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한 지금, 결혼을 준비하던 30대 남성들은 ‘날벼락 맞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대출 축소로 고민하는 남성들이 많다. |
지난 설 연휴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발표를 계획한 35세 직장인 남성 A씨는 정부 발표 후 애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아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한탄했다.
여자친구에게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프러포즈한 그는 1인 가구 대출 요건이 강화하자 사정을 털어놓으며 이해를 바랐다. 하지만 여성은 “집 없는 남자와 결혼할 수 없다”며 “차갑게 뒤돌아섰다“
A씨는 “결혼을 위해 남들 다하는 여가나 문화생활도 멀리하고 퇴근 후 새벽까지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돈을 모았지만 당장 5000만원이나 줄어든 대출금을 마련할 여력은 없다”며 “대한민국에서 남자 흙수저로 태어난 죄”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 퇴임 후 소일거리와 내가 보내드리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부모님에게 손 벌릴 순 없다”며 “결혼을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인생을 즐겨야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A씨에게 ‘결혼 후 신혼부부를 위한 대출상품을 받으면 되지 않았겠나‘라고 묻자, A씨는 “동감하고 같은 생각이지만 여성 쪽에서는 집문서를 원하고, 설령 여성의 이해를 받더라도 부모가 반대했을 것”이라며 “집 없는 남성은 넘어야 할 힘든 산이 많다”는 말이 돌아왔다.
■ “집 없으면 결혼 시장에서 사람 취급 못 받아”
마지막 보루였던 형의 결혼으로 결혼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B씨. ‘40전까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겠다‘고 다짐한 39세 B씨는 최근 계획을 포기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맞선을 시작으로 단체미팅을 쫓아다닌 B씨는 “내 집 여부로 상대에 대한 평가가 단숨에 결정 난다”며 “집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첫 만남의 느낌이나 감정보다 집이 우선시 되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수십 번 퇴짜 맞은 그는 순서를 바꿔 내 집 마련 후 도전장을 내려 했지만, 그 역시 갑작스러운 대출규제에 발목이 잡혀 “때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B씨는 “아버지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집 장만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10년간 숨만 쉬고 돈을 모아도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언론에서는 여성들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드문 사례라 뉴스가 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대출을 받더라도 수도권 외곽에 있는 아파트 구매하려면 1억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며 “사람이 숨만 쉬고 살 수 없는데 (대출규제로) 숨조차 참아가며 생활해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부동산에 내걸린 주택거래시세. 전세가 9억원 정도다.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줄어든 대출금 마련에 1인 가구 고민이 깊다. |
한편 이러한 고민은 가족에게도 돌아간다.
인천 모처에 사는 김여사는 지금껏 아끼고 고생해서 장만한 단독주택을 최근 부동산에 내놨다. 그러면서 보증금 500만원하는 원룸 월세를 구하고 있다.
집이 팔린다고 해도 경기도에 있는 아파트 한 채 구하기 힘들지만, 결혼을 앞둔 두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주기 위해서다.
또 장남이 몇 년 전 집 문제로 파혼당했던 터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처음 만나 셋방살이했던 당시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굳혔다.
김여사는 “딸 둔 죄인이란 말과 시집살이는 우리 때(베이비붐 세대) 얘기지 지금은 아들 장가보내면서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들 둔 죄인이 된다”며 “며느리와 사돈 눈치에 손자 돌보고, 반찬 해다 주며 가끔 집 청소도 해야 명절 때 얼굴이나 볼 수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남의 집 귀한 딸 데려간다고 하지만 남자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며 “아끼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이 대물림 되는 거 같아 슬프다. 평생 장인·장모와 아내 눈치 보며 살아야 할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은 내 집 마련에 대한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결혼을 앞둔 남성들의 부담은 커졌다. |
또 혜택에서 제외되면서 고민이 깊어지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러 문제가 뒤따르고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인식 등 현실적인 문제가 많아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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