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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컬트’와 ‘컬처’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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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8 21:29:45 수정 : 2019-01-28 1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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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계층 폭력·성추문 만연 / 특정집단의 맹목적 추종·숭배 /‘컬트적 요소’ 강해져가는 한국 / 야만의 문화로 타락 경계해야 문화인류학자인 필자는 세계 여러 문화와 다양한 풍습과 관습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인간의 현실적인 삶은 결국 교육과 습관의 산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교육되지 않는 문화는 없고, 몸에 습관화되지 않는 문화는 없다. 거꾸로 몸에 습관화되지 않는 것은 문화라고 할 수 없고, 또한 후세에게 교육되지 않는 문화는 없다는 역도 성립한다.

흔히 고급문화를 시니컬하게 성결학(聖潔學)이라고 하고, 저급문화를 오물학(汚物學)이라고 말한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경전과 법전이고,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섹스와 배설이다. 인간의 문화는 이 둘의 사이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섹스와 배설을 숨기려 하고 또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이기도 하다. 반대로 경전과 법전의 말씀은 드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전자는 신체적인 것과 결부되어 있고, 후자는 대뇌작용(비신체적인 것)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신체적인 것과 가까운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삶은 신체와 잠시도 떨어져서는 살 수가 없는 데도 말이다. 의식주는 신체를 담거나 살아가는 물질문화이다. 그런데 의식주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사는 쪽은 여성이고, 남성은 대체로 비신체적인 말(언어·제도)과 관련되는 쪽에 종사하면서 살아왔다. 남성 위주의 사회는 그런 점에서 생래적으로 위선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여성시대여서 그런지 신체적인 것과 의식주와 관련되는 것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근래문화는 언어를 통해서보다는 풍부한 물질문화와 신체를 통해서 기호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결합이야말로 여성해방과 여성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 같다. 종래에 오물학에 속했던 것들이 이제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여성들은 결혼은 선택이고 연애와 성형은 필수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럴수록 출산과 인구의 문제는 모든 인류사회의 골머리를 썩이는 과제이다.

문화는 영어로 컬처(culture)다. 이 ‘컬처(칼처)’라는 말에는 경작(耕作)의 의미도 있고, 대체로 자연에 인간의 손길이 가해진 어떤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 ‘컬(칼)’은 ‘도구의 대명사이고, 무엇을 ‘가르고 배고’ 하는 인위의 의미가 들어있다. ‘컬(칼)’은 ‘경작’과 ‘인위’의 의미와 통한다.

재미있는 것은 ‘컬처’의 ‘처(ture)’자인데 이를 독일식으로 발음하면 ‘투르’로서 우리말로 ‘틀(체계)’과 비슷하다. 결국 문화는 인위가 가해진 ‘틀’의 의미가 있다. 어떤 점에서 인도유럽어와 한글에 내장된 세계 언어의 공통어근 같은 것을 상상케 한다. 문화는 어떤 인위의 체계이고, 그러한 틀을 가짐으로써 후대에 전수되고, 또한 남(다른 문화)에게 전해지고 이해될 수 있는 ‘삶의 종합적인 체계(방식)’임을 알 수 있다.

문화와 비슷한 말로 ‘컬트(cult)’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컬트를 흔히 제의(祭儀) 혹은 추종숭배(追從崇拜)라고 말한다. 네이버사전을 보면 컬트는 “어떤 체계화된 예비 의식, 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예찬, 열광적인 숭배, 나아가서 그런 열광자의 집단, 특히 미국 사회에서 현저하며,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한다. 말하자면 보편화된 문화가 되기 전의 어떤 특정 집단의 추종이나 숭배나 열광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컬트’와 ‘컬처’의 결정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보다 세련되고 합리화된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컬트의 대표적인 예로 맹목적인 사교(邪敎)집단이나 조폭(組暴)사회, 비밀스런 사교(社交)클럽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열광하는 팝 마니아들로 여기에 속할지 모른다. 현대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의 컬트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컬트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컬트가 문화적으로 승화·승격되고 보다 체계화·보편화되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함께 삶의 방식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반대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 문화가 점점 사적이고 사리사욕적인 것이 되고, 폭력적인 것이 되고, 괴력난신(怪力亂神)이 되고, 소수의 특정집단에게 통용되는 것이 된다면 점차 컬트적 요소가 강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의 한국문화는 점차 컬트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심각한 것은 공식(formal)사회 혹은 지식권력엘리트집단과 상류사회의 폭력적 요소이다. 최근 불거진 빙상계의 코치나 감독과 선수 사이의 성폭력, 엘리트체육계 전반에서 불거지고 있는 집단구타,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정치권의 미투(Me Too)와 방송연예계의 성상납 등 신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나쁜 의미에서의 밀교적인 요소들은 우리 사회가 컬트사회가 아닌가 의심케 한다.

더욱이 학문의 전당인 대학사회의 교수와 학생 사이의 성추문, 그리고 최상층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의료사회, 법조사회가 거짓과 위선으로 조폭사회를 닮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국민소득만 올라가면 선진국이 될 것 같았던 막연한 꿈은 점차 물거품이 되고 있다.

한 문화가 타락하고 저질화되면 ‘컬트’가 되고, 컬트도 승화되고 신성화되면 ‘문화’가 된다. 돈과 권력과 섹스가 범람하는 현대사회는 컬트사회가 되기 쉽다. 한국문화가 위선과 폭력과 야만의 사회가 되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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