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여론조작?… 개인 맞춤형 정치 광고 내보내
미국 언론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아니라 ‘여론조작’ 사건에 가깝다는 판단 때문이다. 무단 수집한 개인정보를 범죄집단에 판매해 이익을 얻기보다는 해당 정보로 정교한 여론조작을 감행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정원 댓글사건’을 비롯해 사이버 공간에서 여론을 움직이려는 여러 시도에 비판과 우려가 제기됐다.
CA가 2016년 미국 대선을 겨냥해 설계한 여론조작 방식은 국내의 댓글사건보다 한층 진화했다는 평가다. 단순히 인터넷 게시물이나 기사에 댓글을 달아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넘어 SNS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정치 광고를 내보내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CA는 고양이라는 판매상품 대신 정치인 광고나 정치 프로파간다를 제공함으로써 ‘맞춤형 정치 광고’를 완성시킨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CA는 자체 개발한 설문조사 앱을 퍼뜨리고, 이를 설치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사람들의 취향과 성향을 파악했다. 또 이 앱 속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해 사용자의 페이스북 계정 정보는 물론 페이스북에 게시한 개인정보와 친구 리스트, 심지어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이 어떤 것인지까지 확인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최근 주목받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따라 분류·분석돼 정치 광고에 활용됐다.
CA 사태는 이미 정치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A의 정치 광고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선거캠프에서 활용된 탓이다. NYT는 CA에 자금을 댄 억만장자 로버트 머서가 공화당 지지자였으며, CA 관련 회사 대표를 지낸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참모 역할을 한 점을 지적했다. 또 CA로 연결된 각종 데이터 분석 회사의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된 정황이 있다면서, 이번 사건이 최근 수사가 진행 중인 ‘러시아 스캔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일종의 ‘내로남불’이라면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CA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도 페이스북이 특정 정치권에 우호적인 행태를 보였는데,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될 당시도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폭스뉴스는 지난 7일 “이번 청문회에서 반드시 질문해야 할 내용”이라며, 2012년 오바마 전 대통령 재선 당시 페이스북의 활용 여부에 주목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 내 미디어 담당 국장인 캐롤 데이비드슨은 당시 “페이스북은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통해 각종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우리를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페이스북은 우리 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했다면 금지했을 행위를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태가 커지자 페이스북은 지난 6일 자사 플랫폼에 정치 광고를 하는 경우 광고비를 댄 주체를 밝히도록 하고, 그 신원을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검증을 위한 추가 인력을 고용할 방침도 확인했다.
롭 골드만 페이스북 광고담당 부사장과 알렉스 힘멜 로컬 페이지 담당 부사장은 “광고주들이 승인을 받지 않는 한 선거나 현안 관련 정치 광고를 운영하는 것이 금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저커버그의 해명이 사태가 불거진 지 5일 만인 지난달 21일에 나왔고, 관련 대책도 보름이나 지나서야 등장한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지난 4일까지 페이스북을 상대로 주주 및 이용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은 최소 18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소송은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 등 각지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 이용자 규정 위반, 직무 과실, 소비자 기만, 불공정 경쟁, 부당 이득 등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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