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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1988년 시작된 MB와 검찰의 '30년 악연'

입력 : 2018-01-18 11:19:34 수정 : 2018-01-18 15: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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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400만원 확정 전 의원직 사퇴 / 1999년 '북풍' 사건에도 연루 의혹 / 현대건설 회장 일하던 1988년에는 노조 무력화 시도 혐의로 약식기소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MB정부 시절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상납받았다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검찰을 향해 “나를 조사하라”고 일갈했다. 검찰의 MB 소환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동안 MB와 검찰 간의 악연에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MB가 정계 입문 이후 검찰과 제대로 맞붙은 것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14대 총선에 이어 1996년 4월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MB는 곧장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서울 종로구에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그는 선거비용을 지나치게 많이 쓴 혐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선거운동 기간 비용 지출에 깊이 관여한 측근 김모씨를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 등이 불거졌다.

당시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이 사건 수사를 맡아 1996년 10월7일 MB를 피의자로 소환조사했다. 김씨의 해외도피를 주도한 MB 측근 2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결국 MB는 법정 선거비용보다 8400만원을 초과 지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듬해인 1997년 9월 1심은 당선무효형인 벌금 700만원, 1998년 4월 항소심도 역시 당선무효형인 벌금 4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그런데 MB는 유죄 확정 전에 스스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1998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해 2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국회의원을 그만둔 것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한 차례 파기환송되는 우여곡절 끝에 1999년 7월 유죄와 400만원 벌금형이 최종 확정됐다.

선거법 위반의 덫에 걸린 MB는 결국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하고 1999년 8월 미국행을 택했다. 당시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외교관은 물론 정부 각 부처 주재관들과 왕성하게 교류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피선거권 제한의 족쇄에서 풀려난 MB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결국 당선된다.

MB의 혐의가 드러나 입건된 것은 아니나 1999년 이른바 ‘북풍’ 사건 당시에 그의 연루 의혹이 불거져 검찰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북풍 사건이란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8월 갑자기 월북한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공개된 사건을 뜻한다. 정권교체 후 이 사건 배후에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있었음을 파악한 김대중정권이 검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 수사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 박일룡 전 안기부 차장 등 정보기관 인사들이 대거 구속된 가운데 MB가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북풍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1997년 9월 그가 중국 베이징에 머물며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난 사실이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서울지검 공안1부는 1999년 5월10일 MB를 참고인으로 불러 대북 접촉 경위와 이유를 확인했다. MB는 “북측과 금강산 개발 문제 등을 논의했을 뿐 다른 얘기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가 통일부로부터 북한 주민 접촉 사전승인을 받고 통일부에 사후보고도 하는 등 적법절차를 모두 밟은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공안1부 부장검사는 훗날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공안통’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이다.

MB는 30년 전 기업인 시절에도 검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현대건설 회장으로 일하던 1988년 이 회사 노조위원장 서모씨 납치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것이다. 이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는 현대건설 이사와 부장, 납치를 주도한 행동대원 등 총 10명을 구속하고 MB에게도 소환을 통보했다.

1988년 6월9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MB는 “대책회의를 열어 노조 결성 활동을 저지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노조위원장을 납치하라고 지시하진 않았다”며 혐의 일부를 부인했다. 결국 검찰은 MB와 현대건설 법인을 노동법 위반 혐의로 각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고 수사를 끝냈다. 당시 MB를 조사한 검사가 훗날 박근혜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김진태 전 총장이다.

검찰은 MB 소환조사에 대해 아직까진 “법적 절차에 따르겠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핵심 측근들이 대부분 구속되고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마저 등을 돌려 MB한테 불리한 진술을 막 쏟아내며 소환조사와 형사처벌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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