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 불고 있는 박항서 감독과 한국의 열기를 한 번 이야기하고 싶다. 3박4일 짧은 기간이었지만 ‘박항서’의 인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잘 모른다. 2006년 체육부에서 축구를 담당했을 때 그는 프로축구팀인 경남FC 감독이었다. 몇 번 기자 회견장에서 본 적은 있지만 사적인 소통은 없었다.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 16일 저녁이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말레이시아를 1-0으로 꺾고,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바로 다음 날이다.
“어휴 말도 마세요. 그날은 정말 대단했지요.” 17일 만난 한 한국인 주재원에게 15일 상황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많이 있는 하노이시내 참빗타워 앞 도로는 경기 시작 전부터 차량이 통제됐다고 한다. 그는 “우승한다는 것을 전제로 경기 시작 수 시간 전부터 수천명의 젊은이가 몰려나와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金星紅旗)와 태극기를 함께 흔들었다”고 전했다.
만나는 베트남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박 감독 얘기를 먼저 꺼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박항서’가 최고라고 했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어가 인기 외국어가 됐는데, 박 감독으로 더욱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의 말이 고등학교 시험문제로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관련 기사가 있었다. 한 고등학교가 박 감독의 말을 논술 시험문제로 출제한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느냐”는 박 감독의 말에 대한 본인 생각을 서술하라는 문제였다.
박 감독과 축구팀을 소재로 한 얘기는 취재를 위한 첫 만남의 어색함을 말끔히 해소해 줬다. 여기에도 공식이 있다. 먼저 베트남의 스즈키컵 우승을 축하해 준다. 그러면 그(베트남 취재원)는 박 감독의 리더십을 치켜세운다. 답례로 베트남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거론한다. 그러면 누구나 응우옌 쑤언 푹 총리가 박 감독에게 보낸 격려 편지를 소개하고 박 감독과 축구팀은 베트남 청년의 ‘끓어오르는 피’의 상징이라고 칭찬한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박 감독의 리더십을 산업과 국가 분야에 적용해 베트남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마지막엔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한국인 ‘박항서’를 함께 공유하는 우리는 친구라는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박 감독은 지난 21일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을 받았다. 푹 총리는 박 감독을 정부 청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번에 두 나라 국민 사이의 마음이 매우 친밀해졌다”고 밝혔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관리와 기자는 모두 박 감독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인종과 국가와 세대가 다른 한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이 처음 만나 박 감독을 고리로 짧은 시간에 이렇게 친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민간외교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땡큐! 박항서.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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