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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당국 무관심·실수에 민폐시설 전락… 폐업 내몰린 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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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14 19:22:39 수정 : 2018-03-14 21: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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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목장·양돈장은 어떻게 무허가 축사가 되었나 / “문제 삼는 공무원 없었다” / 25년간 세금 꼬박꼬박 낸 축사 / 일시전용허가 모른 채 운영해와 / 주택가 생기자 사육 제한하는 / ‘조례’가 발목… 지자체는 ‘뒷짐’ / 행정 착오로 문 닫을 위기에 / 양주서 35년간 양돈장 해왔는데 / 졸지에 제한구역 내 불법시설물로 / 市가 잘못했는데 피해는 축사가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선홍빛 살코기를 올린다. ‘치지지익∼’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 주변으로 퍼지는 고기구이 냄새….

일반 소비자가 ‘고기’와 만나는 지점은 이렇다. 고기는 오늘도 내일도 우리 식탁에 오르겠지만, 우리의 관심은 여기까지. 대부분은 소·돼지·닭이 자라는 축사에는 관심이 없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염라이씨가 운영하는 젖소목장.
염라이씨 제공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축사란 시골길을 걸을 때 바람에 실려온 똥냄새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축산 관련 당국도 여느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축사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 우리나라 축사는 수십년간 경계가 모호한 법적 테두리 안팎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축산농가에 위협적인 칼을 빼들었다. 그 칼의 이름은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 2015년 개정된 이 법에 따르면 무허가 축사는 오는 24일까지 ‘적법화하든지, 문을 닫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농가의 반발이 잇따르자 얼마 전 환경부는 ‘노력하는 농가에 한해’ 이행기간을 내년 6월24일로 늘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축사 문을 닫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는 농가들이 있다. 염라이(61·여)씨의 젖소농장이 그렇다.


◆‘굴러온 돌’에 폐업 몰린 축사들

“나는 우리 목장이 제한구역에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만난 염씨는 25년 동안 목장을 운영해오면서 무허가 축사 적법화가 축산업계 쟁점으로 떠오른 뒤에야 본인의 목장이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사연이 구구절절했다.

염씨 남편은 30년 전 직장에서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때 받은 산재보상금으로 송아지 3마리를 구입해 낙농업을 시작했다. 마릿수가 늘어나면서 1993년 좀 더 넓은 덕양구의 현재 위치로 축사를 옮겼다. 당시는 군사지역이어서 ‘일시전용허가’를 받았다.

1995년에는 고양시 지원으로 축사를 늘리고 2005년 경기도에서 축산업등록제가 시행되면서 축산업등록증도 받았다. 2010년에는 시 지원으로 퇴비사도 지었다. 사실 일시전용허가는 3년마다 연장해야 해 1997년부터 염씨의 목장은 무허가 상태였다. 그러나 관련 규정을 알려주거나 무허가를 문제 삼은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허가를 3년마다 연장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왜 안 했겠어요. 저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축산 담당 공무원 누구도 우리 축사가 무허가라거나 허가 연장을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어요.”

1990년대 허허벌판이었던 목장 주변에는 조금씩 주택이 생겼다. 2010년 무렵에는 40∼50m 거리에 다세대주택(빌라)이 들어섰다.

염씨 부부는 혹시 민원이 생길까 싶어 사육두수가 40마리를 넘지 않도록 조절해가며 소를 길렀다. 2010년에는 축산물 안전관리인증기준(HACCP·해섭)을 받았다. 고양시 축산농가 해섭 2호였다. 경기도가 선정하는 아름다운 농장으로도 뽑혔다.

축산분뇨는 삽으로 퍼내고, 오수는 우사 바닥에 깔린 톱밥에 흡수된다. 그렇게 모인 분뇨와 오수는 모두 농협 퇴비공장으로 간다. 악취가 나지 않도록 축사에는 수시로 유용미생물(EM)과 광합성균을 뿌린다. 구제역이 돌 때도 염씨 목장이 무사했던 이유다.

염씨는 2∼3년 전 무허가 축사 적법화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자신의 축사가 무허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택가가 축사 바로 앞에 있어도 민원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축산 오폐수도 적법하게 처리하고 있으니 신청만 하면 적법화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주택가가 발목을 잡았다. 고양시는 가축분뇨처리에 관한 조례에서 50호 이상의 주거용 건물이 있으면 가축사육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2015년 가축분뇨법을 개정하며 염씨 목장처럼 가축사육제한구역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존재해온 축사는 합법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뒀다. 하지만 이런 지침은 지자체 단위로 내려오며 유명무실해진다.

김홍래 고양축협팀장은 “달영목장은 26개나 된다는 관련법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지만 조례에 막혀있는 상황”이라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민원을 우려해 지자체에서는 매우 소극적인 행정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염씨의 목장은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염씨가 같은 규모의 목장을 다른 곳에 지으려면 시설비를 포함해 10억원(3.3㎡당 땅값 40만원 기준)이 든다.

최근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적법화 1단계 대상농가 3만5000여 개소 중 적법 조치를 이행한 농가는 8000여 곳(23%)에 불과하다. 적법화 미이행 농가가 77%에 달하는 것은 염씨처럼 제한구역에 묶여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행정착오로 폐업에 몰린 경우도 있다.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손석규씨는 아버지가 1983년에 만든 양돈장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들어선 대학 때문에 허가 절차를 받을 수조차 없다.

학교를 세우려면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에 축사나 유흥업소 같은 시설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해당 구역에 금지시설이 있느냐는 양주교육지원청의 문의에 양주시는 ‘없다’고 답했다. 손씨가 기자에게 보내온 2009년 양주시 공문에는 ‘당해 지역은 청정지역으로 교육 관련 위해시설이 없으며… 캠퍼스 이전사업은 양주시의 역점사업으로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손씨의 농장은 2000년 신고대상 배출시설(축사) 설치신고를 마치고 2005년 양주시로부터 축산업등록증까지 받았는데도 시는 손씨 농장이 학교 주변에 없다고 회신한 것이다.

손씨 농장은 졸지에 학교보건법상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에 자리한 불법 축사가 됐다. 조례에 묶인 염라이씨 목장과 달리 법이 정한 ‘입지제한구역’(학교위생정화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에 있는 무허가 축사는 예외 없이 불법으로 규정한다는 게 현재 환경부 방침이다.

손씨는 지난주 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손씨의 변호인은 “시가 (대학을 유치하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측면이 큰데도 축사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시가 2009년 양주교육지원청에 보낸 공문. 학교 설립 예정부지 200m 내 학교보건법상 위해시설이 있느냐는 질문에 양주시는 ‘당해 지역은 청정지역으로 교육 관련 위해시설이 없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손석규씨의 양돈농장은 학교정화구역 내 위치한 불법농장으로 전락했다.
손석규씨 제공
◆우리에게 축산업이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00∼2016년 사이 국민 1인당 연간 고시 소비량이 쇠고기 35.3%, 돼지고기 41.2%, 닭고기 98.6%, 우유는 28.2% 늘었다. 같은 기간 쌀 소비량이 33.9%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육식 사랑’이 커진 것과 달리 축사는 갈수록 미운털이 박혔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이 돌 때마다 광범위한 공장식 밀집사육이 문제가 됐고, 4대강 사업 이후로는 ‘녹조라떼’의 주범으로 몰렸다. 환경부가 조사한 전국 배출부하량 현황을 보면 물속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과 총인(T-P)의 약 25%가 축산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계, 토지계(논·밭)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해 9월에는 제주 일부 농가가 축산분뇨를 지하수로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축사가 민폐시설로 몰리게 된 근본 원인은 당국의 무관심 탓도 크다.

염씨 사례처럼 수많은 농가가 무허가 상태로 수십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고, 세금을 내왔다. 당국이 알면서도 모르는 체, 있어도 없는 곳처럼 무허가 축사를 다뤘기 때문이다. 

김홍길 전국한우협회장은 “가축사육제한구역이나 입지제한구역 설정 이전부터 운영돼온 농장은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현재는 이전비용도 문제지만 부지를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부처 간 엇박자도 지적했다.

김 회장은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을 키우라고 등록증(축산업등록증)을 발급해줬는데 같은 축사를 놓고 환경부는 문을 닫으라고 한다”며 “입지제한구역 축사도 농림부는 일단 합법화 신청은 받겠다고 하는데 환경부는 안 된다고 하는 등 부처 간 말이 맞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제한구역에 놓인 무허가 축사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도 없다. 다만 환경부는 환경부와 농식품부 소관 법에서 정한 입지제한구역내 축사를 4093개소로 파악하고 있다. 전체 무허가 축사의 10%에 조금 못 미치는데, 국토교통·교육·국방부 등에서 정한 제한구역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 정책에 선진 축산으로 가기 위한 큰 그림이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정승헌 건국대 교수(축산학)는 “현재 축산업은 지자체 예산에도 큰 도움이 안 되고, 민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다”며 “여기에 농가 고령화까지 감안하면 10∼20년 뒤에는 가만 놔둬도 상당수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환경오염을 막겠다는 법 취지와 더불어 식량안보, 국토 균형발전이란 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현 환경운동연합 부총장도 “실제 농가를 돌아보면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며 “양성화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양성화하고, 지속가능한 축산과 동물복지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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