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친 지난 1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정모(64)씨가 거실에 텐트를 치고 지내야 할 정도로 심한 웃풍과 부실 난방 등 열악한 주거실태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시간은 LH의 전세임대주택 지원 대상자가 된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는 당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낡고 불편한 집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2005년 도입된 전세임대주택은 지원 대상자가 살 집을 찾아오면 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해당 주택 소유자와 계약한 후 입주자에게 재임대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올해 기준 가구당 전·월세 보증금 최대 9000만원(신혼부부 1억2000만원)을 지원하고 보증금의 95%에 대해 1~2% 이자를 받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씨의 ‘희망’을 ‘절망’으로 돌려놨다. 지원금 한도 내의 전셋집도 극히 드물었지만 어렵게 찾더라도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신분이나 절차가 복잡한 LH와의 계약을 꺼린 집주인들이 고개를 저었다.
정씨가 물로 흥건히 젖은 방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수차례 도움을 청한 LH 역시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채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참다못한 정씨는 각종 문제점과 피해 상황을 담은 내용증명을 집주인과 LH에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취재진이 접촉한 서울지역 주거복지센터 관계자들은 24일 “LH가 계약당사자임에도 전세임대주택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내용증명만 보내라고 하기 일쑤다”, “엄청난 복지재정이 허투루 쓰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LH가 집 상태도 따지지 않은 채 관련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전세계약을 하고 이후에도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전세임대 세입자 중 거주지에서 계약을 갱신하고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매우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LH 측은 “계약관계상 LH가 직접 하자보수에 나설 수 없어 집주인에게 보수를 요청하고 있다”라는 입장이다
주거 약자를 위한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사업이 현실과 동떨어지고, 되레 주거복지 약화와 재정 낭비를 부추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전세임대 물량을 현재 전국 17만호에 더해 5년간 17만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최근 4년(2014∼2017년)간 LH의 전세임대 지원금만 7조7560억원(13만5682건)에 달한다.
최은영 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그저 ‘돈 빌려줄 테니 알아서 살 집 찾아봐라’는 식의 전세임대는 사실상 공공임대가 아닌 데다 집주인들이 지원금 상한액을 요구해 오히려 주변 전셋값을 올리는 측면도 있다”며 “중앙정부와 LH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공공임대 체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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