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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평가 순위표만 집착 … 교수·학습 환경 개선 노력은 미흡

입력 : 2018-06-16 15:00:00 수정 : 2018-06-16 12: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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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대학 평가 부작용에 비판 / ‘사단법인’ 설립 등 조직적 대응 / “대학 서열화 말라” 교수들의 반발 / 선의의 경쟁·알권리의 증진 취지 표방 / 1994년 시작 일간·경제지 3∼4곳 주도 / 연구·교육보다 지표 위주 운영 부작용 / 같은 자료·가중치 제각각 신뢰 떨어져 / 대학 “자료 준비 부담… 실효성도 의문” / 총장 업적 평가 홍보용으로 쓰이기도
대한민국은 ‘서열’에 민감하다. 취향의 영역인 음식 맛이나 예술조차 순위 매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대학은 어떨까? 능력과 자질을 우선하기보다는 ‘대학 간판’을 중시한 학벌주의에다 유별난 교육열까지 겹쳐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뿐 아니라 ‘서성한중경외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등이 주문처럼 나도는 배경이다. 여기에 국내외 일부 언론과 민간기관까지 가세해 ‘고등교육 역량 평가’를 명목으로 대학 간 서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대학 서열화를 즉각 중단하라!”

대학교수들이 중구난방식 대학 평가에 반발해 목소리를 내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서울 소재 9개 대학의 교수들이 뭉친 서울소재대학교수회연합회(서교련)는 지난달 25일 ‘언론사 대학평가에 대한 정책포럼’을 열고 “다양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대학평가를 거부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대학이 나서 직접 목소리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며 소속 교수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내용의 교수 성명이 이따금 나온 적 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각 대학 교수의회 의장들이 모여 사단법인을 만들고 정부와 언론사 등을 상대로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교수들은 왜 발끈했을까?

15일 서교련 등에 따르면 국내 언론사들의 대학평가는 1994년 A언론사를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보수성향 종합일간지와 경제지 3∼4곳이 주도하고 있다. 2010년 한 진보성향 종합일간지는 ‘대학지속가능지수’란 평가를 만들고 3년간 순위를 내놓은 뒤 관뒀다.

대학평가는 ‘대학 간 선의의 경쟁 유도와 학생·학부모의 알권리 증진’이란 취지를 표방하나 교수들은 ‘대학 본연의 역할을 왜곡하고 다양성을 훼손한다’고 꼬집는다. 대학별 규모나 예산, 건학이념, 교수진 등이 다른데도 평가기관들이 자체 기준에 따른 획일적 지표로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다.

서교련 관계자는 “대학들이 (평가 순위를 의식해) 연구와 교육, 봉사라는 근본 목적이 아닌 지표관리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며 “대학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러 언론사가 뛰어들며 되레 신뢰성과 공정성, 투명성 논란이 부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슷한 자료를 두고 언론사마다 가중치나 평가가 제각각이다. 지난해 A사의 ‘공학(자연)계열 대학순위’는 ‘성균관대(카이스트)-포스텍(〃)-한양대(서울대)-카이스트(성균관대)-고려대(〃)’ 순이었지만 B사의 ‘이공계대학 종합순위’는 ‘한양대-카이스트-성균관대-서울대-포스텍’ 순이었다. 세부 지표에선 차이가 더 극명하다.

경희대 교수의회 의장 이성근 교수(부동산학)는 “다른 언론사와 차별화를 위해 콘셉트나 평가모형을 다르게 설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순위가 제각각”이라며 “(평가 주체들의) 구조적 딜레마가 뚜렷해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 3월 발표한 대학 재정지원사업 개편안에서 ‘대학이 자율성과지표 설정 시 세계대학평가 결과 활용 가능’이라는 표현을 넣어 대학가의 비판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가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상업성도 배제할 수 없는 외국의 ‘세계대학평가’를 재정지원사업 관련 지표에 반영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대학평가를 하는 해외 주요 고등교육 평가기관으로 영국의 ‘THE’와 ‘QS’, ‘라이덴’(네덜란드), ‘상하이 자오퉁’(중국) 등이 손꼽히지만 평가 기준이 제각각이고 대학별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기준 등으로 뒷말이 많다. 예컨대 지난해 THE와 QS의 세계대학평가에서 100위권에 들었다거나 ‘국내 톱 10’이라고 자랑한 국내 일부 대학이 논문 질을 평가하는 ‘라이덴 랭킹’에선 하위권에 머물렀다. QS의 경우 단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한 대학별 평판도 비중이 큰 점, 라이덴 랭킹은 논문 생산량이 많은 대규모 대학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문제점 알지만···” 난감한 대학들

대학들도 내심 이러한 평가를 반기지 않는다. 취재진이 11개 국공립·사립대학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언론사 대학평가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 오히려 ‘자료 준비에 부담을 느낀다’거나 ‘실효성에 의구심이 든다’는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정부가 운영하는 ‘대학알리미’를 통해 각종 대학정보를 매년 공개하는 만큼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특정 언론사에 휘둘린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대학의 참여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진다”, “수도권 대학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등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그럼에도 대학들이 언론사 평가를 외면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수년 전부터 ‘임기 내 대학평가 순위를 얼마나 올렸는지’가 총장들의 주요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어서다. 행여 순위가 떨어지면 동문들의 ‘눈총’과 압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 대학 관계자는 “순위가 올랐을 때 홍보 면에서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른 대학들도 매달리는 상황에서 우리만 외면하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과거 부총장 시절 국내 언론사 대학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강한 거부감을 피력했던 서울의 한 주요 대학 교수는 총장이 된 후 상위에 오른 대학 평가 순위를 교내외에 적극 알리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는 QS의 평가 항목 중 기업체 인사담당자가 직접 입력해야 하는 졸업생 평판도를 교직원이 작성한 사실이 들통나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대학평가 순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선진국 대학들과 달리 국내 대학들은 평가 순위에 집착하면서 정작 교수·학습 환경 질적 제고 등 교수와 학생들에게 필요한 노력은 게을리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대학평가가 대학의 실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유도하기보다 말 그대로 평가용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대학평가를 두고 ‘평가주체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상품’이란 비난마저 하는 실정이다.
◆“투명성·민주성·공공성 따져야”

저서 ‘대학의 기업화’를 펴낸 고부응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대학평가는 연구 내용이나 학생의 지적·도덕적 성장보다 데이터뱅크에 오른 논문 수와 취업률 등 숫자로 된 것만 관심거리”라며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대학들을 일일이 비교·분석하긴 어려운 만큼 대학평가 자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류도 있다. 일부 대학은 “외국 평가보다 국내 언론사 평가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은 “우리 정서나 실정에 맞게 대학의 의사결정·자금운용의 투명성, 사학의 민주성, 공공부문 기여도 등의 평가를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창수·김청윤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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