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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속재판' '무죄추정원칙' 보석제도, 고무줄 잣대 논란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9-03-12 05:00:00 수정 : 2019-03-12 07: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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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 석방…엄격한 조건 달았다곤 하지만 징역 15년 선고받은 피고인 항소심 도중 풀어준 건 쉽게 납득 안된다는 지적 / 보석 기준·조건 점검 필요하다는 목소리 높아…법관 재량에 맡겨져 '고무줄 잣대' 잡음 적지 않아

법원이 지난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석으로 석방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회사자금 350억원을 횡령하고, 국내 한 대기업에 다스 소송비를 대납시키는 등 111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런 중대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구속 피고인을 항소심 도중 풀어준 것은 국민 '법(法)감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구속만료 기한인 다음달 8일까지 심리를 마치고 선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석허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보증금 10억원 납입과 함께 주거지를 자택으로만 제한하고, 접촉·통신도 제한해 자택 구금 수준이라고도 강조했는데요. 경호원, 수행비서와의 접견과 통신은 허가했습니다.

 

물론 일정상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2심 재판부가 최근 교체되고 핵심 증인들을 소환하지 못한 채 재판이 공전을 거듭하다가 보석허가에 이른 과정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보석의 기준과 조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보석 제도는 불구속 재판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구현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데요. 사실상 법관 재량에 맡겨진 셈이어서 '고무줄 잣대'라는 잡음이 적지 않습니다. 

 

'다스는 누구 것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검찰은 '다스는 MB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가 다스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도곡동 땅과 BBK 문제도 속인 행태는 더 일찍 밝혀졌다면 대통령 당선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정치 보복'이라고 반박했지만, 대통령 직무 권한을 사익추구 수단으로 남용했다는 국민적 분노가 상당했습니다. 최측근과 형제까지 그를 외면하는 진술을 했고, 지난해 3월22일 구속되던 날 자택 앞에서는 지지자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법원이 이명박(78)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 사실상 '자택 구금' 수준의 까다로운 조건을 부과했습니다.

 

이같은 결정에는 최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황제 보석' 논란이 확산하는 등 보석 제도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을 의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고법 형사1부는 지난 6일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허가하면서 이례적으로 엄격한 조건을 붙였는데요.

 

세부적으로 보면 △주거지를 논현동 사저 한 곳으로 한정해 외출 제한 △배우자,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접견과 통신 제한 △10억원 보증금 납부 △매주 보석조건 준수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 '4대 조건'이 내걸렸습니다.

 

해당 조건을 수용한 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변호사를 하면서 제일 조건이 많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추가로 법원은 이 전 대통령에게 경호원, 수행비서와의 접견과 통신을 허가했습니다. 다만 경호원 등을 통해 사건이나 재판에 관련된 인사들과 일체 접촉을 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는데요.

 

이 전 대통령 측은 자택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도 접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좀 더 숙고한 후 결정하겠다"며 보류했습니다. 

 

◆MB 가사도우미 접견하게 해달라…法 "심사숙고한 뒤 결정할 것" 판단 보류

 

재판부가 이 같은 조건을 밝히기에 앞서 내놓은 설명을 보면 그 배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최근 재판에서 보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석 제도는 무죄추정 원칙을 구현하기 위한 불구속 재판의 기초 제도"라며 "보석 제도가 엄정하게 운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불구속 재판 원칙에 부합하는 보석 제도가 국민의 눈에는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최근 이 전 태광그룹 회장이 간암 등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와 보석 결정을 받아 7년 넘게 불구속 재판을 받은 사례를 두고 '황제 보석' 논란이 크게 불거진 바 있는데요.

 

검찰도 이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사례를 거론했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엄격한 조건을 달아 놓고, 이를 어기면 재수감하겠다고 천명해 논란의 소지를 차단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이번 석방이 사실상 '자택 구금'에 가깝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하며 이를 수용할지를 이 전 대통령 측이 결정하도록 했는데요.

 

재판부는 주요 증인 불출석 등 재판이 공전해 온 탓에 구속 만기일인 다음달 8일까지 한 달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보석으로 석방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재판부는 "검찰은 구속 기간 내 심리를 마치지 못하면 석방 후 심리를 계속하면 된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구속 만기로 석방할 경우 주거 또는 접견을 제한할 수 없어 오히려 증거인멸의 염려가 더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내달 8일 전 심리를 마무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구속 만기로 인한 석방이 이뤄졌을 때와 엄격한 조건을 붙여 보석으로 석방했을 때의 장·단점을 저울질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이날 석방 결정이 법률적인 원칙 이외의 배경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내비쳤는데요.

 

재판부는 "새로 구성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재판에 대해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검찰과 피고인의 의견과 주장을 충실히 듣고, 증인신문과 증거조사를 엄정히 진행해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재판부는 증인 소환장을 송달받지 못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고 있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5명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으로 소환 공지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소환 공지에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강제 구인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지했습니다.

 

◆'보석 결정' 정치적 해석 경계하는 재판부…"주요 증인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하지 않을시 강제구인할 것"

 

최근 보석을 청구한 이 전 대통령과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법원의 보석 허가 기준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법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청구된 보석 허가 비율은 3건 중 1건(33.3%)입니다. 올해 들어 지난 1월 한 달간 보석이 허가된 비율은 35.3% 수준인데요.

 

보석 여부를 결정할 때 기준은 구속영장 발부 기준과 비슷합니다.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는데요. 실형 선고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 피해자 등에 대한 가해 염려가 있는 경우 등도 고려 대상입니다.

 

법원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직권 또는 청구에 의해 임의적 보석을 허가할 수 있습니다. 중병에 걸려 수감생활을 하기 어려운 경우 허가하는 병보석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이유로 '법정에만 가면 아픈 사람이 늘어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실제 이 전 대통령도 건강상 이유를 들어서 병보석을 허가해달라고 했지만, 자택에만 머물고 병원을 갈 때마다 법원 허락을 받으라는 결정을 받았습니다.

 

강훈 변호사는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상 병보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모든 병에 관련된 것은 구속집행정지나 취소 사유고, 보석은 원래 구속영장 발부 요건이 됐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보석 결정 시에도 있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첫 주말을 맞은 지난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 전 대통령 자택 창문이 닫혀 있다. 연합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5일 보석 청구가 기각된 바 있는데요.

 

양 전 대법원장은 "기소 직후 첫 기일이 잡히기도 전에 보석을 청구하면서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은 확정된 형벌의 집행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인데 일종의 징벌로서 불구속 수사·재판이 무시된 채 보복 감정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면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구속 당시와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당장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해서 안도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어차피 실형이 선고될 처지라면 미결수 신분으로 최대한 구치소 생활을 해놓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미결수는 형이 확정되기 전이라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는 반면, 기결수는 형이 확정돼 복역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법정에만 가면 아픈 사람이 늘어난다?" 병보석 법관 직권으로 허가할 수 있어

 

여야는 지난 6일 이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석방된 것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놓아 대조를 이뤘습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법원의 결정은 존중하나 이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큰 것 또한 사실"이라며 "향후 재판 진행에 있어서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더욱 엄정하고 단호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국민의 눈에는 보석제도가 불공정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이 있다. 증거인멸은 꿈도 꾸지 말라"며 "법원의 허가 없이 자택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미적대며 재판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정선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이명박의 돌연사 위험은 제거되고 국민의 울화병 지수는 높아졌다"며 "그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는 판사의 법리적 판단이었길 바란다. 항소심 재판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이 다시 법정 구속돼 남은 형기를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병 보석은 기각하고 주거·접촉 제한하는 구금에 준하는 조건부 보석이라고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국민 기만"이라며 "이명박 측의 꼼수에 놀아난 재판부의 무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법원 결정을 존중하며 다행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고령과 병환을 고려할 때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전 대통령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말을 전해듣고 정말 마음이 아프다"며 "지금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법적 절차에 따른 결정"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보석으로 불구속 상태가 된 이 전 대통령은 재수감을 면하기 위해 항소심 선고를 지연시키려 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이에 휘둘리지 말고 단호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엄정하고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2년이 되는 날인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무죄 석방 1000만 국민운동본부'가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경호 기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이 전 대통령이 풀려난 것을 기회삼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거론하는 등 무분별한 주장을 하고 있어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보석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석방될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라 형 집행정지나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아니면 석방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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