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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패러다임을 바꾸자] 물량 공급에만 ‘급급’… 수요자 맞춤형 임대주택 정책 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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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24 19:13:31 수정 : 2018-01-24 23: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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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공공임대와 지역재생이 가야할 길 / 중앙집권식 공공주택체계 혁신 필요 / 실수요 상관없이 획일적 택지 개발 / 정부, 개발 전과정 도맡고 방치 일쑤 / 지자체·민간으로 관리 권한 분산을 / 주택공급·지역재생 연계 개발 활성화 / 정부 도시재생 사업 수십조 퍼붓지만 / 지역특색 살린 내실있는 주거모델 없어 / 부처간 이기주의 근절·전문성 강화를 # “각자 깨끗한 방도 있고 여럿이 함께 사니 심심하지 않고 안심이 돼. 먼 지방에 있는 자식들도 엄마 혼자 사는 걱정 덜어 좋아하고.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할 수 없이 맘에 들고 편하지.”

지난 9일 서울 금천구 ‘보린두레주택’에서 만난 황상숙(77) 할머니는 2년 전 정말 운좋게 입주했다며 주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곳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 노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시가 공급하고 금천구가 관리를 맡은 ‘홀몸어르신 공동체 원룸’ 보린주택 4곳 중 2호점이다. 기존 시흥3동 경로당 자리에 신축해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4층 건물이다. 필로티 구조의 1층 주차장(6대·월 이용료 3만원, 관리비에 충당)과 2층 경로당은 지역주민에게 개방하고, 3,4층은 각각 할머니와 할아버지 5명이 산다. 옥상에는 텃밭과 휴식공간을 설치했다. 특히 3,4층에는 거실과 주방, 화장실, 세탁실 등 약 66㎡(20평)의 널찍한 공용 공간이 있다. 황 할머니는 “그전 집에선 화장실도 멀고 겨울에 보일러가 2∼3번씩 어는 등 정말 고생했다”며 “들어가기도 힘든 임대아파트보다 이런 데를 많이 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보린두레주택 거주자들이 지난 연말 공용 거실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코디네이터와 함께 종이접기 공동체활동을 하는 모습.
금천구청 제공
# 같은 날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만난 정모(76) 할머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정 할머니는 “아파트라 예전 집보단 훨씬 낫지만 창이 없는 복도식이어서 눈이라도 오면 복도 바닥이 얼어 노인들 낙상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단지 내 유일한 임대아파트라고 낙인찍히는 것도 불편하다. 한때는 일반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와 갈라 놓는 펜스를 친 적도 있다. 1층 관리사무소 건물은 사무실과 노인정, 화장실 등이 몰려 있어 답답해 보였다. 정 할머니는 “거주자들은 봉사단체가 주는 점심 때 모이는 것 외에 공동체 활동 같은 것도 없어 서로 낯설어 한다”며 “정말 아파트만 달랑 지어놓았다”고 푸념했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1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임대 지원을 받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정모(64)씨가 거실에 텐트를 치고 지내야 할 정도로 심한 웃풍과 부실 난방 등 열악한 주거실태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정씨가 물로 흥건히 젖은 방바닥을 보여주고 있다.
남정탁 기자
정부가 저소득·취약계층의 주거불안 해소와 주거복지 실현을 위해 어떤 철학과 방향을 가지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할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공주택 프레임은 ‘신규 공공택지 ○○곳 개발’, ‘5년간 주택 ○○○만호 공급’, ‘○○○조원 투입’ 등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정부도 신규 공공택지 40여곳 개발과 5년간 공공주택 100만호 공급을 목표로 정했다. 물론 사회적 경제주체에 의한 임대주택(사회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 등 과거 정부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거기까지’라는 지적이 많다. 사회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중앙집권형 공공주택 정책의 틀을 해체하고 양질의 수요자 맞춤형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적주의 공공주택 정책패러다임 바꿔야

주택도시기금 곳간 열쇠를 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공공주택체계 혁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역대 정부의 공공주택정책은 지역별 주거 환경과 수요자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대단위 아파트 건설과 매입·전세임대주택 물량 확보에 치중한 게 사실이다. ‘5년 임기 내 주택공급 목표 달성’이란 지상과제에 사로잡혀 사업성과 효율성을 중시한 탓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24일 “이런 식으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나라가 없다”며 “사실 국토부가 시키면 LH가 손발이 돼 짓는 구조이다 보니 공공임대주택이 (실수요와 상관없이) 엉뚱한 곳에 지어져 공실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공공임대 수요층이 엄청난 서울에 다른 지역보다 많은 주택이 빨리 공급돼야 하는데 그 반대여서 주거 문제가 더 악화한다. 실제 전국의 장기공공임대 재고율을 보면 2007년 전국 44만6000호에서 2016년 전국 94만543호로 110%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서울만 떼어내 보면 12만2800호에서 20만7737호로 69% 증가율에 그쳤다.

정부가 사실상 대출지원제도일 뿐인 전세임대를 공공임대주택 물량에 포함시키는 것도 공급실적 포장을 위한 것이란 비판이 많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2017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실적 집계 결과 총 12만7000가구를 공급해 목표치(12만가구)를 초과 달성했다”고 ‘자랑스레’ 소개했다. 하지만 이 중 3분의 1가량인 4만3000호가 전세임대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이 “전세임대는 세입자가 직접 매물을 구해 전세금을 지원받는 구조라 보증금 융자제도인 ‘버팀목 대출’과 전혀 다를 게 없다”며 “특히 집주인이 재계약을 원하지 않으면 집을 비워줘야 해 공공성도 낮다”고 지적한다. 서울도시주택공사(SH) 관계자도 “전세임대를 공공임대로 분류하는 것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라며 “기간도 길고 돈도 많이 드는 건설임대와 달리 돈만 주면 금방 실적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최 위원은 “물론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공공임대를 이끌어 가는 부분은 맞지만 (재정과 인력 문제 등으로) 물량 확대와 주거품질 관리에 적잖은 문제가 생긴다”며 “민간의 다양한 주체가 사회주택 등을 공급할 수 있게 관련 법과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한과 기능도 지자체와 민간으로 분산해야

정부가 공공주택 공급 물량과 자격 기준, 입주자 선정 등 사실상 모든 과정을 도맡는 것도 개선해야 할 과제다.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자체의 경우 국토부와 LH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국에 산재한 공공주택들의 관리와 운영에 구멍이 많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LH나 SH에서 매입한 주택들을 다녀 보면 하자투성이인 데가 많지만 관리할 인력도 시스템도 없어 방치되기 일쑤”라며 “매입은 그렇다쳐도 관리는 지자체에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이유를 보린주택 사례로 설명했다. 열악한 환경에 흩어져 살던 노인들이 좋은 집에 모여 살면서 삶이 안정됐고, 담당 공무원들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살피던 시간과 수고를 덜어 다른 취약계층도 더 신경쓰게 됐다는 것이다.

남철관 나눔과 미래 주거사업국장은 “(인구·사회구조 변화 등에 따라) 주택은 작고 다양하게 공급돼야 하는 시대여서 중앙집권적이 아니라 지역기반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LH 등의 몸집을 줄이면서 전문적인 관리 역량을 키우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도시·농촌 재생도 곳곳 허점, 부처 간 이기주의 근절도

아울러 공공주택 공급은 죽어가는 기존 도시와 농촌 살리기(지역재생)와도 맞물려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역·마을 단위의 주택공급과 기반시설 확충 사업 등이 공동체 회복과 지역사회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폐해가 심각한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위주의 정비사업을 지양하자는 얘기다.

이와 관련, 정부도 앞으로 5년간 공공주택 3만5000호를 도시재생과 연계해 소규모 맞춤형 개발로 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체 공공주택 공급(약 119조원)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약 50조원)을 분리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는 “도시재생하겠다고 하면서 주택공급을 따로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매번 이런 식이니 수도권을 넘어 지방도시와 시골까지 아파트 천지다.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하고 섬세한 주거모델이 필요한데 공공은 귀찮아서 안 한다”고 꼬집었다. 농촌 상황도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한 해 1조원 가까운 예산을 창조적 마을 만들기, 신규·전원마을 조성, 중심지 활성화 사업 등에 퍼붓고 있지만 주무 부처와 지자체 모두 내용의 충실성보다 실적과 포장에만 신경쓴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촌건축학회 김승근 회장(강동대 교수)은 “농촌 공동체 회복을 위한 공간설계와 양질의 콘텐츠가 농촌 지역개발(재생)의 핵심인데 정부와 지자체 공무원, 주민 대부분 그런 인식이나 전문성, 역량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역 국회의원과 지자체장의 치적용으로 전락한 사업도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재생이 제대로 되려면 부처 간 이기주의 근절도 시급하다. 예를 들어 도서관과 병원, 보육·놀이시설 등 지역재생에서 중요한 공공시설의 경우 담당 부처가 어디냐에 따라 운명이 제각각이다. 농촌 개발을 놓고도 관계부처가 ‘개발 전문’(국토부)과 ‘농촌 전문’(농림축산식품부)을 앞세워 티격태격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더함’의 양동수 대표(변호사)는 “지역재생사업이 잘 진행되려면 각 부처와 지자체가 긴밀하게 협력하고 공공의 한계를 민간이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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