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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개인 아닌 사회문제-상] 서울 도심에서 아이 낳는 건 '무모한 도전'?

입력 : 2018-06-30 13:00:00 수정 : 2018-06-27 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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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10여 년간 100조원 규모 재정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출생아가 40만명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의 노력이 출산·양육에 관련되는 제도를 개선하고,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각계로 확대하는 등 사회 분위기 변화를 유도하는 효과는 있었으나 출산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06∼2010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2011∼2015년에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했고,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계획으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적 기반은 과거보다 확대됐다.

출산휴가급여 지원 기간이 30일에서 90일로 늘어났고,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유산·사산휴가 제도를 신설하는 등 모성보호 조치가 강화됐다. 가족친화기업을 인증해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으며, 사업장별로 임의로 시행하던 남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배우자 출산휴가가 의무화됐다.

육아휴직 대상이 확대됐고 육아휴직 급여도 인상됐다.

2010년 기준으로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에서 매월 50만원이 최대 1년간 지급되는 정액제였으나 2011년에 월 50만∼100만원 범위에서 통상임금의 40%를 주도록 정률제를 도입했다.

작년 9월부터 최초 3개월에 대해서는 월 70만∼150만원 범위에서 통상임금의 80%로 인상하도록 지급률을 올렸다. 나머지 9개월은 기존과 동일하다.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대상자는 생후 1년 미만의 영아가 있는 근로자에서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로 확대됐다.

◆저출산 대책 비웃듯 출산 기피 현상 갈수록 심화

근로자의 육아를 위한 기업의 지원도 확대했다.

보건복지부의 직장어린이집 설치현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6년에는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사업장 775개 가운데 직접 설치 또는 위탁으로 의무를 이행한 사업장이 365개(47.1%)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1153개 사업장 가운데 940개(81.5%)가 어린이집을 직접 설치하거나 위탁하는 등 이행률도 높아졌다.

작년에는 민간부문 남성 육아휴직 자가 1만2000여 명을 기록, 1995년 남성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한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1만명을 돌파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저출산은 개인적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국가 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라는 공감대가 과거보다 확산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투입한 국가 예산은 2016년 무렵에 100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 보고서 등에 따르면 2006∼2015년 저출산·고령사회 1·2차 기본계획을 시행하면서 저출산에만 약 80조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정부는 현재 추진중인 제3차(2016∼2020) 기본계획을 올해 전면 수정할 방침이기는 하지만, 기존 계획을 기준으로 여기에는 약 108조원이 들 전망이다.

이런 정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대응 성적표는 '낙제' 수준을 면하지 못했다.

연간 출생아 수는 2002년 49만2111명을 기록하며 1970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50만명 선이 붕괴했다. 이후 2006·2007·2010·2011·2012·2015년을 제외하고 줄곧 감소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출생아가 35만7700명으로 잠정 집계돼 처음으로 40만명을 밑돌았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1.3 미만을 기록하는 초저출산 현상이 2001년(1.297)부터 작년까지 17년째 이어졌다.

작년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1970년 출생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0.84)과 부산(0.98)은 합계출산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과거 10여년 동안 재정 투입을 비롯한 정책적 노력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했던 셈이다.

◆10여년 재정 투입, 저출산 문제 해결 역부족

우선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이 저출산에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육아휴직 급여 등 지원 등의 확대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사설 보육 이용료, 주택 가격, 사교육비 등 출산·양육과 밀접한 비용이 빠르게 치솟아 지원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공립어린이집 입소 대기자 문제에서 보듯이 자녀 양육과 직접 관련된 인프라는 여전히 수요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에 대한 인식이 확대했지만, 경력단절여성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장시간 근무와 휴일 근무 등이 만연한 근로 환경에서 맞벌이 부부에게 출산과 육아는 여전히 큰 짐이다.

저출산 문제를 심화하는 배후 요인으로 지목되는 만혼(晩婚)이나 비혼(非婚)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취업난, 저임금, 고용 불안, 주거 불안정 등 청년들이 가정을 꾸리기 어렵게 하거나 출산·양육에 대한 부담을 키우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출산과 양육 지원에 집중하는 대증요법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저출산 문제를 다루는 일선 행정기관 대응 체계 미흡이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펴낸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저출산 대책 업무 담당자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83.5%가 인력이 부족하다고 반응했다.

저출산 대책 담당자 스스로가 업무에 관해 높은 전문성을 갖췄다고 여기는 비율은 15.9%에 불과했으며, 92.2%는 업무에 관한 교육 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출생아 수 사상 최저…문 닫는 산부인과 급증

이런 가운데 저출산 여파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산부인과 병·의원들이 갑자기 파업에 돌입하거나 폐업을 알리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면서 애꿎은 임산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국내 한 유명 여성전문병원도 파업으로 지난 4일부터 닷새간 정상 진료를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등 임산부들에 불편을 야기한 가운데, 서울의 또 다른 산부인과의원은 지난달 초 환자들에 공지 문자만 남긴 채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산부인과의원은 지난해 말 간호조무사의 결핵 감염이 보고된 후 전수조사에서 영아 3명의 잠복 결핵 감염이 확인된 곳이다. 전국 대부분의 산부인과가 저출산 여파로 분만 건수가 줄어들며 경영난을 겪는 데다, 잠복 결핵 사건까지 겹치자 지난달 결국 문을 닫았다.

출산을 앞두고 그동안 진료를 받아왔던 병원과 의료진을 바꾸는 일은 임산부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지는 건 물론, 불필요한 진료나 검사가 더해질 우려도 있다.

실제 출생아 수가 사상 최저를 찍으면서 문 닫는 산부인과가 급증,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의료기관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제왕절개분만율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자연분만, 제왕절개 등 실제 분만이 이뤄진 의료기관 수는 603개소로 2006년 1119개소 대비 46.1%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을 비롯 병원, 산부인과의원 등에서 요양급여비용 청구명세서상 분만 수가 코드가 발생한 의료기관 수를 집계한 결과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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