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묻지마식 방화·살인 난동으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과거 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는 남성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연이은 범죄로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정부 대책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남 진주경찰서에 따르면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4층에 사는 안모(42)씨는 이날 오전 4시25분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황모(74)·김모(64·여)·이모(56·여)씨와 최모(18·여)·금모(11)양 5명이 숨졌다. 노인, 여성, 아이 등 모두 사회적 약자였다. 다른 6명도 흉기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7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안씨는 경찰과 대치 끝에 오전 4시50분쯤 현장에서 검거됐다. 그는 “임금체불 때문에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안씨가 10여년 전부터 정신분열증(조현병)을 앓아 온 것으로 확인하고 정확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대구에서 20대 조현병 환자가 10대 남성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지난해 말 30대 조현병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살인 범행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비율은 2015년 7.5, 2016년 7.9, 2017년 8.5로 늘고 있다.
유사 범죄가 잇따르는 것은 환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진료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중증정신질환 환자 중 지역사회 정신보건시설이나 재활기관에 등록한 비율은 2017년 기준 29.4%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이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그나마 재활시설 등도 수도권(51.3%)에 집중돼 있다.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를 위해 최근 정신질환자의 퇴원 사실을 직권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됐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전문가 진단과 보호신청에 따라 입원치료를 받게 하는 행정입원을 적극 활용하고, 내년에는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보호자 동의 없이 외래치료를 받게 할 방침이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정신의학과)는 “환자의 증상이 관리되면 행동에 문제가 없다”며 “치매 환자를 관리하는 것처럼 지역마다 정신보건센터에서 주기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학)도 “지자체 등에서 조기에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이웃들에게 주기적으로 제보를 받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경·김청윤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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