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한민족의 비애로 승화한 사공 이야기 '임자 없는 나룻배' [한국영화 100년 -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입력 : 2019-01-28 20:51:38 수정 : 2019-01-28 16:29: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②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 / 외세·문명에 밀려난 조선민족의 암울했던 현실 표현/ 1932년 28세에 메가폰 잡은 데뷔작 / 국내 스태프만으로 촬영 정체성 살려 / 개봉 첫날 총독부 검열계 재검열 곤욕 / 결국 마지막 부분 150여자 잘려나가 / 철교 놓이며 일터 잃은 사공 애환 담아 / 언론선 “과거에 나온 작품 중 최고" 평가
1932년 9월18일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1932)는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주제의 유사성이다. ‘아리랑’이 한·일관계를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로 설정하고 마름을 그 앞잡이로 내세웠다면, ‘임자 없는 나룻배’는 철로가 놓이게 되면서 일터를 잃게 된 나룻배 사공과 그들 부녀를 괴롭히는 공사장 감독의 만행을 통해 ‘밀려난 겨레의 애환’을 보여주려 했다. 둘째, 25세와 28세의 나이에 메가폰을 잡은 두 감독의 데뷔작으로 나란히 명화의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신일선(아리랑)과 문예봉(임자 없는 나룻배)을 발굴해 화형(花形) 배우로 만든 안목, 다른 점은 제작(조선키네마프로덕션)과 촬영(가토 교헤이) 모두 일본인에 의존했던 ‘아리랑’의 경우와는 달리 ‘임자 없는 나룻배’는 한국인 스태프만으로 구성하여 정체성을 살렸다는 사실이다.
이규환 감독

◆개봉 당일 150여자 잘린 재검열 소동

그러나 ‘임자 없는 나룻배’는 개봉 첫날 필름이 영사기에 걸린 상태에서 상영이 중단될 위기에 빠지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다음은 이규환 감독이 들려준 급박했던 ‘재검열 소동’(‘영화 60년’(3), 중앙일보, 1979년 12월18, 19일)의 후일담이다.

상영시간이 7시였는데, 6시쯤 되니까 이미 단성사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루었다. 나는 나운규, 그리고 전주(錢主)인 강정원과 극장 입구에서 밀려드는 관객들로 흥분해 있었는데, 총독부 검열계로부터 필름을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극장 영사기에 걸려 있는 필름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이미 검열을 끝낸 것이었다. 나는 직원 한 명을 데리고 부리나케 총독부(광화문 중앙청) 검열계로 달려갔다. 직원들은 이미 퇴근한 뒤였고 오카(岡)란 검열주임만이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한동안 나를 노려보고 있던 그가 석간신문 한 장을 툭 던지면서 “고레 미(이것 봐)!”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하고 신문을 집어들어 살펴보니 ‘임자 없는 나룻배를 보고’란 제목이 달린 동아일보의 사사평이었다.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이기도 한 학예부장 주요섭이 쓴 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조선민족의 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암시해준 영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부부 연기를 한 김연실과 나운규.
김종원 제공

오카 주임의 지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 검열 이전에 시사회를 가졌다는 것과, 둘째 조선민족혼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부분이었다. “너 이 제목 ‘임자 없는 나룻배’란 조선민족을 암시한 것이지!”라고 다그쳤다. 그리고 제목을 갈라고 호통을 쳤다. 나는 오카 주임의 말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눌 수가 없었으나 “이 영화는 한 뱃사공의 애증을 그린 서정영화지 절대로 사상영화가 아니다”라고 설득했다. 오카 주임은 제목은 그대로 좋다 하더라도 검열만은 또 한 번 해야겠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상영시간은 눈앞에 다가왔는데 1시간20분 길이의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겠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문제가 없다면 그 부분만 다시 봐도 되지 않느냐”고 간청하여 다행히 마지막 필름 한 통만 돌리게 되었다. 그 부분은 주인공 춘삼(나운규)이가 철로를 때려 부수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오카 주임은 “이게 바로 반항이란 말이야. 이걸 잘라야 해”라고 했다. 결국 ‘임자 없는 나룻배’의 마지막 부분 150여자가 다시 잘려나가고 검열은 끝난 셈이었다. 가까스로 상영이 시작되었지만, 정해진 시간보다 이미 40분이나 지난 뒤였다.

◆ 한민족의 비애로 승화한 사공 이야기

1932년 8월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 좁은 길은 몰려든 사람들로 인파를 이루었다. 활동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신기롭게 여겨지던 시절에 그 활동사진을 직접 거리에서 찍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있을 리 없었다. 촬영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것은 단성사 맞은편이 당시 대중교통수단이었던 인력거의 병문(兵門)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인력거꾼으로 분장한 나운규가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하염없는 모습으로 인력거 앞에 앉아 있었다. (이규환, ‘영화60년’ (1) ‘신출나기 감독’, 중앙일보, 1979년 12월17일)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는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부녀 관계로 나오는 나운규와 문예봉.

가뭄과 수해 등 겹치는 재난으로 살길이 막연해진 농부 정춘삼(나운규 분)은 아내(김연실)와 함께 도시로 나와 인력거꾼이 된다. 만삭이 된 아내가 난산을 겪는데도 속수무책인 춘삼은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의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나오다가 절도범으로 붙잡히고 아내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는 처지가 된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춘삼은 아내를 찾았으나 이미 자동차 운전사의 동거녀가 되어 버린 뒤였다. 아내로부터 어린애를 빼앗아 안고 고향에 돌아온 춘삼은 나루터의 뱃사공이 되고 딸 애연(문예봉)은 어느새 자라 아버지를 돕는 처녀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친다. 강에 철교가 놓이게 되면서 손님들로부터 더 이상 뱃삯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애연에게 욕심을 품은 공사장 감독(임운학)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춘삼이 공사 현장으로 달려가 감독을 도끼로 찍어 죽이고 다가오는 기차에 치어 죽는 일이 벌어진다. 집에서 자고 있던 딸 애연마저 춘삼이 집에서 달려 나올 때 실수로 쓰러트린 석유 등잔의 불길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안종화 ‘한국영화측면비사’, 춘추각, 1962년, 202쪽 참고) 임진강 철교, 서빙고, 한강상류 등지에서 오픈세트를 짓고 야외촬영을 한 이 영화는 흥행에도 성공했다. 낮 영업 없이 밤에만 상영하던 시절이다.

◆고언 속의 상찬, 신문의 평가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허심은 ‘동아일보’에 쓴 시사평(유신 키네마 2회작 ‘임자 없는 나룻배’ 1932년 9월14일)을 통해 ‘조선 영화계에서 일찍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독과 명쾌한 촬영으로 된 영화’라고 전제하고 “아마도 이때까지 나온 조선 영화의 패권을 잡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나운규가 주연하는 춘삼이란 한 개 농부 노동자의 슬픈 이야기를 한 개인이 아니라 ‘조선 민족이라는 한 민족의 이야기’로 볼 때 비로소 그 감격이 커진다”고 하였다.

김유영(영화평 ‘임자 없는 나룻배’ 조선일보, 1932년 10월6일)은 이 작품이 지닌 ‘패배적 경향’과 나운규의 분장, 맞지 않은 김연실의 배역을 단점으로 지적했으나 작품에 대해서는 호감을 보였다. ‘과거에 나온 작품 중에서 제일 뛰어난 좋은 작품’으로 “이규환 군의 감독술은 재래의 나운규씨의 모션을 어느 정도까지 없애 버렸다고 평가했다.

송악산인(松岳山人) 명의로 나온 매일신보의 시사평(1932년 9월14, 15일)은 상찬에 가까웠다. “이만큼 현실의 일면을 잘 표현해 준 것은 감독자 이규환군의 공이다. 그리고 전편을 통하여 감독술에 있어서 청신하면서도 무게가 있다. 주연 나운규군은 이미 열 있는 출연으로 정평 있는 사람이다. 그의 열로 가득 찬 동작과 표정은 항상 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야 만다. 끝으로 문예봉양. 그는 아직 16세의 어린 처녀다. 무대의 경험도 그리 많지 아니한 편, 극단 종사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관계로 극적 분위기 속에서 지나왔다고는 하여도 이번 역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의문이었다. 그러나 양은 관중의 안타까운 걱정을 일소에 풀만큼 좋은 출연을 보여주었다.”

이상의 평가를 종합할 때 ‘임자 없는 나룻배’는 외세와 문명에 밀려난 1930년대 암울했던 한국 사회의 일면을 관조적인 정서와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출한 수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김종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상임고문, 영화사학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수지 '치명적인 매력'
  • 수지 '치명적인 매력'
  • 안유진 '순백의 여신'
  • 고민시 '완벽한 드레스 자태'
  • 엄현경 '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