을까. 박 교수는 “논에 남는 철 성분은 1∼7%”라며 “이 정도 극미량은 식물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며 해마다 모두 소진된다”고 자신했다.

전북 전주 한국농수산대학교 연구실에서 박광호 교수가 첨단 농법을 전수하기 위해 2006년 북한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활짝 웃고 있다.

박 교수가 해외 선진농법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현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사 신분으로 1988∼1991년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1993∼1994년 직파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다. IRRI는 세계 빈곤과 기아 퇴치를 위한 지속가능한 벼농사 기술 확립 등을 목표로 1960년 설립된 아시아 최대 국제농업연구기관이다.

흑미와 호접란, 철분볍씨, 레이저균평, 소식재배도 박 교수가 IRRI에서 진행한 연구와 인맥이 발판이 됐다. 그는 “예전엔 일본 소니사의 컬러TV를 사오는 게 로망이었지만 지금은 우리의 삼성, LG가 세계 TV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며 “오리진(origin)은 외국에서 출발했어도 우리 실정과 상황에 맞게 한국형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연구자로서 매우 뜻깊은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형으로 개량 발전한 농법을 국내 농가뿐 아니라 해외에 널리 보급하는 데도 열심이다. 2006∼2008년 북한 지역에 복토멀티시더(논밭 복토·시비·파종기)를 보급했고 2010년에는 볼리비아와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복토멀티시더 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저비용·고품질·친환경 식량 생산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농업 분야 최고 권위의 대산농촌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첨단 농법 개발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경북 군위 농사꾼 집안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게 컸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꼬박 매달려야 하는 농사일이 너무 힘들었다. 집안 형편상 대구농고에 진학하고, 운명처럼 충북대와 경북대, IRRI에서 학·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농대가 개교한 1997년부터는 교수진으로 합류했다.

 

“가만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 가장 유망한 직업은 농업입니다. 2017년 국내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2.92%인 반면 쌀농사 소득률은 55.6%예요. 지구촌 식량면적(최대 80억명)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드론과 인공지능(AI)이 도래한 지금, 스마트한 작업 환경으로 가장 여유롭고 시간이 많은 분야는 바로 농업이 될 겁니다.”

 

전주=글·사진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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