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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vs 연애…'성인지감수성' 논란 현재진행형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2-22 05:00:00 수정 : 2019-02-22 1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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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성폭행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부인이 2심 재판부가 피해자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정황증거는 무시했다며 또다시 판결을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안희정 전 지사 부인 민주원씨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안 전 지사의 부인 민주원 씨는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피해자 김지은 씨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는데요. 지난 13일 1차 글을 올린 이후 7일 만입니다.

민씨는 이번 글에서 김씨가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인사이동된 뒤 도청 내에서 울거나 주변인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메시지 등을 근거로 들며 김씨는 성폭행 피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요.

김씨가 정무비서로 인사이동된 뒤 도청 내에서 울거나 주변인에게 섭섭함을 토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은 성폭행 피해자의 행동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민씨는 "피해자는 성폭력범과 멀어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몇 날 며칠을 누가 보든 말든,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이 울고 슬퍼하고 절망했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피해자를 이해하라는 성인지감수성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안 전 지사 부인 "피해자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1심도 2심도 성인지감수성을 언급했지만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며 "도대체 감수성으로 재판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성인지감수성은 법적 증거보다 상위 개념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는데요.

이어 "재판부는 왜 주장만 받아들이고 정황증거는 무시하신 것인지 알 수 없다"며 "피해자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사적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건 사생활 침해이고, 메신저 대화는 전체 맥락이 있는데 일부만 발췌해서 재구성하는 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는데요.

이어 "해당 메시지는 피고인 측에서 1심 때도 불균형하게 재판부에 제공한 것"이라며 "이런 식의 2차 피해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옮긴 후 김씨의 행동에 대해 김씨 본인은 수사과정에서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가는 건 잘리는 수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요.

2심 재판부 역시 "수행비서로서 6개월을 보낸 외에 다른 정치권에서의 경험이 없었고, 정무비서의 업무나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던 점을 고려하면 피해자로서는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보직이 바뀌는 것이 실제로는 퇴출 수순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김씨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안희정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앞서 민주원 씨는 "이번 사건은 용기 있는 '미투(#metoo·나도 말한다)'가 아니라 불륜 사건"이라며 김지은 씨와 그의 말을 믿어준 2심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1심 당시 핵심 쟁점이 됐던 '상화원 사건'을 둘러싼 김씨 진술이 "거짓"이라며 상세하게 반박했는데요.

민씨는 지난 14일 새벽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가정을 파괴한 김씨와 안희정씨를 용서할 수 없다"며 그간의 심경과 2심 판단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우선 민씨는 "제가 안희정씨와 부부관계이기 때문에 그를 두둔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결코 아니다"라며 "안희정씨의 불명예를 아무 잘못 없는 저와 제 아이들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어 김씨에 대해 "그 사람이 적극적으로 제 남편을 유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씨가 아닌 저와 제 아이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민주원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김지은씨 아닌 저와 아이들"

민씨는 1심 재판에서 자신이 직접 법정에 나가 증언한 '상화원 사건'에 대해 다시 상세히 적었는데요.

상화원 사건은 2017년 8월18∼19일, 안 전 지사 부부가 충남 보령 휴양시설 '상화원'에서 주한 중국대사 부부를 접대하는 일정 중에 벌어졌습니다.

김씨가 같은 건물의 숙소 2층에 묵던 안 전 지사 부부 방에 몰래 들어갔는지가 쟁점이었는데요. 그는 "방 안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 전 지사가 다른 여성을 만나 불상사가 생길까 봐 문 앞에서 쪼그리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며 "방 안에서 인기척이 나자 놀라서 내려갔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1심은 민씨 주장을 믿었지만, 2심은 김씨의 말에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씨는 "김씨의 이런 주장이 모두 거짓"이라며 "만약 김씨가 문과 가장 가까운 계단의 위쪽 끝에 앉아있었다 해도 문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있다 일어나면 벽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는데요.

그러면서 "제가 묵었던 침대는 3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침대 발치 앞은 통유리창"이라며 "침대에서는 절대 방문을 바라볼 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씨는 그날 오후 김씨가 자신에게 전화해 "간밤에 도청 직원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서 술을 깨러 옥상에 갔다 내려오다가 제 방이라 잘못 생각하고 들어갔다"며 사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자신의 방인 줄 알았으면 왜 그렇게 살며시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와 조용히 있었느냐"고 반문했는데요.

그러면서 "김씨의 이런 황당한 주장을 성인지감수성을 가지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김씨가 부부침실까지 침입한 엽기적인 행태를 성폭력 피해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2심 재판부 "안 전 지사 부인이 김씨에게 불리한 진술했을 수 있다"

민씨는 김씨가 JTBC에 출연해 사건을 폭로한 뒤 3시간 정도 지나 과거 캠프 봉사자였던 구모씨에게 상화원 이야기를 꺼내며 "김씨의 평소 행실에 대해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요.

2심 재판부는 (이 대목을 두고) "안 전 지사의 부인인 민씨가 김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씨는 자신의 증언을 믿지 않은 2심 재판부에 대해 "그처럼 경황없는 순간에 제가 어떻게 있지도 않은 사실이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었겠느냐"라며 "항소심 재판부는 (제 말이) 의심이 되면 저를 불러 다시 물어보지, 제게 확인도 하지 않고 그의 말만 믿었다"고 억울해했는데요.

이어 "김씨가 상화원에 들어온 날은 김씨 주장에 의하면 바로 2주일 전 두 번이나 성폭력 피해를 본 이후"라며 "그런 사람이 수행비서의 업무를 철저히 행하기 위해 성폭력 가해자 부부 침실 문 앞에서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김씨 주장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는지 진실로 재판부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부연했습니다.

◆김씨 측 "2차 가해 중단해야…사적인 대화내용 공개하는 건 사생활 침해"

민씨의 이 같은 공개 글에 대해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차 가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대위는 "가해자 가족에 의한 2차 가해는 일반적이고, 많이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다.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며 "가해자 가족의 글은 1심 재판에서도 펼쳤던 주장이며, 2심 재판부에서는 다른 객관적 사실 등에 의해 배척됐다"고 강조했는데요.

2심은 당시 안 전 지사 부부가 묵고 있던 2층 방문 상단이 반투명한 만큼 방문 밖에 있는 사람의 실루엣을 충분히 볼 수 있다며 '방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김씨 주장을 믿었습니다.

안 전 지사 본인도 당일 건물 옥상에서 문자를 보낸 중국 여성과 만난 사실은 인정하는 만큼 '불상사를 우려했다'는 김씨 주장도 믿을만하다고 봤는데요.

2심은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피고인 부부 침실에 몰래 들어가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설령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해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만한 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김지은씨는 새 책 '미투의 정치학'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충남도청에서의 지난 8개월, 나는 드디어 성폭력에서 벗어났다"며 "내 눈 앞에, 더 이상 그의 범죄는 없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로부터도 벗어났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여전히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판단은 이제 대법원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대법원은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이라, 추가로 제기된 사실 관계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는데요.

다만 2심이 진술 신빙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결과는 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측 주장 첨예하게 대립…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안 전 지사가 비서 성폭행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그의 1, 2심 판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성인지감수성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지난해 4월, 모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수차례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자 이에 불복해 낸 소송 상고심에서 처음으로 성인지감수성을 언급했는데요.

성인지감수성은 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문제에 대해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민감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통용됩니다.

성별이 다른 데서 비롯되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인데요. 사회, 문화, 관습, 통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영역이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입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을 입안, 집행, 평가할 때 성별 요구와 차이를 고려하기 위해 '성별영향평가 제도'를 시행하거나 공공예산 편성, 집행, 결산 등 과정에서 성별 영향을 고려하는 '성인지예산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성인지감수성' 정의 명확한 법률 용어 아니라는 시각도

대법원이 양성평등기본법을 근거로 처음 언급한 성인지감수성은 정의가 명확한 법률용어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양성평등기본법 역시 국가기관 등은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당위를 명시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성인지감수성을 판결문에 명시하면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1심은 성희롱을 인정한 반면 2심은 피해자가 교수 수업을 계속 수강한 점 등을 볼 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고 보기 어렵고, 형사고소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각서를 공증받기도 한 점 등을 들어 통상적인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요.

하지만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성희롱 사건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성희롱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와 같이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는데요.

◆"그때 그때 달라요" 자의적인 해석 막으려면?

이후 성인지감수성을 언급하는 판결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이 그동안 남성 중심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반성적인 고려가 담겼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안 전 지사 1, 2심 판결도 성인지감수성을 언급했습니다.

1심은 "이 사건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정의했고, 2심은 "피해자가 처한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요.

이런 해석 차이 때문에 성범죄 판결의 예측가능성이 사라지고, 보는 시각에 따라 성인지감수성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 전 지사처럼 외부에 알려진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서 성인지감수성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용어를 둘러싼 혼란도 향후 대법원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개념이 법적으로 정의된 단어가 아니다보니 설령 법조인이라고 해도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개별 판사마다 성인지감수성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수 있어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이 누적될 경우 단순한 단어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는데요.

이번 사건처럼 1심과 2심에서 사건 결과가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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