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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 흑당버블티 한 잔… “밥 ‘한 공기 반’ 더 드셨네요”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05-25 12:00:00 수정 : 2019-06-06 06: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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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싸템’의 치명적 유혹 / 우유+흑설탕 시럽… 쫀득한 펄의 조화 / 대만서 분 열풍 SNS 타고 인기 음료로 / 칼로리·당분 함유량 제대로 모르고 먹어 / 일부는 시럽 10번 짠 양의 당 들어있어 / 성인병 줄이는 ‘설탕과의 전쟁’에 역행 / 커피전문점은 영양성분표시 의무 없어 / 소비자에 정보 줄 수 있게 정책 도입을
손님으로 꽉 찬 매장 안이 흑당버블티의 인기를 말해준다.

대만에서 온 ‘흑당버블티’가 선풍적인 인기다. 밀크티 등에 흑설탕 시럽과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든 이 음료는 달콤한 맛과 독특한 모양 덕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인싸템’(주류 아이템)으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흑당버블티의 인기에 가려진 게 있다. 칼로리와 당분 함량이 높다는 것이다. 종류에 따라 한 잔에 쌀밥 1공기를 넘는 칼로리에 당분 함량이 일일 섭취 권장량을 훌쩍 넘는 등 건강상 주의가 필요한데도 그런 정보를 잘 모른 채 섭취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영양성분 표시 여부를 커피전문점 업계 자율에 맡긴 것과 무관치 않다. 30여개 나라가 ‘설탕세’를 도입하는 등 세계적으로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15분 줄 서야 살 수 있어… ‘흑설탕’ 매력에 푹

 

‘타이거 슈가’, ‘더 앨리’ 등 대만 및 중국 상하이의 대표적인 흑당 음료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최근 서울 강남, 홍대거리 등에 지점을 내며 국내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재는 공차, 던킨도너츠, 빽다방, 요거프레소, 커피빈 등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뿐 아니라 중소형 커피전문점에서도 계절 맞춤용 흑당 음료 메뉴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찾은 타이거 슈가 홍대본점은 매장 안팎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작은 매장이었음에도 8명의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음료를 만들었다. 줄을 돌고 돌아 흑당버블티를 손에 쥐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5분. 한 직원은 “사람이 많은 주말에는 1시간까지 대기 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매장에 들른 대학생 한모(21)씨는 “흑당버블티를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먹는다. 거의 ‘중독’ 수준”이라며 “흑설탕과 타피오카 전분으로 만들었으니 일반 시럽 넣은 단 음료보다는 칼로리도 낮고 몸에 좋지 않을까”라고 짐작했다.

 

◆한 잔에 밥 1.5공기 칼로리도… 당분 함유량도 세계보건기구 섭취 권장량 훌쩍 넘어

 

하지만 흑설탕이라도 일반 설탕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세계일보가 주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홈페이지와 고객센터를 통해 흑당버블티 음료의 칼로리와 당류를 조사한 결과 일부 음료의 열량은 쌀밥 한 공기를 훌쩍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공차의 브라운슈가치즈폼 스무디(454g)는 쌀밥 1.5공기(1공기 210g 기준 313칼로리)에 맞먹는 438.6칼로리다.

 

당분 함유량도 이미 설탕에 절인 타피오카 펄에 흑설탕 시럽이나 크림까지 추가로 들어가니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대부분 흑당 음료 한 잔에 30~60g의 시럽 등 첨가당이 들어있었다. 예컨대 요거프레소 흑당 말차 버블티는 63g의 당이 함유됐는데, 이는 커피전문점의 시럽을 10번 정도 짠 양(한 번에 6g)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권장섭취량 50g을 거뜬히 넘는다.

 

한편 메뉴별 열량과 당분 함유량 등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빽다방 측이 블랙밀크티(408.5g)와 블랙펄라떼(417g)의 열량과 당분 함유량을 각각 404칼로리·5.8g, 296칼로리·11.59g으로 소개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시럽이 전혀 안 들어간 스타벅스 카페라테 톨 사이즈(355ml)의 당분 함유량이 13g”이라며 “흑당이 들어가면 당분 함유량이 이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데 5g대가 나온 부분은 비현실적”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빽다방 측은 “최근 영양성분 분석기관에 의뢰해 받은 결과이고, 타사 제품에 비해 왜 함량이 적게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빽다방이 분석을 의뢰한 기관의 한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업체에서 건넨 완제품을 받아 분석할 뿐, 조리 과정이나 재료 등의 정보까지 전달받지 않는다”며 “(빽다방 제품의) 당류 함량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 이유에 대해 드릴 말이 없다”고 말했다.

◆영양성분 표기 의무 아니라 소비자 알기 어려워

 

소비자들이 흑당버블티의 열량과 당분 함유량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유는 휴게음식점으로 분류된 커피전문점은 영양성분을 표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는 홈페이지나 매장 메뉴판 등에 자율적으로 영양성분을 표기하고 있지만 커피빈, 빽다방, 요거프레소 등 일부 업체는 소비자가 고객센터에 물어봐야 정보를 알려줬다. 당분 함유량을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다이어트 중인 직장인 박모(32)씨는 “흑설탕이라 일반 설탕보단 나은 줄 알고 밥 대신 몇 번 먹기도 했는데 캐러멜마키아토보다 칼로리가 높다니 배신감이 든다”며 “업체들은 최소한 소비자가 칼로리와 당분 함유량을 알고 선택을 결정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타이거 슈가, 더 앨리, 흑화당은 성분 조사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타이거 슈가와 흑화당 측은 “현재는 영양성분 표시 의무가 없다”며 “만약 추후 의무로 바뀐다면 업체에 분석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 앨리 측은 분석을 의뢰해놓은 상태이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달 정도 걸린다고 답했다.

 

◆성인병 위험률 높이는 당분… 세계는 설탕과 전쟁 중

 

사탕, 초콜릿, 설탕, 시럽 등 가공식품의 첨가당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가공식품으로 인한 당 섭취가 10%를 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비만 위험률은 39%, 고혈압 위험률은 66%, 당뇨병 위험률은 41%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혈당의 과도한 오르내림이 급격한 감정 변화로 이어져 불안과 우울 등의 정서 장애가 올 수도 있다.

 

전 세계는 이미 설탕과 전쟁 중이다. 2016년 10월 WHO는 ‘설탕세’ 도입을 공식 권고했고 2018년 4월 청량음료를 대상으로 설탕세 도입을 시작한 영국을 비롯해 핀란드·프랑스·태국·멕시코 등 전 세계 30여개 나라가 이미 설탕세를 적용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커피전문점은 자율적으로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권고하고 있어 업체마다 고지 유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음료의 카페인 함유량은 소비자에게 고지하도록 법률을 개정할 예정이지만 당분 관련해선 아직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 “정부 차원의 지원 필요”

 

한국인의 당 섭취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크게 늘고 있다. 국민건강 영양조사결과 2007년 전체 식품 중 59.6g 포함됐던 당류는 2013년엔 72.1g으로 연평균 약 3.5%의 증가를 보였다. 특히 가공식품을 통한 당 섭취는 2007년 33.1g에서 2013년 44.7g으로 연평균 5.8%의 급격한 증가세를 기록했다.

 

윤지현 서울대 교수(식품영양학)는 “국민들이 영양성분 정보에 따라 제품 선택이 달라질 수 있으니 영양성분 표시를 통해 많은 정보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다만 선진국에 비해 영양성분 표시를 활용하는 비율이 낮다. 도입과 더불어 소비자 교육과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적 접근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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