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서정을 변주한 문태준 시인. 그는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계가 연주하는 소리를, 노동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썼다. 이제원 기자 |
“자연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공유하는 자연 같은 거죠. 예를 들어 수로에 흐르는 물이나 저수지의 물을 여러 생명들이 공유하는 그런 느낌, 외할머니가 시 외는 소리를 듣는 게 나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거나 없는 거나 여러 존재들이 동시에 경험하고 동참한다는 느낌이 좀 더 강화된 것 같습니다. 자연은 평면적이고 평온한 대상이 아니라 실제로 알고 보면 내적인 동력을 가진 세계지요. 자연의 서정을 입체적으로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이전 시집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에 대해 물었을 때 문태준은 ‘공유하는 자연’과 ‘입체적인 서정’에 대해 언급했다. 서정시의 맥을 이어온 문태준이 한 발짝 더 밀고 나아간 단아한 ‘신서정’이 이번 시집에 촘촘하다. 고요하고 정적인 연못 풍경이 아니라 ‘달이 연못을 밟는’, ‘야생의 흰 코끼리가 연못을 밟는’, 그리하여 ‘온순하고 낙천적인 투명 유리를 깨트리는’, 평면적인 서정을 입체적으로 바꾸는 ‘단순한 구조’가 그렇다. ‘어릴 적 어느 날 들었던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해마다 봄이면 외할머니의 밭에 자라 오르던 보리순 같은 노래’를, ‘몰래 들은 어머니와 누나와 석류꽃과 뻐꾸기와 햇빛과 내가 외할머니의 치마에 그만 함께 폭’ 싸였다는 고백 또한 그러하다.
문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문학에는 뜻을 두지 않았으나 기자가 되기 위해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다가 문학동아리에서 접한 신경림 김용택 등의 시집들을 끼고 여름방학 때 고향 마을에 돌아와 자두와 포도농사를 도우며 시의 움을 틔우기 시작했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불교방송 피디로 입사해 일하면서 조금 늦게 2000년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을 펴냈다. 이후 그는 2~3년 간격으로 성실하게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들을 꾸준히 상재했고 굵직한 문학상을 줄줄이 받으면서 신서정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평론가 신형철은 그를 두고 ‘다정증(多情症)’ 환자라고 규정하면서 그것은 소중한 환후(患候)인데 그가 낫지 말아야 우리가 산다고 쓴 적 있다.
“청소년기에 큰 병을 앓아 내 앞에 캄캄한 죽음이 있다는 걸 느꼈던 충격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열 살 무렵 새싹처럼 가슴에 움텄던 첫사랑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신기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애석하고 애틋한 생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여지, 유연함에 대한 가치가 제 시에 남아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활동하는 내면을 스스로 보게 한다든지, 그런 것을 환기시킨다면 제 서정의 역할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은 구태요 낡은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서정 아닌 것들도 사람과 세계를 움직이게 하지만,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사회 시스템을 부드럽게 다른 자리로 옮겨놓는 게 서정의 힘입니다.”
“엄마는 나한테 가랑잎 같은 잔소리를 해요./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쪼그만 가랑잎이 되어요/ 엄마 무릎 아래/ 잠이 올 때까지 가랑잎처럼 뒹굴어요”(‘가을’) 이 엄마, “그릇과 수저처럼 닳은 어머니/ 나의 밤에 초승달 같은 어머니”가 지난 몇 년 동안 항암투병을 했다. “고서(古書)같이/ 어두컴컴한/ 어머니// 샘가에 가요/ 푸른 모과 같은/ 물이 있는/ 샘가에 가요// 작은 나뭇잎으로/ 물을 떠요// 다시/ 나를 업어요/ 당신에게/ 차오르도록”(‘샘가에서-어머니에게’)
“생업의 일들을 해야 하니까 시가 마음속에 살아있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내 가슴속에 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면 시는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까요. 시라는 것이 늘 수평선처럼 등 뒤에 따라다녔으면 좋겠어요.”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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