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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현장+] '로또'보다 못한 삶의 희망.."올해는 좀 나아지겠죠"

입력 : 2018-01-07 15:00:00 수정 : 2018-01-07 15: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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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로또 출시 14년 만에 사상 최대 / 2017년 하반기 매주 평균 730억 원 판매 /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로또를 사는 사람들 / '대박'에 목마른 사회 / 불황에 사회는 뒤숭숭 / 물가는 치솟고, 삶은 갈수록 팍팍 / 라면에 김밥 한 줄도 부담스러워 편의점을 찾아

새해 첫 주말인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복권 판매점 앞에는 로또를 사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주 삽니다. 아시잖아요. 월급쟁이가 돈 나올 구멍이 없잖아요. 아등바등 모아 겨우 전세 집에 삽니다. 일하랴, 애 둘 키우랴, 아차 하는 순간 모든 게 끝입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삽니다. 그 심정 모릅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닙니다. 몸만 쉴 뿐….”

새해 첫 주말인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복권 판매점 앞에는 로또를 사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로또 추첨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로또 판매점은 사람들로 더욱 늘어났다.

북적이는 사람만 어림잡아 30여 명. 2018년 첫 로또를 사기 위해 직접 줄을 서 구매까지 걸린 시간은 10여 분이 소요됐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복장도 다양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슬리퍼를 신은 사람, 길가에 비상 깜빡이를 켜둔 채 로또를 구매하는 택시기사, 배달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쓴 채 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는 퀵 서비스기사, 연인, 가슴에 아이를 품은 주부와 중년 부부까지 다양했다.

이 판매점은 1등만 10회, 2등은 26회 이상 배출했다. 인근에서는 '로또 명당'으로 불리고 있다. 매주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됐다.
주말인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복권 판매점에는 로또를 사기 위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 판매점은 1등만 9회, 2등은 66회 이상 배출했다. 인근에서는 '로또 명당'으로 불리고 있다. 매주 '로또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코스가 됐다.

종로구 한 복권 판매점. 판매점 앞 인도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입간판에는 '1등만 9회, 2등은 46회'라는 큰 숫자가 유혹하듯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해 복(福) 로또로 받으세요!’, ‘1등 출현 가능성이 높은 기간입니다.’, ‘대박나세요! 줄을 잘서시면 대박 납니다.’ 광고 문구가 유난히 눈에 띈다.

노원에서 출퇴근하는 김 모(52) 씨는 "점심때나 퇴근할 때 잊지 않고 로또를 구매한다"며 "나이 들수록 믿는 것은 돈뿐이다. 돈 쓸 때는 많아지는데. 불황에 벌이는 시원찮고, 빚은 늘고, 돈 나올 때가 없다"며 힘겨워했다.

매주 로또를 꼭 산다는 대학생 김 모(26) 씨도 "혹시 아세요. 제가 될지…. 명당자리와 아닌 곳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긴 줄 서는 것은 기본이다"며 "희박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어차피 복불복. 제 능력으로 취업하기도 힘들고, 취업해서 월급 받아도 사는 것은 빠듯한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로또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몸부림이다.  '로또 대박' 꿈이 헛되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로또 구매 행위가 잠시나마 위안이 된다. 

'인생 역전'을 꿈꾸기보다는 찌든 일상을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어 한다. 가뜩이나 힘겨운 삶에서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다. 그 희망을 ‘로또’에서 찾고 있다.
새해 첫 주말인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 복권 판매점 앞. '1등만 10회, 2등은 26회'라고 적힌 형광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큰 숫자가 유혹하듯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두 아이를 둔 가정주부 이 모 씨는 "산책 겸 아이와 함께 여기까지 왔다"며 "빠듯한 생활비에 쪼개 로또를 구매한다. 아이를 키우면 돈이 들어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잖아요. 앞날을 생각하면 깜깜합니다. 집 근처에도 로또 판매점이 있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큰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깊어지는 불황과 불안한 사회 그리고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져 가고 있다. 정부에서는 다양한 서민 경제 정책을 내 놓고 있지만, 아직은 피부로 와 닿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탕'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로또 열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직장 생활 8년 차인 김 씨는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라면에 김밥 먹는 것도 고민합니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시간에 쫓겨 생활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한다. 올해는 좀 나아지겠죠"라며 씁쓸해했다.

김밥 한 줄과 라면 한 그릇도 부담스러운 물가다. 기본 김밥 한 줄이 2천 원, 일반 라면 한 그릇이 3천 500원이다. 골목마다 분식점이 늘고 있지만, 가격만 본다면 쉽게 선택할 수 없다. 먹는 즐거움을 생각할 틈도 없이 허기를 달래기에도 빠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에 "월급 빼고 다 오르는 것 같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복권 판매점에서 한 시민이 로또 번호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로또 판매액은 지난해 12월 9일 추첨 분까지 3조 6090억 원으로 작년 전체 판매액 3조 5500억 원을 넘어섰다.

2017년 하반기 로또 판매액이 매주 평균 730억 원이다. 2017년 전체 로또 판매액은 3조 8300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03년 ‘로또 열풍’을 넘어 역대 최고 판매액 기록인 3조 8031억 원을 경신하게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비트코인이나 중독성이 강한 도박 산업 등이 불경기 오히려 안정적으로 성장한다”며 “실망스러운 사회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맞물려 ‘로또·비트코인’과 같은 도박을 통해 위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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