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한성숙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17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망 중립성 폐지 결정이 전 세계 인터넷에 미칠 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망 중립성 원칙 폐기라는 FCC의 결정은 그간 이루어온 인터넷 기업들의 혁신과 향후 산업을 주도할 스타트업의 의지를 꺾어 인터넷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망 중립성 원칙은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들의 탄생과 성장을 이끌 기반”이라며, 망 중립성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FCC는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망 중립성 원칙을 담아 만든 ‘오픈 인터넷 규칙’을 표결을 거쳐 폐기했다.
망 중립성이 폐기되면, 통신사업자가 구글 검색이나 유튜브, 네이버 등 특정 서비스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제한 또는 조정할 수 있게 된다. ISP가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추가적인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다.
현재 망 중립성과 관련한 국내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내 망 중립성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장이 계속 유지될지 국내 인터넷 업체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이 전 세계에 기준처럼 작용했던 만큼, 향후 세계 각국에서 비슷한 논의가 불붙을 가능성이 있다. FCC 발표 후 유럽연합(EU)이 망 중립성 원칙 고수 입장을 밝혔지만, 독일소비자단체연맹(VZBV)의 클라우스 뮐러 회장은 “미국의 이번 조치가 유럽에 즉각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차츰 간접적으로 체감하게 될 것”이라며 상황 변화를 예고했다.
개인 입장임을 전제하기는 했지만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6일 방통위 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트래픽을 과도하게 유발하는 업체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망 중립성의 수정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FCC 결정 발표 이후 “우리나라의 망 중립성 규제 현실은 매우 허약하다”며 통신사가 저가요금제에서 인터넷 음성전화 서비스인 ‘m-VOIP’를 제한한 데 대해 법원이 법률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사례를 들었다. 오픈넷은 “통신사의 자의적인 차별행위를 보다 분명히 금지하기 위한 망중립성 강화법이 발의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해 당사자인 국내 통신업체들은 반발을 의식한 듯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만, 내심 FCC의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통신업계는 5G 상용화와 맞물려 망 중립성 문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일례로 자율주행차의 경우 항상 안정적으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다른 서비스의 과도한 트래픽이 발생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망 중립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망 중립성이 폐기 된다고 해도 대형 인터넷기업이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인터넷 신문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망 중립성 폐기는 페이스북·구글·아마존과 같은 엄청난 재력을 지닌 빅 인터넷 회사들에는 좋은 소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힘이 막강해진 대형 IT(정보기술) 기업들은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통신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 있고, 설령 데이터 가격이 비싸진다고 해도 신규 IT 기업의 진출을 막아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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