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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대기가 머금고 있던 수증기가 서서히 얼어붙어 땅으로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응결 과정에서 보통 여섯 개의 가지를 지닌 별 모양의 결정체가 만들어진다. 이게 우리가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순백색의 눈이다. 눈 결정은 2㎜ 정도 크기인데 서로 엉겨붙어 눈송이로 내리기도 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포도주나 우유 같은 음료를 차갑게 하기 위해 눈을 넣었다. 산악지대에서 눈을 실어 귀족에게 운송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양의 눈이 사라졌다. 셔벗이나 아이스크림도 처음에는 눈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근대 초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눈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17세기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눈입자 하나로부터, 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주 전체의 재현에 근접해 있었다”고 했다.

눈에 대한 감수성은 세대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어린이는 눈사람을, 청년은 낭만을 연상한다. 반면에 중년층은 출퇴근을, 노년층은 빙판길 낙상사고를 걱정한다. 시인 최승호는 ‘대설주의보’에서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노래했다. 1980년대 초 신군부 집권 시절에 사회가 꽁꽁 얼어붙던 상황을 눈보라에 비유했다. 시인 오세영은 ‘눈’에서 “눈은 낮은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을 줄을 안다”며 “언 마음이 녹은 자만이/ 사랑을 안다”고 했다. 눈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담겨 있다.

어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됐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신적설(새로 쌓인 눈)이 5㎝ 이상 예상될 때 내려진다. 올겨울 들어 서울지역에서 눈다운 눈은 처음이다. 많은 눈으로 서울시내 산길도로 곳곳이 통제됐고 김포공항과 인천국제공항의 항공편은 결항과 지연이 잇따랐다. 차량 고장신고 건수도 급증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 세계에서 강설량이 줄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남쪽 강설 한계선이 매년 몇 ㎞씩 북쪽으로 이동해 생태계 변화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언젠가는 눈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눈이 내려 불편을 끼치더라도 박대하진 말 일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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